[동아시론/이철희]일할 청년들 사라져, 골든타임 10년 남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13일 2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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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대졸 경제활동인구 10년 후 23% 급감
업종별 인력 재배분-외국인력 도입 ‘급한 불’
효율성 높여 충격 줄일 교육-노동개혁 절실동아시론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골든타임은 생사의 갈림길에 선 응급환자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제한된 시간을 의미한다. 예컨대 심장마비 환자의 골든타임은 4∼6분가량으로 알려져 있다. 인구 문제 대응에도 골든타임이 있을까? 응급 상황보다는 만성 질환과 닮은 데가 많은 인구 문제의 경우, 결정적인 시기를 놓쳤다고 한 국가가 ‘사망’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찍 관리하지 않으면 건강과 삶의 질이 급격하게 나빠질 수 있는 만성 질환처럼, 인구 문제 역시 그 사회경제적인 충격이 본격화되기 전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엄청난 비용을 치를 수 있다.

그렇다면 인구 변화가 가져올 것으로 우려하는 ‘노동인구 절벽’에 대응할 골든타임은 얼마나 남았을까? 15∼64세로 정의되는 생산연령인구로 본다면 이미 골든타임이 지나간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한국의 생산연령인구는 줄곧 빠르게 감소하여 10년 후에는 현재의 90% 수준을 밑돌 것이고, 20년 이내에 4분의 3으로 감소할 것이다. 출산율의 반등도 이 추이를 막지는 못한다. 합계출산율이 즉각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인 1.58명으로 높아진 후 유지되어도 20년 후 생산연령인구는 현재의 80%로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노동인구를 경제활동인구 혹은 생산성 조정 노동 투입으로 더 정확하게 측정하면 총량적인 노동인구 감소 대응의 골든타임은 20년 이상으로 늘어난다. 현재의 성별·연령별·학력별 경제활동참가율과 생산성이 유지되는 경우, 20년 후 생산성 조정 노동 투입은 현재의 90% 이상으로 유지되고, 근래의 추이대로 여성과 장년의 경제활동참가율이 상승한다면 이보다 더 높아질 전망이다. 기술 변화로 인한 노동수요 감소의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향후 20년간 총량적인 노동력 부족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은 더 시급한 문제는 청년 인력의 급격한 감소에 따른 노동시장 수급 불균형 확대다. 현재의 경제활동참가율이 유지되면 35세 미만 대졸 청년 경제활동인구는 10년 후 현재의 77%, 25년 후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청년에게 크게 의존하는 기업의 노동력 부족을 초래할 것이고, 인력 구조가 다른 산업 및 직종 간 노동 수급 불균형을 초래할 것이다. 최신의 지식과 숙련을 보유하였으며 이동성, 적응력, 학습 능력이 높은 청년 취업자의 급감은 노동시장의 수요 변화에 따라 인적자원을 탄력적으로 재배분하는 노동시장의 기능을 떨어뜨리고 산업 경쟁력을 낮출 것으로 우려된다.

나이가 다른 인력 사이의 대체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청년 인력 감소의 충격이 노동시장에서 본격적으로 감지되기까지 10년 정도의 골든타임이 남았다고 판단된다. 이 기간에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머지않아 발생할 ‘급한 불’을 끄는 조치가 필요하다. 일부 산업, 직종, 기업은 지금도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으며, 이는 인구 변화로 더 악화될 것이다. 돌봄을 포함한 사회복지서비스업, 음식점업 및 주점업, 전문직별 공사업, 운송업, 소매업 등의 업종에서는 단기간 내에 대규모 인력 부족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새롭게 확대되는 일부 첨단 부문 역시 꼭 필요로 하는 숙련을 가진 인력을 구하기 어렵게 될 수 있다. 이러한 일부 부문의 수급 불균형 완화를 위해 타 부문의 유사 인력 재배분이나 적절한 유형의 외국 인력 도입을 포함한 단기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둘째, 10년 후의 미래를 내다보고 부문 및 유형 간 노동 수급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교육 개혁과 노동 개혁에 착수해야 한다. 청년인구가 줄어들지만, 이들의 생산성을 높이고 노동시장이 필요로 하는 인적자원으로 길러내어 적재적소에 배분할 수 있다면, 그 충격을 줄일 수 있다. 그러기 위해 교육제도의 개방성과 신축성을 키워서 변화하는 세상의 필요를 교육과정에 빠르게 반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이동성을 높여서 각 개인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일자리에 배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수한 여성 인력과 점차 건강과 학력이 개선되고 있는 고령 인력이 낭비되지 않고 최대한 활용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일도 중요하다.

인구 변화로 말미암은 노동절벽 도래의 공포를 과장하고, 피할 수 없는 미래로 체념할 필요는 없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고, 미래를 바꿀 방법도 있다. 그러나 차분하면서도 기민하게 움직여야 한다. 인구 변화의 미래에 대응하기 위한 교육·노동 개혁은 쉽지 않으며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만성질환의 경우처럼, 조치가 너무 늦거나 미진하면, 우리 사회와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고 국민의 삶은 그만큼 더 팍팍해질 것이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청년들#일자리#골든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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