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치프는 정말 성역 없는 예술을 할까?[영감 한 스푼]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1일 23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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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그룹 같은 스타트업, 미스치프

서울 종로구 대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미스치프의 개인전 ‘Nothing is Sacred’ 입구 모습. 대림미술관 제공
서울 종로구 대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미스치프의 개인전 ‘Nothing is Sacred’ 입구 모습. 대림미술관 제공
김민 문화부 기자
김민 문화부 기자
“미스치프가 말하는 짓궂은 장난을 좀 치고 싶었어요. 전 예술을 한 것뿐이에요.”

지난해 12월 17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서쪽 영추문 좌측 담벼락에 스프레이로 낙서를 한 20대 남성 A 씨가 블로그에 쓴 내용입니다. A 씨는 10대 남녀 미성년자들이 경복궁 영추문 돌담에 ‘영화 공짜’ 낙서를 쓴 지 하루 만에 모방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첫 범행이 발생해 천막으로 덮어놓은 곳 바로 옆에 ‘조휴일’(밴드 검정치마의 멤버) 등 가수 이름과 앨범명이 담긴 길이 3m가량의 낙서를 남긴 거죠.

지난해 4월 한 대학생이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 전시된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바나나를 먹어 치우며 ‘예술’이라 한 데 이어 비슷한 주장이 또 등장했습니다. 미스치프가 누구이기에 A 씨의 ‘담벼락 낙서’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언급된 것일까요?

예수·사탄 신발로 온라인 달궈
미스치프의 대표적 프로젝트라고 하면 ‘예수 신발’, ‘사탄 신발’이나 ‘빅 레드 부츠’가 떠오릅니다. 사실 미스치프는 시각 예술보다는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는 디자인, 패션, 게임을 생산하는 창작 그룹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죠.

2019년 미국에서 결성한 미스치프가 유명해진 계기는 그해 출시한 ‘예수 신발’이었습니다. ‘예수 신발’은 200달러짜리 나이키 에어맥스 97에 요르단강물 60cc를 넣고 십자가를 매달아 맞춤 제작한 것이었고, 1425달러의 비교적 비싼 가격에도 공개되자마자 품절됐죠. 유명 가수 드레이크도 이 신발을 샀습니다. 그다음 2021년에는 더 나아가 팝 스타 릴 나스 엑스와 협업해 같은 나이키 신발에 피 한 방울을 넣은 ‘사탄 신발’을 출시해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결국 나이키와 법적 분쟁까지 벌였죠.

이 밖에 스마트폰 화면에 손가락을 떼지 않고 가장 오래 버티는 사람이 상금을 가져가는 게임 ‘핑거 온 더 앱’, 에르메스 버킨백의 가죽을 해체해 샌들로 만든 ‘버킨스탁’, 만화 속에 등장할 것 같은 과장된 형태의 ‘빅 레드 부츠’ 등 황당함과 웃음을 유발하는 프로젝트로 미디어의 조명을 꾸준히 받습니다.

‘바이럴’로 거액 투자 유치
미스치프는 2주마다 위와 같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한정판으로 공개했습니다. 한 땀 한 땀 공들여 만든 제품이 아니라 아이디어와 재치로 무장한 상품으로 꽤 큰 수익을 거두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러나 과연 프로젝트 판매만으로 운영이 이뤄졌을까요?

2020년 정보기술(IT) 전문 매체 ‘더 버지’는 미스치프가 벤처캐피털 회사로부터 1170만 달러(약 150억 원) 투자를 받았다고 보도합니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디자이너는 물론 개발자, 변호사, 재무 담당자 등 30여 명 규모로 구성된 그룹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스타트업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투자를 유치한 비결은 무엇일까? 미스치프를 이끄는 최고경영자(CEO) 게이브리얼 웨일리는 어릴 때부터 온라인 콘텐츠 제작에 재능을 보였고, 바이럴 미디어 기업인 ‘버즈피드’에서도 일했습니다. 온라인에서 어떤 콘텐츠가 주목받고, 저절로 공유되는지를 체득한 웨일리가 판을 키운 것이 ‘미스치프’였고, 투자자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본 것으로 추측됩니다.

스프레이 낙서 테러를 당해 임시로 가려진 서울 종로구 경복궁 서쪽 영추문 좌측 담벼락. 뉴시스
스프레이 낙서 테러를 당해 임시로 가려진 서울 종로구 경복궁 서쪽 영추문 좌측 담벼락. 뉴시스
그리고 경복궁 담벼락에 낙서한 A 씨는 ‘성역은 없다’는 미스치프의 슬로건만 봤지만, 실제로 많은 돈이 걸린 미스치프의 프로젝트들은 브레인스토밍부터 현실화, 그리고 변호사의 법률 검토까지 치밀한 과정을 거칩니다. A 씨의 무모한 문화재 훼손을 미스치프로 정당화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금리 특정적 예술?
그렇다면 미스치프의 프로젝트를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예술의 정의는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사회와 시대가 결정합니다. 우선 최근까지 미스치프는 지난해 11월 페로탱 뉴욕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올해는 서울 종로구 대림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었으니 형식상으론 인정받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번엔 질문을 좀 더 정교하게, ‘미스치프를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예술이라 볼 수 있을까?’라고 해보겠습니다. 미술의 역사에 비춰보면 미스치프는 자본과 마케팅 기법을 업은 ‘보급형 뒤샹’에 가까워 보입니다.

마르셀 뒤샹(1887∼1968)은 인상파부터 추상미술, 그리고 모더니즘까지 미술의 역사 속 많은 경우의 수를 감안한 뒤 미술관에 변기를 놓으며 현대미술의 새 장을 열었습니다. 미스치프도 온라인 공간에서 트렌드, 관객 반응, 돈의 흐름 등 여러 요소를 치밀하게 고려해 프로젝트를 내놓습니다. 엉뚱한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체화하는 실행 능력과 과감함은 창작자이자 사업가로서 뛰어난 능력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미술의 역사로 따져보면 이미 100년 전 뒤샹이 한 일을 약간 다른 맥락에서 되풀이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마치 인상파가 처음엔 외면받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 대중의 사랑을 받고, 많은 예술가가 그것을 추종했듯 이제는 개념미술이 일반에도 유희로 즐겨지는 시대가 왔다는 생각도 듭니다.

미술계에서 한때 구체적인 장소에서 주변 맥락을 고려해 설치된 ‘장소 특정적 예술’이 유행한 적이 있는데요. 미술계에서는 미스치프를 두고 팬데믹 시기 금리 인하로 자금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가능했던 ‘금리 특정적 예술’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옵니다. 미스치프의 유쾌 발랄한 도발 속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독자 여러분도 한번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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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문화부 기자 [email protected]


#미스치프#성역 없는 예술#금리 특정적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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