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 말보다 따뜻한 스킨십의 위로가 필요할 때가 있다[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8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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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받거나 긴장된 상황에서 누군가 부드럽게 쓰다듬고, 안아주면 우리 몸에서는 “괜찮다”는 메시지로 인식한다. 따뜻한 스킨십의 위로는 말보다 강력할 때가 있다. 게티이미지
스트레스받거나 긴장된 상황에서 누군가 부드럽게 쓰다듬고, 안아주면 우리 몸에서는 “괜찮다”는 메시지로 인식한다. 따뜻한 스킨십의 위로는 말보다 강력할 때가 있다. 게티이미지

“엄마 손은 약손, 엄마 손은 약손”

어린 시절 엄마가 배를 살살 문질러 주면 배앓이가 사라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엄마의 손길을 받으며 누워 있다 보면 언제 아팠냐는 듯이 스르륵 잠이 들기도 한다. 엄마의 따뜻한 ‘약손’은 차가운 배에 열을 전달해 실제로 수축한 장을 풀어지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다만 이때 찾아오는 묘한 안정감과 편안함은 단지 배가 따뜻해져서 느끼는 것만은 아니다. 스킨십은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 반응을 감소시키는 힘이 있다. 누군가와 물리적으로 부드럽게 닿아 있는 느낌은 우리 몸에 “괜찮아”라는 메시지를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말로 하는 위로보다 몸짓으로 하는 위로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물론 당사자가 원하는 상황에 한해서다. 이번 기사에서 쓰다듬고, 마사지하고, 안아주는 행위를 가리켜 ‘따뜻한 스킨십’이라 부르기로 한다.

● 뇌에 “괜찮다”는 신호 전달

따뜻한 스킨십은 두려움과 불안을 담당하는 뇌 활동을 감소시켜 신체적,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효과가 있다. 몸의 여러 경로를 통해 뇌에 안전하다는 메시지가 전달되기 때문이다.

피부에 부드러움을 느끼거나, 손을 잡거나, 마사지를 받거나, 꽉 안아서 압력을 느끼는 촉각은 뇌로 전달된다. 촉각에 반응하는 신경 섬유인 C섬유의 작용도 이 과정에 기여하는 원리 중 하나다. C섬유는 찌르거나 날카로운 자극에는 반응하지 않고, 오직 부드러운 자극에만 반응한다. 스킨십을 통한 촉각 자극이 뇌에 전달되면,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는 뇌 영역인 편도체의 활성 정도가 낮아진다. 그러면 긴장으로 높아진 심박수나 혈압이 다시 낮아져 평소 안정된 수준을 되찾는다.

따뜻한 스킨십은 몸의 각종 스트레스 반응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게티이미지
따뜻한 스킨십은 몸의 각종 스트레스 반응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게티이미지

이러한 반응은 체내에서 옥시토신 분비도 증가시킨다. 옥시토신은 안정감과 신뢰감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어 ‘사랑 호르몬’ ‘포옹 호르몬’ 등으로 불린다. 이와 동시에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분비가 감소한다. 코르티솔이 과다 분비되면 긴장, 불안, 우울감을 느낄 수 있다.

● “나 지금 떨고 있니?”…포옹 후엔 어떻게 변할까

부부, 연인 등 친밀한 관계의 따뜻한 스킨십은 이러한 효과가 가장 쉽고 빠르게 일어나도록 돕는다.

카렌 그로웬 미 노스캐롤라이나대 채플힐 캠퍼스 정신의학과 교수 연구진은 성인 183명을 대상으로 신체적 접촉이 몸의 스트레스 반응을 얼마나 낮춰줄 수 있는지 실험했다. 갑작스러운 스트레스를 유발하기 위해 연구진은 이들에게 3분 동안 다른 사람 앞에서 발표하는 과제를 줬다.

배우자나 연인이 긴장되는 일로 떨고 있을 때 가만히 다가가서 안아주거나 손잡아주면 마음이 안정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게티이미지
배우자나 연인이 긴장되는 일로 떨고 있을 때 가만히 다가가서 안아주거나 손잡아주면 마음이 안정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게티이미지

그리고 실험 참가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눴다. 한 그룹은 발표 직전에 참가자의 실제 연인과 10분간 손을 잡고, 20초 동안 껴안고 있으라고 했다. 다른 그룹은 발표를 준비하면서 아무와도 접촉하지 않고 10분 20초 동안 혼자서 조용히 있도록 했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이 발표하는 동안 몸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알기 위해 심박수와 혈압을 실시간으로 체크했다. 평소보다 심박수와 혈압이 올라갈수록 많이 긴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결과 발표 전 혼자 마음을 다스렸던 사람들보다 연인과 손잡고 포옹을 나눴던 사람들이 훨씬 덜 떠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인과 함께 있었던 사람들의 심박수와 혈압 증가율은 혼자 있었던 사람들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연구진은 “연인과 따뜻한 스킨십은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스트레스를 줄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모르는 사람 손길도 위로가 될까?

스킨십의 효과는 꼭 친밀한 관계에서만 나타날까. 물론 신생아의 경우 낯선 사람보다 부모의 손길이 닿아야 애착 관계가 돈독해지고 발달이 촉진된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 있다. 신생아에겐 촉각뿐 아니라, 엄마 냄새 등 다른 요소도 안정감을 느끼는 데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인이라면, 꼭 애착이 있는 대상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성인은 처음 보는 의료 전문가와 신체적으로 접촉했을 때도 스트레스와 긴장도가 낮아지는 효과가 있었다. 이러한 연구는 주로 의료계에서 수술을 앞둔 환자의 불안감을 낮춰주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진행됐다.

잘 모르는 사람이 내민 손도 극도로 긴장된 상황에서 긴장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게티이미지
잘 모르는 사람이 내민 손도 극도로 긴장된 상황에서 긴장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게티이미지

여러 연구에 따르면, 간호사 등 의료진이 해주는 단 5분간의 손 마사지로도 수술 직전 환자들의 긴장도가 크게 완화됐다. 국내 연구 가운데에도 백내장 수술과 같은 비교적 간단한 수술부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척추 수술 등 다양한 수술 직전에 실시한 손 마사지의 효과를 입증한 연구가 많이 있다. 이들 연구에서는 의료진이 환자에게 5분 이상 손 마사지를 해줬더니, 환자의 불안 정도가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사지를 받은 환자들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노르에피네프린, 에피네프린이 감소했고, 평소보다 증가했던 혈압과 심박수도 증가율도 완화됐다. 이는 불안, 스트레스, 피로도가 감소하고 마사지 받기 전보다 이완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지 손 마사지를 받아서 손이 시원해진 효과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극도로 긴장된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과 부드러운 접촉을 통해 “괜찮다”는 메시지가 뇌로 전달됐기 때문이다.

● 느리고 부드러운 터치, 마음의 상처도 낫게 해

따뜻한 스킨십은 마음의 상처도 치유하는 힘이 있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터치의 속도도 중요하다는 점이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 84명을 모집해 컴퓨터 공놀이 게임을 시켰다. 3인 1조가 되어 공을 서로 주고받는 간단한 게임이다. 참가자들에게는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2명도 실제 사람이라고 알려줬지만, 사실은 프로그래밍이 된 가짜 플레이어였다.

첫 번째 게임은 3명이 서로 똑같은 횟수로 공을 주고받으며 사이좋게 마무리됐다. 두 번째 게임이 문제였다. 연구진은 사전에 게임 프로그램을 조작해 참가자들이 따돌림당하고 있는 것처럼 꾸몄다. 공이 30번 왔다 갔다 하는 동안 참가자들은 겨우 2번만 공을 패스받았다. 28번은 나머지 2명끼리만 공을 주고받도록 했다. 다른 사람에게 따돌림당한 것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한 실험적 장치였다.

이렇게 왕따 상황을 겪게 한 이후 재미있는 조치가 취해졌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의 눈을 가리고, 부드러운 붓으로 팔을 70초간 쓰다듬었다. 참가자 절반은 1초당 3cm를 이동하는 느린 속도로, 나머지 절반은 1초당 18cm를 이동하는 빠른 속도로 쓰다듬는 느낌을 경험했다. 그런 뒤 참가자들이 왕따 경험으로 인해 얼마나 정서적으로 긴장하고 위축됐는지 검사했다.

그 결과 붓으로 느리게 쓰다듬은 그룹은 빠르게 쓰다듬은 그룹보다 따돌림으로 인한 심리적 타격감이 훨씬 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쓰다듬는 속도에 따라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정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빠르게 쓰다듬는 것보다 느리고 부드럽게 느껴지는 촉각은 인간의 신경 생리학적 특성과 연관되어 다른 대상으로부터 심리적으로 위로받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루 8번 포옹 등 짧은 스킨십을 하면 옥시토신이 분비돼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게티이미지
하루 8번 포옹 등 짧은 스킨십을 하면 옥시토신이 분비돼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게티이미지

따뜻한 스킨십의 빈도도 중요하다. 어쩌다 한 번 1시간씩 안마해주는 것보다 하루에 몇 초라도 자주 안아주는 것이 훨씬 효과가 좋다. 독일 보훔루르대 의대 연구팀이 신체적 접촉과 정신적, 신체적 이점에 대한 전 세계 연구 212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접촉 시간을 한 번에 오래 하는 것보다 자주 하는 게 더 효과가 큰 것으로 분석됐다. 자주 쓰다듬고 안아줄수록 우울, 불안, 통증 감소 효과가 높아졌다. 뇌신경과학 연구의 권위자인 폴 잭 미 클레어몬트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하루 8번 포옹을 권장한다.

이러한 결과를 종합하면 서로 토닥여주고 안아주기 어려웠던 지난 몇 년간의 팬데믹 기간에는 우울, 불안, 스트레스에 유독 취약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마음껏 손잡고, 안아줄 수 있는 만큼 따뜻한 스킨십으로 서로에게 보다 큰 위로를 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최고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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