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산딸기’(1957년)에서 여든이 다 된 주인공 이삭 보리는 박사학위 취득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석한다. 조선 후기 문신 정기안(1695∼1775)도 여든 되던 해 소과(생원·진사를 뽑던 과거) 급제 60주년을 기념한 의식에 다녀온 뒤 다음 시를 남겼다.
때는 1774년 갑오년. 시인은 꼭 60년 전 갑오년에 진사 시험에 급제했다. 과거 합격 60주년이 되는 것을 ‘회방(回榜)’이라고 한다. 합격자가 장수해야만 맞이할 수 있는 드문 영예였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예포가 울리는 가운데 박사학위 취득 50주년 기념 포상을 받았던 것처럼, 시인도 임금이 궁궐에 불러 백패(白牌)를 하사하고 등과(登科)할 때와 같은 의식을 거행했다. 영조는 회방을 기념해 시인에게 호피(虎皮)를 하사하고 호위를 붙여 고관이 타는 수레에 태워 보냈다.(‘영조실록’) 이날은 시인의 삶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하루였다. 돌아와 축하 잔치(聞喜宴)를 열었지만, 시인은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시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젊은 날 친족 정사효가 무신란(戊申亂)에 연좌돼 죽자 자신의 본래 이름인 사안(思安)을 기안으로 바꿀 만큼 전전긍긍했다. 두 번이나 아내를 잃고 자식들을 앞세우기도 했다. 이 무렵 시인은 이영보를 꿈에서 만나고 서글퍼하는 시를 남겼다. 이영보는 진사 시험에 함께 합격한 각별한 벗이었지만 세상을 뜬 지 오래였다. 영화 속 주인공이 가족에게마저 냉정하고 완고한 학자였던 것처럼, 시인도 융통성 없고 직설적인 성격으로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다. 하지만 이영보만은 시인을 믿고 받아주었다.
이날 만감이 교차해서인지 시인은 이제 몇 해나 더 살지 알 수 없기에 폭음을 마다할 필요가 없다고 읊었다.(‘未用辭多酌, 終能得幾春.’) 축하차 온 벗들마저 모두 머리가 하얗게 세었기에.(‘朋來頭滾雪’)
영화 제목 ‘산딸기’는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개인적인 추억의 장소를 뜻한다고 한다. 영화에선 기념식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만난 사람들을 통해 주인공의 아픈 기억이 그려진다. 어떤 영광으로도 채울 수 없는 시인의 회한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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