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민

김소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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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소민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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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4-09-05~2024-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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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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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100년 살고 보니 삶의 해답은 역시 사랑

    “철학에 유명한 얘기가 있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런데 내가 쭉 살아보니까 ‘나는 사랑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게 맞아요.” 올해 105세가 된 철학자인 저자의 말이다. 최근 펴낸 신간을 계기로 전화로 만난 그는 30분 내내 사랑을 강조했다. “사랑에서 성공하는 사람이 운동 경기에서 이길 사람이고,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도 우승할 사람이에요.” 신간은 노교수의 사랑을 일깨워준 인물과 일화를 담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어떻게 사랑해야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다뤘다. 윤동주 시인, 황순원 소설가, 홍창의 의학박사 등 학창 시절 벗들과 교유한 이야기도 흥미롭게 펼쳐진다. 20여 년 전 사별한 아내와의 사랑에 대해 물었다. “생전 아내가 20년 동안 병상에 있으니까 다들 ‘힘들어서 어떡하나’ 자꾸 그랬어요. 젊을 때는 연애하는 감정으로 살아 행복하고, 60이 넘으면 사랑 자체가 우정 비슷하게 되고 인간애로 바뀌어요. 아내가 병중에 있다고 해도 우정 비슷했던 사랑은 변함없어요. 그게 사랑의 행복이지, 사랑의 고통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책에는 저자가 자녀들과 함께 아내를 추억한 이야기도 담겼다. 자녀들이 “엄마가 왜 그리 고생만 하다 돌아가셨는지 모르겠다”고 하자 저자는 “엄마는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전쟁과 가난 속에서 너희들을 키웠던 그 힘든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할 거야. 그때가 가장 행복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녀를 지혜롭게 사랑하는 방법을 물었다. “어렸을 때는 보호해주면 돼요. 좀 자란 다음에는 대화해주고 같이 가주는 게 사랑이에요. 고등학교 졸업할 때쯤 되면 아들딸을 앞세워요. 간섭하지 않고 스스로 책임을 느끼며 살게 하는 거예요.” 저자는 지금도 집필과 강연을 이어가는 ‘현역’이다. “일을 사랑했어요. 일을 사랑한다는 건 (함께 일하는) 상대방을 사랑하는 거예요. 나는 내 강의를 듣는 사람들에게 일생을 사는 동안 기억할 만한 좋은 내용을 전해주겠다고 생각해요. 그게 사랑의 선물이라고 봐요.”김소민 기자 [email protected]}

    • 9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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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년전 창경궁 온실의 비밀… 흙-곤충까지 공부했어요”

    소나기가 내리던 어느 여름날 소설가 김금희(45)는 창경궁 처마 밑에 오래오래 머물렀다. 20대 중반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며 창덕궁과 창경궁에 관한 책을 만들던 때였다. 궁궐 답사를 온 첫날 갑작스레 비가 내렸다고 한다. 당시 집안은 붕괴 직전이었다. 아버지 사업이 실패하면서 빚쟁이를 피해 이사를 다녔고 부모님은 은둔했다. 기세 좋게 쏟아지던 비와 비가 그친 뒤의 말간 풍경. 그 모습이 20년 가까이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신작 장편소설 ‘대온실 수리 보고서’(창비)를 낸 김금희를 2일 서울 종로구에서 만났다. “인생에 뭔가 흠집이 난 것 같다고 느낄 때 그 기억과 많이 싸우게 되잖아요. 이번 작품을 쓰면서 그 기억 자체가 나를 구성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기억을 가지고 또 다른 집을 짓고 수리하고 보존하는 과정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을요.” 신간은 창경궁 대온실을 배경으로 현재의 보수공사와 과거 대온실을 만든 일본인의 이야기를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한다. 대온실은 1909년 창경궁 안에 지어진 한국 최초의 서양식 온실. 100년 넘게 한자리를 지킨 대온실을 중심으로 근현대사의 흥망성쇠가 펼쳐진다. 책에는 우진각 지붕, 우물마루 같은 전통 건축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그는 “국가유산청에서 발표한 문화재 수리 복원과 관련된 문헌은 모두 읽은 것 같다”고 말했다. 부록으로 실린 참고문헌 목록만 8쪽에 달한다. 책에는 인물들이 땅을 파다가 겨울잠을 자던 두꺼비를 깨우거나 지렁이, 땅강아지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장면이 생생히 묘사된다. “현장에서 작업을 잠시 중단할 때 무엇으로 덮는지, 덮기는 하는지 궁금했어요. 너무 실무적인 부분이다 보니 아무리 자료를 찾아도 없는 거예요. 그러다 연구자들 사진 뒤편에 푸른 천막이 덮인 걸 발견했어요. ‘오늘 한 건 했다’ 싶어 무릎을 쳤죠.” 그렇게 하나하나 힌트를 얻어가며 사실성을 높였다. 일제강점기 창경궁은 동·식물원을 둔 유원지 ‘창경원’으로 운영됐다. 책은 태평양전쟁 말기 창경원 동물들이 어떻게 방치되다 아사했는지 보여준다. 광복 후 일본과 한국 양쪽에서 내쳐진 ‘잔류 일본인’에 대해서도 조명한다. 김금희는 “역사를 좀 더 세밀하게 한 개인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가에게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를 물었다. 그는 “책 읽는 공동체는 영원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같은 시간을 들였을 때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와 속도와 양을 영상이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올해 2월 극지 과학자들이 등장하는 차기작을 위해 한 달간 남극 세종기지에 다녀왔다. 조디악 보트가 뒤집힐 때를 대비해 수중 훈련 등 사전 훈련도 받았다. 과학자들과 지내며 이끼, 대기 등 한 가지 연구 주제에 꽂혀 있는 그들에게 존경심을 느꼈다고 한다. “제가 고집쟁이들을 되게 좋아해요”라고 수줍게 고백하는 작가 역시 그들만큼 단단해보였다.김소민 기자 [email protected]}

    •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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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지, 700명 등장하는 K드라마 원조”… 10년 만에 일본어 완역

    “‘토지’는 불륜, 사랑, 질투, 시기, 살인, 치정, 복수에 이르기까지 700여 명의 다양한 삶을 볼 수 있습니다. 너무 흥미진진해서 ‘K드라마’의 원조라고 할 수 있죠.”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20권(사진)을 최근 공동으로 완역한 일본어 번역자 시미즈 치사코 씨(56)는 ‘토지’의 매력을 이렇게 말했다. “교정 때만 (전권) 3번을 읽었고 번역 작업 때까지 포함하면 세기 어려울 정도로 ‘토지’를 탐독했다”는 그는 공동 번역자인 요시카와 나기 씨와 함께 진행한 토지 20권 전권의 일본어 번역 작업을 올해 마쳤다. 2014년 번역에 착수한 지 10년 만. 일본어판 ‘토지’의 마지막 권은 지난달 30일 현지에서 출간됐다.일본어판 전권 출간을 나흘 앞둔 지난달 26일 서울에서 만난 시미즈 씨는 여러 감정이 혼재된 느낌이었다. 그는 다양한 사투리 표현과 방대한 역사적 배경에 번역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작품이 주는 매력에 흠뻑 빠져 10년을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탐욕에 눈이 먼 조준구도 아들 조병수를 통해 보면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700여 명에 달하는 등장인물을 보면서 ‘사람을 한쪽으로만 볼 수는 없다’는 걸 배웠습니다. 인간관계로 스트레스를 받는 현대인에게 추천하고 싶네요.” 두 번역자가 교체 없이 뚝심 있게 번역했기에 주인공 서희 등 등장인물들의 어투 등을 일관성 있게 옮길 수 있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시미즈 씨는 서희가 광복 소식을 듣고 자신을 휘감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느끼는 결말 장면에 빗대 “10년의 대장정을 마쳤을 때 어깨가 쑥 내려가는 느낌이었다”고도 했다. 일본 오사카 외국어대에서 한국어를 전공하고 요미우리신문에서 15년간 기자로 일한 그는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김하나·황선우) 등을 일본어로 옮긴 번역가. 그는 번역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작품 배경이 되는 경남 하동군을 비롯해 중국 간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 등을 종횡무진 누비기도 했다. 독립운동가들이 ‘일송정 푸른 솔은’을 부르며 의지를 다진 중국 용정의 비암산 소나무도 보고 왔다고. 시미즈 씨는 “제가 ‘토지’ 번역가니까 갔지 그런 데가 있는지도 몰랐다”며 “이젠 역사를 볼 때 일본, 한국만 보는 게 아니라 아시아를 보게 된다. 아마 ‘토지’의 힘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일본에서 ‘토지’ 독자들을 대상으로 답사 사진들을 보여주며 강연도 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토지’에 소위 미쳐 있던 그였지만 처음에는 번역을 망설였다고 한다. ‘토지’가 반일(反日) 소설이라는 일각의 선입견 때문이었다. 번역 제안을 받고 고민하던 중 당시 토지학회 회장이던 최유찬 연세대 교수를 만난 뒤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최 교수님이 ‘토지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소설이다. 반일 소설로 읽는 건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라고 말씀해 주셔서 용기를 얻었어요. 실제 번역해 보니 일본인을 나쁘게 그리는 장면도 있지만 그것은 실제 있었던 일이고, 작가가 일제와 개인을 구별해 그리려고 한 것이 보입니다.” ‘토지’의 일본 내 관심은 높다. 1, 2권이 동시 출간된 2016년 일본 도서관협회 추천도서로 지정됐고, 아사히·요미우리·마이니치 등 주요 신문이 비중 있게 보도했다. “어떤 나이 드신 분이 엽서를 보내왔는데 ‘눈이 점점 안 보이고 곧 죽을 수도 있으니 번역을 서둘러 줬으면 좋겠다’고 적혀 있기도 했습니다.” 시미즈 씨는 올 8월 마지막 퇴고 작업을 하며 강원 원주시 토지문화관에 3주간 머물렀다. 당시 근처 버스정류장에 박 작가의 시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작가들을 엄마처럼 지켜보는 따뜻한 마음을 표현한 시였어요. 그걸 보면서 선생님이 거기 계시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회촌 골짜기를 떠나 도시로 가면/그들도 어엿한 장년 중년/모두 한몫을 하는 사회적 존재인데/우습게도 나는/유치원 보모 같은 생각을 하고/모이 물어다 먹이는/어미 새 같은 착각을 한다’(박경리 ‘산골 창작실의 예술가들’ 중에서)김소민 기자 [email protected]}

    • 2024-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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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 콘텐츠 세계적 인기, K로 포장할 필요 없어”

    “‘K드라마’가 아니라 그냥 ‘드라마’죠.” 한국계 미국 배우 스티븐 연(41·사진)이 지난달 29일 서울 이태원에서 열린 현대카드 ‘다빈치 모텔’ 강연에서 “한국의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아진 건 부인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며 “‘K’로 규정할 수도 있지만 포장할 필요가 없다는 걸 이해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물론 처음에는 그렇게 포장하는 일이 필요할 수도 있다”면서도 “다만 그런 건 거쳐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해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로 에미상 미니시리즈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는 ‘성난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큰 인기를 얻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슬픔과 분노 같은 감정들을 공유하고 싶었고, 스스로와 서로를 용서하고 싶은 마음을 전하고 싶었는데, 그런 부분이 반향을 일으킨 것 같다”고 했다. 스티븐 연은 강연에서 미국에서 배우로 성장한 과정, 그동안 출연한 작품 등에 관한 이야기를 전했다.김소민 기자 [email protected]}

    • 202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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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찌른 ‘칼’의 폭력 맞서, 나는 예술로 답하기로 했다”

    “그(가해자)가 이야기의 일부가 되어야 하는 게 분명하고, 그를 나의 등장인물로 만드는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인도계 영국 작가 살만 루슈디(77·사진)는 2년 전 이슬람 극단주의자로부터 당한 테러를 회고한 ‘나이프’(문학동네)에서 가해자와의 만남을 상상으로 그려낸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루슈디는 이 회고록에 “글을 쓴다는 것은 일어난 일을 내 것으로 만들어 단순한 피해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나만의 방법이었다. 나는 폭력에 예술로 답하기로 했다”고 썼다. 루슈디는 ‘나이프’ 국내 발간을 맞아 서면 인터뷰에 응했다. 루슈디는 1981년 출간한 소설 ‘한밤의 아이들’로 부커상 3관왕(1981년 부커상, 1993년 부커 오브 부커스, 2008년 베스트 오브 더 부커)에 오른 세계적 작가다. 1988년 펴낸 소설 ‘악마의 시’가 신성모독 논란에 휩싸이며 이듬해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로부터 사형선고를 받고 영국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하지만 ‘예술의 자유’에 대한 그의 시련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2022년 8월 미국 뉴욕에서 강연 도중 레바논계 이슬람 극단주의자에게 칼로 10여 차례 찔려 오른쪽 눈을 잃은 것. 루슈디는 신간에 흉기 피습 트라우마를 방치하지 않고, 자신의 일부로 만드는 과정을 담았다. 그는 “‘나이프’는 처음에는 괴로웠지만 쓸수록 쉬워졌다. 이 책을 씀으로써 나는 이 서사에 대한 소유권을 다시 얻었다”고 말했다. 책에서 루슈디는 범행 당시 24세이던 테러범에게 “왜 그렇게 기꺼이 인생을 망쳐버린 것이냐, 내 인생이 아닌 네 인생을”이라고 묻는다. 그는 “A(테러범)가 내 책을 읽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성찰과 반성을 하며 살게 될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이젠 그가 ‘내 것’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범인은 테러 전 루슈디의 글을 2쪽도 채 읽지 않았고, 그에 관한 유튜브 영상 2편만 봤을 뿐이었다. 루슈디는 “정보에 너무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요즘 같은 시대에 우리는 오히려 전보다 적은 정보를 알게 되었고 더 무지해졌다”며 “이런 상황을 단번에 바꿀 ‘마법의 지팡이’ 같은 건 내게 없다. 그저 내 일을 할 뿐”이라고 했다. 폭력에 저항하는 루슈디의 방패는 사고 전이나 후나 ‘글쓰기’다. 그는 “글쓰기는 지금도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에 참여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다른 모든 자유도 함께 죽는다. 표현의 자유는 우익과 좌익 양측으로부터 강력히 보호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이프’의 주제의식은 무겁지만 문체는 그렇지 않다. 아내이자 시인인 일라이자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며, 작가 특유의 위트가 곳곳에 묻어 있다. 루슈디는 “범죄에 대한 진술만이 아니라 문학적 텍스트로서 즐길 수 있는 풍부하고 다층적인 글을 쓰고 싶었다”며 “독자로서 나는 유머와 재치가 없는 책을 좋아하지 않고 그런 책은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김소민 기자 [email protected]}

    • 202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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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착한 일 자랑하고 다니니, 주변에 기적같은 일이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알게 하라. 그것도 가능한 한 많은 왼손이 알게 하라. 무수한 손들이 힘을 합쳐 돕도록 하라.” 타인을 향한 선의와 친절을 전염시키라니 무슨 낭만적인 소리인가 싶을 수 있겠다. 하지만 2001년부터 ‘테드(TED)’를 이끌며 전 세계에 지식 나눔을 실천해 온 저자의 말이라면 달리 들린다. TED 대표인 그는 신간에서 ‘관대함의 전염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갈등하고 분열하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세계적인 온라인 무료 강연 플랫폼 TED는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리처드 도킨스, 제인 구달, 마이클 샌델, 미셸 오바마 등 내로라하는 명사들의 지식과 영감을 100개 이상의 언어로 세계에 전파하며 해마다 10억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2만5000회가 넘는 TEDx(‘x’라는 지역에서 자체 조직된 TED) 행사가 개최됐고, 20만 개 이상의 온라인 강연 아카이브가 구축됐다. 불과 12명뿐인 본사 팀 인원으로 일군 성과다. 신화의 시작은 이랬다. 2006년경 데이터 전달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면서 온라인 비디오가 막 등장했다. 시험 삼아 강연 6개를 통째로 웹사이트에 올렸는데 입소문을 타면서 수만 건의 조회 수가 나왔다. 오프라인 강연료가 주 수입원이던 당시 모든 콘텐츠를 온라인에 무료로 공개하는 게 쉬운 선택은 아니었지만 실행에 옮겼다. 그 뒤 벌어진 일은 모두 아는 대로다. 웹사이트 방문자가 수백만 명으로 급격히 늘었고 콘퍼런스 수요도 늘었다.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TED는 예외적인 사례 아니냐고. 온라인 영상이 막 성장하던 시기에 때맞춰 무료 콘텐츠를 제공하면서 타이밍도 맞아떨어졌다. 그런데 초연결 시대 관대함의 상승 효과는 TED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는 이 연쇄 반응을 극적으로 증폭시킬 잠재력이 있다. 99세 영국 할아버지가 ‘정원 100바퀴 돌기 챌린지’를 통해 3200만 파운드(약 540억 원)를 모금하고, 노숙인들의 머리를 깎아주고 이들의 사연과 헤어컷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DoSomethingForNothing(대가를 바라지 말고 뭐든 하라)’ 운동 등이 그 사례다. ‘이기적이지 않은 선행은 없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저자는 자기 평판을 위해 관대함을 베푸는 사람을 오히려 대놓고 칭찬하라고 권한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이 선하게 행동하도록 설득할 문이 열리기 때문이다. “어떤 행동이 정말로 위선인지 확실하지 않으면 일단은 선의로 해석하라”, “뭐가 됐든 베푸는 일은 쉽지 않다. 상대를 비판할 꼬투리를 찾는 대신 먼저 격려하고 그 다음에 어떻게 더 나아질 수 있을지 논의하라”는 것이다. 관대함을 실천하고 이를 전염시킬 다양한 방법도 제시한다. 각자 처한 여건이 다른 상황에서 과연 어디까지 남을 도와야 할지 그 적정선이 궁금한 이에게 구체적인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김소민 기자 [email protected]}

    • 2024-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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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낭독회 대담 강연 공연… 지금 대학로는 ‘문학의 거리’

    대학로가 다양한 문학의 색채로 물든다. 문학을 기반으로 한 각종 낭독회, 강연, 공연 등이 닷새간 다채롭게 펼쳐진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문학주간 2024’ 행사를 27일부터 10월 1일까지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연다고 26일 밝혔다. 문학주간은 문학인이 참여해 독자 및 관객과 문학의 의미와 가치를 얘기하며 서로 소통하는 축제다. 올해는 190여 명의 문학인과 예술인이 참여해 50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9회째를 맞은 올해 문학주간의 주제는 ‘스핀오프’(원전에서 파생한 작품). 현실보다 더 큰 상상력의 세계인 문학을 우리 가슴속에 품어서, 아직 오지 않는 시간에 대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 보자는 뜻을 담았다. 개막 공연은 27일 오후 7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열린다. 올 5월 타계한 신경림 시인을 기리는 헌정 낭독공연 ‘낮고 가난한 자리에 남아’가 열리는데 시인 강우근, 신미나의 낭독, 가수 하림의 노래로 꾸며진다. 28일 오후 5시 평론가 소유정, 소설가 강화길, 최은미가 참여하는 ‘다음 페이지로, 확장되는 소설’ 등을 비롯해 여러 이야기쇼와 낭독회가 이어진다. 10월 1일 오후 3시에는 정진새 연출의 낭독공연 ‘역사의 알고리즘’이 펼쳐진다. 코로나 팬데믹과 연극의 종말을 다루며, 로봇 배우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같은 날 오후 7시에는 폐막공연 ‘우리 곁의 파랑’이 열린다. 천선란의 소설 ‘천 개의 파랑’을 원작으로 한 창작가무극 ‘천 개의 파랑’의 연출가 김태형과 배우들, 그리고 원작자 천선란이 참여해 텍스트가 공연으로 전환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나누고, 노래 공연도 이어진다. 축제 기간 마로니에공원 지하 다목적홀에서는 올가 토카르추크의 소설 ‘낮의 집, 밤의 집’에서 영감받아 기획한 공간을 전시한다. 야외 마로니에공원에서는 문학작품의 구절을 방문객이 완성해보는 ‘스핀오프 문장 완성하기’와 ‘북라운지 & 포토존’을 운영한다. 27일 소설가 손보미와 관객이 함께 작품을 낭독하는 ‘작가와 함께하는 낭독극장’, 10월 1일에는 소설가 배수아와 함께하는 ‘BS 없는 BS낭독회’가 열린다. 행사 기간 ‘예술가의 집’에서는 문학인들이 기획한 낭독, 공연, 토크, 대담 등이 이어진다. 행사 기간 전국 곳곳에서도 공연 등이 이어진다. 27일 부산에서는 ‘Spin-off, 내 안의 금쪽이’ 공연이, 28일 대구에서는 토크콘서트 ‘Spin-OFF: 동부민요’ 등이 열린다. 이번 축제의 모든 프로그램은 네이버 예약을 통해 무료로 사전 신청할 수 있다. 매진 시 ‘노쇼(no show)’분에 대해 현장 참여도 가능하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홈페이지와 문학주간 공식 블로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김소민 기자 [email protected]}

    • 2024-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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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그림보다 재미있는 작품 뒷 이야기

    멕시코 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1942년 작 ‘꽃을 파는 사람’을 들여다보자. 결혼식 부케로 인기 있는 꽃 칼라가 작품 가득 그려졌다. 조명처럼 환한 칼라 밑엔 여인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자기 몸보다 큰 꽃바구니를 등에 멘 채다. 처음 그림을 마주하면 화려하고 아름다운 칼라에 시선을 뺏기지만 바구니를 멘 여인을 발견하면 그녀의 삶의 무게를 더 의식하게 된다. 아름답지만 고단함이 함께 느껴지는 아이러니한 작품이다. 화가 리베라의 인생 또한 그러했다. 그는 스스로 ‘그림 그리는 노동자’라고 여기며 하루에 18시간 이상 그림을 그렸다. 말년에는 팔에 마비 증상이 왔지만 그리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유럽 미술만이 예술로 인정받던 시대에 미술이란 모두를 위한 것임을 일깨운 혁명가 리베라. 그의 빛나는 이력 뒤엔 꽃으로도 숨길 수 없는 고단한 삶이 있었다. 그림 뒤편의 이야기를 알면 그림이 더 잘 보인다. 프랑스 문화부 공인 문화해설사인 저자의 설명을 곁들인다면 금상첨화다. 저자의 전작인 ‘기묘한 미술관’(빅피시·2021년), ‘위로의 미술관’(빅피시·2022년)은 각각 3만 부 이상 팔렸다. 특히 ‘기묘한 미술관’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미술관을 이전처럼 찾기 어려워진 2021년 출간 즉시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전작에선 비교적 대중적인 작품을 주로 다뤘다면 ‘더 기묘한 미술관’에선 잘 알려진 화가의 숨겨진 이야기 혹은 잘 알려지지 않은 화가의 새로운 이야기를 소개한다. 작품의 배경 지식인 사조, 화풍, 기법에 대해서도 교양 수준에서 두루 다뤄 이해하기 쉽다. 역사도 함께 알게 되는 건 덤이다. 1904년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 화가 펠릭스 누스바움은 벨기에에 정착하지만 1940년 독일군이 벨기에를 침공한 후 남프랑스 수용소로 보내졌다. 참혹한 도피 기간에 그는 ‘유대인 신분증을 든 자화상’ ‘피난처’ ‘광란의 광장’ 같은 작품을 남겼다. 누스바움은 1944년 ‘죽음의 승리’를 그리고 아우슈비츠행 열차에 실려 가 가스실에서 사망했다. 그가 탔던 열차가 아우슈비츠로 가는 마지막 열차였다. 김소민 기자 [email protected]}

    • 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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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수 아이유, 데뷔 16주년 맞아 영아원 등에 2억2500만원 기부영아원 등에 2억2500만원 기부

    가수 아이유(사진)가 데뷔 16주년을 맞아 2억2500만 원을 기부했다. 아이유는 매년 데뷔 기념일(9월 18일)마다 자신의 이름과 팬클럽 ‘유애나’를 합친 ‘아이유애나’란 이름으로 기부를 이어오고 있다. 18일 소속사 이담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아이유는 한국어린이난치병협회, 사단법인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 배달, 한사랑마을, 한사랑영아원에 기부금을 전달했다. 기부금은 희소 난치성 질환을 앓는 어린이 지원, 혼자 사는 노인들의 건강을 위한 우유 배달, 중증장애인을 위한 시설 내 노후 엘리베이터 교체 비용 지원, 영아원 내 편의시설 환경 조성 등에 쓰일 예정이다. 아이유는 “16년 동안 제게 사랑이 얼마나 좋은 건지 가르쳐준 ‘유애나’와 한 이름으로 뜻깊은 일을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이제는 가장 큰 낙”이라고 소감을 밝혔다.김소민 기자 [email protected]}

    • 2024-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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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 특별한 자서전 쓴 보통사람들[작은 도서관에 날개를]

    “제가 해방둥이로 태어나서 손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었어요. 우리가 어떻게 고난을 극복해 왔는지.” 3일 충북 청주시 은세계작은도서관. 매주 화요일 진행되는 ‘1인 1책 펴내기’ 수업이 한창이었다. 이날 수업에선 수강생 박영순 씨(79)의 자서전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1945년생 ‘해방둥이’인 그는 지난해 인생 첫 자서전 ‘그리움이 닿는 곳’(일광)을 펴냈다. 이 책엔 6·25전쟁으로 피란할 당시 집에서 키우던 백구와의 이별, 3개월 만에 돌아온 집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파괴된 이야기 등이 담겼다. 가족끼리 조촐한 출간기념회도 열었다는 박 씨는 “시숙이 ‘제수씨 책을 보고 눈물이 났다’고 하더라”며 미소 지었다. 등단 작가로 박 씨의 자서전 작성을 지도한 임미옥 강사는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진짜 삶’의 이야기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고 말했다. 최고령 수강생 이명욱 씨(81)는 자서전 ‘사랑이었나’(일광)에 남편과 연애 시절의 알콩달콩한 에피소드를 담았다. 당시 남편의 애칭이 ‘승우 오빠’였다고. 이 씨는 “그 얘기를 여든 넘어서 책에 쓴 이후로 집에서 남편을 ‘승우 오빠’라고 부른다. 맨날 폭소가 터지니 집 안에 활기가 돈다”고 했다. 이날 수업은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과 KB국민은행이 후원하는 은세계작은도서관의 인기 강좌다. 수강생 13명은 40대 젊은 엄마부터 80대 어르신까지 다양한 세대로 구성돼 있다. 남녀 비율은 4 대 9. 세대도 다르고 문체도 서로 다르지만 ‘글동무’로서 깊이 소통한다. 수강생들은 매주 2쪽씩 글을 써서 강사에게 이메일로 보낸다. 이를 13부씩 출력해 나눠 읽고 수업시간에 토론한다. 2017년부터 은세계작은도서관에 출강하며 34명의 자서전 출간을 도운 임 강사는 “두서가 없더라도 일단 쓰라고 조언한다”며 “처음엔 카톡 메시지도 길게 못 쓰던 분들이 2, 3년 꾸준히 배우면 자기만의 자서전을 써낸다”고 했다. 청주시에서 출판비로 인당 50만 원을 지원하고, 여기에 사비 100만 원을 보태 초판(200권)을 찍는다. 시판되는 책은 아니지만 여러 기관에서 찾는단다. 이 씨의 자서전은 초판에 이어 최근 재판(200권)도 찍었다. 2013년 청주가경노인복지관 안에 들어선 은세계작은도서관은 연면적 107㎡ 규모로 6893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수강생들은 “문학이라는 평생 친구가 생겼다”고 입을 모은다. 김선희 씨는 2018년부터 7년째 수업을 듣고 있다. 40년 넘게 교직에 몸담고 퇴직한 김재범 씨는 지난해 자서전을 완성한 데 이어 요즘은 수필집 쓰기에 도전하고 있다. 김 씨는 “한번 문학의 길로 접어들면 평생 공부가 아니겠느냐”며 웃었다.청주=김소민 기자 [email protected]}

    • 2024-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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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너무 아름다워 훔쳤다” 세기의 절도 혹은 뒤틀린 사랑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감상을 위해 역사상 가장 많은 예술작품을 훔친 특이한 도둑이 있다. 그의 이름은 프랑스인 스테판 브라이트비저(1971∼). 1994년부터 2001년까지 유럽 전역에서 200여 회에 걸쳐 예술품 300점 이상을 훔쳤다. 금전적 가치로 환산하면 약 2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그가 내다 팔기 위해 훔친 작품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아름다움에 둘러싸여 마음껏 즐기고 싶었다’는 게 범행 동기였다. 박물관에서 가장 가치 있다고 꼽는 작품은 남겨두고 오로지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만 골라서 털었다. 그러곤 장물들을 집 다락방에 고이 보관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벽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방 안을 모두 그림으로 채웠다. 그림이 하도 많아 방 전체가 색색의 소용돌이를 치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크라나흐, 브뤼헐, 부셰, 와토, 호이옌, 뒤러 등 한 시대를 풍미한 거장들의 작품으로 가득 찬 ‘보물상자’ 안에 사는 삶이었다. 이 흥미로운 범죄자의 이야기가 저널리스트이자 회고록 작가인 저자의 손에서 다시 태어났다. 신간은 브라이트비저의 삶을 연대순으로 추적한 38개 장으로 구성됐다. 유년 시절부터 시작해 그가 어떻게 작품을 훔치고 보관했으며 결국 파국에 이르게 되었는지 생생하게 그려낸다. 각 장이 10쪽 내외로 짧고 술술 읽힌다. 저자는 브라이트비저에게 편지를 보내고 대면 인터뷰를 하는 등 집필에 10년 이상이 걸렸다. 이 중 비좁은 호텔 방에서의 인터뷰 일화가 인상적이다. 저자가 잠시 눈길을 돌린 사이 그가 노트북을 낚아챘는데 저자는 노트북이 없어졌다는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그때 브라이트비저가 도둑질 기술을 천부적으로 타고났음을 이해했다”고. 브라이트비저에게 박물관은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공간에서 작품을 오롯이 감상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 자세히 보려고 집중하면 등 뒤에서 셀카봉이 쿡쿡 찌르고, 온갖 잡담 소리가 귀에 들어오기 일쑤.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소파나 안락의자에 몸을 기댈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언제나 손을 뻗으면 작품에 닿을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어루만질 수 있어야 한단다. 책은 그의 독특한 범죄 행각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브라이트비저의 부모는 어린 시절 그가 저지른 도둑질을 방치했다. 10대 때 발병한 우울·불안증의 여파로 도벽에 빠진 아들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다. 성인이 돼선 연인 앤 캐서린이 그가 도둑질을 할 때 망을 봐주며 이를 도왔다. 브라이트비저와 달리 심미안이 없던 그녀는 예술보다는 애인에 대한 애착이 훨씬 컸다. 그녀를 면담한 심리학자들은 “혼자서는 범죄를 저지를 유형이 아니다”라고 결론 내렸다. 지극히 평범했던 사람이 어떻게 범죄에 동조하게 됐는지 그 과정도 흥미롭게 그렸다. 책 말미에 브라이트비저가 21년 만에 벨기에 미술관 ‘루벤스의 집’을 다시 방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미술관 책자에는 독일 조각가 게오르크 페텔의 ‘아담과 이브’를 도난당했다 되찾은 이야기가 나온다. 이를 훔친 장본인은 예상대로 브라이트비저. 책자 한 페이지에 걸쳐 ‘아담과 이브’의 사진이 실려 있다. ‘조각상 사진을 액자에 넣어 걸면 되겠다’고 생각한 그는 늘 하던 대로 경비원과 관람객을 따돌리고 4달러(약 5500원)짜리 안내 책자 한 권을 슬쩍한다. ‘정말 지독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면 될 것 같다. 김소민 기자 [email protected]}

    • 2024-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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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글 번역 前 이상의 창작노트 원본 첫 공개

    시인 이상(1910∼1937)이 직접 쓴 창작노트 원본이 처음 공개됐다. 일본어로 쓴 70여 쪽 분량의 노트로 ‘공포의 기록’, ‘1931년’ 등 총 23편의 습작이 담겼다. 국립한국문학관은 5일 이상의 유고 노트를 공개하며 “번역이 개입되기 이전의 창작 형태를 알고자 하는 연구자들이 애타게 찾던 자료”라며 “세필로 깨알같이 쓴 창작노트에서 이상 문학의 심층을 엿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에 공개된 노트는 1981년 작고한 조연현 문학평론가의 유족이 기증한 것이다. 앞서 이상의 유고 노트는 김수영, 김윤성, 유정 등의 한글 번역으로 1960년 이후 네 차례에 걸쳐 출간됐다. 하지만 일본어 원문이 실물로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검증에 참여한 김주현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이상의 일본어 필체가 남아 있는 자료가 많지 않다”며 “다행히 이번 유고에는 이상의 자필 서명이 남아 있는데 그 필체가 그의 소장품인 ‘전원수첩’에 실린 것과 동일하다”고 말했다. 이상의 유고 노트는 28일 개막하는 국립한국문학관 소장 희귀자료 전시인 ‘한국문학의 맥박’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11월 24일까지 서울 종로구 청와대 춘추관 1층에서 열린다. 김소민 기자 [email protected]}

    • 2024-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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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빠른 사회현상 뒤에 느린 소설… 분석-정리 가능한게 바로 매력”

    “고도 성장이 한참 전에 끝났고 모두가 다 같이 추구하는 목표는 해체된 지 오래입니다. 동경하는 대상을 비롯해 모든 게 제각각 달라지게 된 사회적 요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작가 우사미 린(25)은 한국, 일본 등의 10대들이 ‘아이돌 덕질’에 빠져드는 현상이 강화되는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과거 고도 성장기 ‘주문’처럼 지배했던 사회 발전이란 공동체의 목표가 사라진 현재, 개인화가 강화되는 측면에서 아이돌 문화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2020년 스물한 살에 발표한 ‘최애, 타오르다’(미디어창비)는 아이돌을 우상화하는 은둔형 외톨이인 주인공이 그 아이돌이 각종 루머에 휩싸이며 은퇴를 하자 크게 방황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이 작품은 이듬해 일본 최고 권위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는다. “지금까지 아이돌 문화는 존재했지만 순문학과 연결 지은 적은 없었는데, 요즘 젊은 세대에게 익숙한 문화를 주제로 한 작품이 아쿠타가와상을 받자 신선해서 주목받은 것 같습니다.” 우사미는 서울국제작가축제(6∼11일) 참석차 6일 처음 방한한다. 그에 앞서 그를 4일 서면 인터뷰로 만나봤다. 2019년 ‘엄마’(미디어창비)로 스무살에 등단한 그는 2020년 역대 최연소로 미시마 유키오상을 수상하는 등 일본 문단에서 주목받는 신인이다. 두 번째 작품인 ‘최애, 타오르다’는 2020년 9월 출간 이후 2021년 상반기까지 일본에서 50만 부 넘게 팔렸다. 그는 이 작품에서 광적이기까지 한 ‘덕질’을 통해서만 삶의 감동을 경험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렸다. 아이돌 덕질, 온라인 커뮤니티 등 10대 문화를 묘사하는 데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틱톡 세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요즘 10대들의 성장통을 그린다는 점에서 MZ세대에게 인기 있는 동영상 플랫폼 틱톡이 별칭에 붙은 것. 하지만 정작 작가 본인은 “틱톡을 설치한 적이 없어서 저 자신이 틱톡 세대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근사한 별명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젊은 세대도, 젊지 않은 사람도 묘사해 가고 싶다”고 했다. 글의 소재를 10대 문화에만 한정 짓지 않겠다는 것이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넷플릭스 등 온라인 콘텐츠가 쏟아지는 시대에 젊은 작가로서 소설 쓰기의 의미를 묻자 “소설은 느리다는 점이 매력”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소설은 사회문제가 일어나고 난 뒤에 완성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느리니까 오히려 현상을 차분히 되돌아보면서 본질을 파악하는 데 적합합니다.” 한일 교류가 활발한 지금 그는 스물다섯에 처음 한국 땅을 밟는다. “해외에 가본 경험이 적어 불안하기도 하지만 한국에는 문화적으로도, 근본적으로도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 부분이 있어 기대가 됩니다.” 그는 서울국제작가축제가 끝난 뒤에도 며칠 더 머물며 한국의 역사적 장소 등을 찾을 계획이란다. 그는 축제 둘째 날인 7일 소설가 이희주와 ‘죽도록 사랑해’라는 주제로 북토크를 연다. 그는 “사랑에는 무엇이든 구원하는 측면과 사람을 절망에 빠뜨리는 측면이 모두 있다”며 “이 모두를 받아들여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작품을 어떤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지를 ‘해시태그’로 요약해 달라고 했다. 그의 답은 이랬다.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 #무언가에 열중하고 싶은 사람 김소민 기자 [email protected]}

    • 2024-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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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담담한 문장, 깊은 울림… 가혹한 삶을 묵묵히 걷는 일

    마냥 걷고 싶은 순간이 있다. 걸으면 생각이 정리될 것 같다. 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발밑에서 낙엽이 느껴질 때 마음은 비로소 차분해진다. 아일랜드 소설가 클레어 키건의 소설집 ‘푸른 들판을 걷다’ 속 인물들도 내처 걷는다.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낸 가톨릭 사제도, 새아버지와 갈등하는 대학생 청년도 달빛 속에 마냥 걷는다. ‘맡겨진 소녀’ ‘이처럼 사소한 것들’로 국내 출판계에서도 주목받았던 소설가 키건의 초창기 단편선이 출간됐다. 국내에서는 세 번째로 소개되는 키건의 작품이다. 1999년 ‘남극’으로 데뷔한 키건은 아일랜드 교과서에도 작품이 수록돼 있을 만큼 자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 4월, 11월 국내 번역 출간됐던 작품들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몇 주째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번 선집에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아일랜드의 현실을 예리하게 그려낸 단편소설 7편이 수록됐다. 간결하고 절제된 문장으로 여운을 남기는 특징은 여전하지만 보다 직접적으로 현실의 문제들을 파고든다. 7편 중 6편이 아일랜드를 무대로 하는데,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와 남성 인물들이 등장한다. 인물들이 처한 현실은 암울하고 고단하다. 표제작 ‘푸른 들판을 걷다’에서 가톨릭 사제인 주인공은 성직자라는 역할과 세속적인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다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낸다. ‘작별 선물’ 속 아버지는 아내의 묵인하에 어린 딸을 성적으로 학대한다. 그는 딸이 뉴욕으로 떠나는 날에는 밖으로 나와 보지도 않고 침대에 누워 작별 인사를 받는다. ‘삼림 관리인의 딸’에 등장하는 디건은 아내와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는 방법을 모르고 오로지 자기 땅에 집착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2004년 외국 작가들의 단편을 엮은 선집을 출간하며 “따뜻하고 심오한 장면이 머릿속에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고 평했던 단편 ‘물가 가까이’도 실려 있다. 졸부 새아버지와 가난한 시골 농가 출신 엄마, 하버드대에 다니는 아들 간의 삼자대면이 언제든 툭 터질 듯 아슬아슬하게 묘사된다. 아들은 시골 촌부로 평생 남편에게 매여 산 할머니의 에피소드를 중간중간 떠올린다. 언젠가 할머니는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바다를 보러 갔는데, 남편이 약속시간에서 5분이 지났다는 이유로 차를 출발시켜 버렸다. 할머니는 도로에 뛰어들어 차를 세워야 했고, 자신을 버리고 가려 한 남자와 평생을 함께 살았다. 할머니와 엄마의 모습이 교차되며 답답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수록된 단편들에 기승전결이 명확한 에피소드가 있는 건 아니다. 인물들은 대체로 우유부단하거나 연약하다. 현실을 뒤바꿀 만큼 강하지도 않다. 다만 걷는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그 자체가 메시지인 듯하다. 짧은 단편은 고작 16쪽에 불과하다. 산책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펼쳐볼 수 있다. 김소민 기자 [email protected]}

    • 2024-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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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과 어우러진 조선후기 정자… 포항 ‘용계정’ ‘분옥정’ 보물 됐다

    국가유산청이 ‘포항 용계정’과 ‘포항 분옥정’을 보물로 지정했다고 29일 밝혔다. 1696년, 1820년에 각각 지어진 두 정자는 자연 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조선 후기 건축 특징을 잘 보여준다. 용계정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一’자형 건축물이다. 주변 경관을 조망할 수 있도록 누마루(다락처럼 높게 만든 마루)를 뒀다. 창건 당시 여강 이씨 후손들이 수양하는 공간으로 활용됐다. 1779년 용계정 뒤편에 서원의 사당인 ‘세덕사’를 건립하면서 ‘연연루’라는 현판을 달아 서원의 문루(門樓) 역할을 하기도 했다. 문루는 아래에는 출입하는 문을 내고 위에는 누를 지은 건물을 일컫는다. 분옥정은 ‘구슬을 뿜어내는 듯한 폭포가 보이는 정자’라는 뜻을 가진 정자다. 정면에 용계천 계곡과 노거수가 있어 자연 경관이 뛰어나다. 계곡을 조망할 수 있도록 윗부분에 누마루를 두고 아래에 온돌방을 배치한 점이 특징이다. 추사 김정희(1786∼1856)를 비롯한 명사들이 남긴 현판, 각종 문헌 기록이 남아 있어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높다. 김소민 기자 [email protected]}

    • 2024-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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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통에 맞서 끝내 이겨내는… 인간의 야성 깨우고 싶다”

    지난해 9월 소설가 정유정(58)은 이집트 북서쪽 바하리야 사막에 섰다. 수백만 년 전 바다였으나 지금은 모래 위 하얗게 굳은 물결의 흔적만 남은 사막.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불모의 땅을 보며 작가는 마음이 사막 같은 인간들을 떠올렸다. 불치의 병을 앓고,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린 사람들. 만약 이들에게 이승의 고통에서 도망칠 수 있는 가상세계가 주어진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고통이 사라진 불로불사(不老不死)의 그곳은 과연 천국일까. 신작 장편소설 ‘영원한 천국’(은행나무)을 출간한 정유정은 26일 서울 마포구 한 스튜디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삶이라는 게 사실 고통이 좀 더 많다. 하지만 견디고, 맞서고, 끝내 이겨내려는 야성이 인간의 기질 안에 있다는 얘길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가 2021년 ‘완전한 행복’(은행나무) 이후 3년 2개월 만에 선보인 이번 장편소설은 공상과학(SF)과 스릴러, 로맨스를 넘나든다. 주요 배경인 사막과 유빙(流氷)의 온도 차만큼이나 뜨겁고 차다. 예약 판매 일주일 만에 4만5000부가 나가 3만 부를 추가로 찍었다. 소설에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상세계 ‘롤라’가 등장한다. 인간이 정보 형태로 네트워크에 저장돼 영원히 살 수 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 실직, 불치병…. 삶의 벼랑 끝에 몰린 소설 속 인물들은 그러나 완벽한 가상세계인 롤라행 티켓을 버리고 유한한 인간으로 고통에 맞서길 선택한다. 그 선택이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소설 한 편을 쓰는 데 취재 노트 10권을 수기로 쓰는 그는 이번에도 유발 하라리와 칼 세이건, 안토니오 다마지오 등의 저서를 공부했다. 지난해 2월에는 유빙을 직접 보기 위해 영하 20도 일본 홋카이도 북동부 아바시리를 다녀왔다. 유빙을 부수며 나아가는 쇄빙선도 탔다. 이때 작가의 머릿속에 각인된 풍경은 소설 속에서 지속적으로 인물의 내면을 타격하는 유빙의 충돌음으로 형상화됐다. 전작들이 고유정 사건(‘완전한 행복’), 박한상 사건(‘종의 기원’) 등 주로 현실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면, 이번 작품은 작가 내면의 질문에 좀 더 천착한다. 2012년 유방암 진단을 받고 방사선 치료와 약물 치료를 병행해 온 그는 재작년 암 환자 ‘졸업장’을 받았다. 10년 넘게 재발 및 전이가 안 돼 일반 건강검진만 받아도 된다는 진료 의뢰서를 받았다. 투병 기간 짧게 유지하던 머리도 처음 어깨까지 길렀다. 주 6회 7∼10km씩 달리고, 그 길로 체육관에 가서 근력 운동을 한다. 내년 가을 하프 마라톤을 뛰는 게 목표다. 소설에서 가상세계의 유혹을 이길 힘으로 그려지는 ‘야성’은 사실 그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세 동생을 둔 소녀 가장으로 지낸 20대, ‘11전 12기’ 끝에 공모전에 당선된 30, 40대를 거치며 회복탄력성이 길러졌어요. 쉽게 좌절하고 남 탓하는 사회, 야성을 잃어가는 시대이지만 내 인생에 집중하고 맞서다 보면 이겨내는 순간이 오는 것 같아요.” 작품 속 인물들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며 현실을 마주할 용기를 얻는다. 올해 서른이 된 아들을 둔 작가는 특히 이번 책을 통해 20, 30대 독자들에게 가닿고 싶다고 말했다. 결국은 사랑이 절망스러운 생을 살아갈 이유가 된다는 것. 그는 “인간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하는 가치 중 하나가 사랑”이라며 젊은 독자들에게 꼭 이 말을 전하고 싶다 했다. “서로 사랑하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짧으니까, 청춘이.” 김소민 기자 [email protected]}

    • 2024-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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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리내, 한국인 첫 美 윌리엄 사로얀 문학상

    장편소설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을 쓴 신인 작가 이미리내 씨(41·사진)가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미국 윌리엄 사로얀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 25일 윌리엄 사로얀 재단 등에 따르면 올해의 윌리엄 사로얀 국제문학상 소설 부문 수상자에 이 작가가 선정됐다. 수상작은 일제강점기에서부터 광복, 6·25전쟁, 분단 등의 격동기를 살아낸 여성의 이야기를 담아낸 작가의 데뷔작이다. 심사위원들은 “강하고도 약한 인간 본성에 관한 아름답고도 복합적인 스토리”라며 “매력적인 인물들의 미스터리를 파헤치고 싶은 욕구가 서스펜스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서정적인 문장들이 천천히 작품을 음미하고 싶게 한다”고 평했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윌리엄 사로얀(1908∼1981)을 기리기 위해 2003년 제정된 이 상은 사로얀 재단과 미국 스탠퍼드대 도서관이 공동으로 주최하며 2년마다 소설과 논픽션 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진 작가의 작품을 선정한다. 역대 소설 부문 수상작으로 니콜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 지난해 퓰리처상 수상자인 에르난 디아스의 ‘먼 곳에서’ 등이 있다. 모국어가 한국어인 이 작가는 이 작품을 영어로 집필해 영국, 미국에서 먼저 발표했다. 한국어판은 지난달 출간됐다. 이 작가는 “미국의 문학상 가운데 외국인에게도 열려 있는 몇 안 되는 상을 수상하게 돼 신기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김소민 기자 [email protected]}

    • 2024-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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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리내, 美 윌리엄 사로얀 국제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을 쓴 신인 작가 이미리내 씨(41)가 한국 작가 처음으로 미국 윌리엄 사로얀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25일 윌리엄 사로얀 재단 등에 따르면 올해의 윌리엄 사로얀 국제문학상 소설 부문에 이미리내 작가가 선정됐다. 수상작은 일제강점기에서부터 광복, 한국전쟁, 분단 등의 격동기를 살아낸 여성의 이야기를 담아낸 작가의 데뷔작이다. 심사위원들은 “강하고도 약한 인간 본성에 관한 아름답고도 복합적인 스토리”라며 “매력적인 인물들의 미스터리를 파헤치고 싶은 욕구가 서스펜스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서정적인 문장들이 천천히 작품을 음미하고 싶게 한다”고 평했다.미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윌리엄 사로얀(1908~1981)을 기리기 위해 2003년 제정된 이 상은 사로얀 재단과 미국 스탠퍼드대 도서관이 공동으로 주최하며 2년마다 소설과 논픽션 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진 작가의 작품을 선정한다. 역대 소설 부문 수상작으로 니콜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 지난해 퓰리처상 수상자인 에르난 디아스의 ‘먼 곳에서’ 등이 있다.모국어가 한국어인 이 작가는 이 작품을 영어로 집필해 영국, 미국에서 먼저 발표했다. 한국어판은 지난달 출간됐다. 이 작가는 “미국의 문학상 가운데 외국인에게도 열려 있는 몇 안 되는 상을 수상하게 돼 신기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김소민 기자 [email protected]}

    • 2024-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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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선량한 약자’ 탈 쓴 악의 얼굴… 스릴러 거장의 귀환

    “내 휠체어를 좀 밀어줄 수 있겠소?” 인적 드문 놀이터 앞 주차장에 밴 한 대가 서 있다. 뒷문을 열고 아스팔트 위에 휠체어 진입판을 연결한 채 80대 남자가 휠체어에 앉아 있다. 그 옆엔 그의 부인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휠체어 배터리가 나가 수십 분째 진입판을 못 올라가고 있단다. 누군들 모른 척 지나갈 수 있을까. 동네에서 조깅을 하던 젊은 남성이 기꺼이 나선다. 휠체어 손잡이를 잡고 진입판 꼭대기에 다다를 무렵 난데없이 청년의 뒷덜미에 주삿바늘이 꽂힌다. 눈앞이 흐려지고 팔에서 기운이 빠진다. 순간 휠체어에서 뛰어내려 남자를 내려다보는 노인. 이들은 대체 누구인가. 반세기 동안 거의 매년 신작을 발표해 온 미국 추리소설 거장 스티븐 킹의 ‘홀리’가 16일 국내 번역 출간됐다. 1974년 데뷔작 ‘캐리’를 시작으로 ‘샤이닝’, ‘미저리’, ‘쇼생크 탈출’, ‘돌로레스 클레이본’ 등을 쓴 그는 미국 작가 중 가장 많은 작품이 영상화될 정도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 왔다. 작품마다 인상적인 악당 캐릭터를 만든 저자는 신간에선 누구든 도움의 손길을 건넬 만큼 연약해 보이는 80대 교수 부부를 내세웠다. 이들은 납치한 이들을 저택 지하실에 가두고 부패한 생간을 먹이는 엽기적인 고문을 벌인다. 의문의 연쇄 실종사건 해결에 탐정 홀리 기브니가 뛰어든다. 중년 여성이 한 달 넘게 실종된 딸을 찾아달라고 의뢰한 것. 홀리는 비슷한 실종자가 더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이들 사이에 관련이 있다고 확신한다. 선량한 약자의 얼굴로 희생양을 끌어들이는 노부부 악당을 추적하는 홀리의 이야기가 팽팽한 긴장 속에 전개된다. 미국 언론으로부터 “스티븐 킹의 소설 중 가장 정치적”이라는 평을 받은 신간에는 인종차별과 동성애 혐오, 미 의사당 공격 등 최근 미국 사회를 흔든 첨예한 이슈들이 소재로 다뤄진다. 예컨대 작품 속 노부부는 극렬한 인종차별주의자이자 동성애 혐오주의자다. 2021년의 코로나19 팬데믹이 배경으로 설정돼 백신 접종과 마스크 쓰기를 거부하다 죽음을 맞는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이 나온다. ‘2024년에도 트럼프를 볼 일이 없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라는 홀리의 독백이 의미심장하다. 각자의 집에서 온라인으로 조의를 표하는 조문객 등 팬데믹으로 달라진 미국 사회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고 재미있다. 스티븐 킹 팬이라면 올해 그의 데뷔 50주년을 맞아 함께 출간된 ‘스티븐 킹 마스터 클래스’(황금가지)도 읽어볼 만하다. 생활고로 세탁일 등을 하며 글을 쓰던 킹이 쓰레기통에 버린 데뷔작 ‘캐리’ 원고를 아내가 출판사에 보내 스타 작가가 된 과정 등이 담겼다. 무엇보다 대중적 장르소설에 대한 문단의 편견에 맞선 킹의 모습이 흥미롭게 그려졌다. 미국 국립도서재단이 킹에게 공로상 메달을 수여하자, 저명 문학평론가로 미국 예일대 교수였던 해럴드 블룸은 “스티븐 킹은 문장 단위, 문단 단위, 책 단위 모든 측면에서 심히 미숙한 작가”라고 비난했다. 이에 언론을 통해 밝힌 킹의 응수는 역시 그답다. “블룸이 진실을 자백할 수 있도록 정맥마취제를 주사한 뒤 ‘자, 해럴드. 실제로 스티븐 킹의 작품을 몇 개나 읽어보셨소?’라고 묻고 싶어요. 그러면 아마 채 한 권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는 대답이 나올 거로 생각합니다.” 김소민 기자 [email protected]}

    • 2024-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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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들 유관순 알지만, 독립운동 가르친 김란사 몰라”

    “많은 분들이 제 책을 보고 김란사에 대해 더 알고 싶다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고종 아들 의친왕 이강(1877∼1955)의 일생을 그린 장편소설 ‘마지막 왕국’(김영사·사진)을 내놓은 영국인 작가 다니엘 튜더는 22일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모두가 유관순은 아는데 유관순에게 독립운동 정신을 가르쳐준 김란사는 모른다. 의친왕, 김란사 등 잊혀진 인물들에게 빛을 비추고 싶은 마음으로 썼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란사(1872∼1919)는 독립운동가로 조선 최초의 여성 미국 유학생이다. 한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인물을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외국인’으로 불리는 그가 신작 소설에 등장시킨 것. 그는 전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으로, 한국 사회에 대한 비평 에세이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문학동네),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문학동네)을 펴냈다. 신간은 그의 첫 소설로, 영어로 쓴 뒤 한국어로 번역했다. 이르면 내년 영어판이 출간될 예정이다. 그는 기자 시절 의친왕의 아들인 이석 황실문화재단 이사장을 인터뷰한 뒤 소설 집필을 결심했다고 한다. “이석 선생은 미국 불법 체류 경험에 사업에 실패하고, 노래를 발표해서 스타가 되기도 했어요. 이런 내용들을 기사화했는데, 그분과 가문의 이야기를 소설화하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소설은 조선 왕실의 비참한 상황을 이강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불우한 어린 시절, 방황하던 미국 유학 생활, 조선 총독 데라우치 암살 시도 후 가택연금 등이 그려진다. 그는 “이강은 주변 독립운동가들과 얘기하면서 목표가 생겼고 상하이 임시정부 망명 작전에 참여했다”며 “여러 약점에도 성장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1시간 10분가량 이어진 간담회 내내 한국어로 답했지만 한글 책을 읽는 데는 모국어인 영어보다 5배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료 조사와 집필에 꼬박 5년이 걸린 이유다. 그는 취재 과정에서 이강의 자녀 중 한 명인 이해경 여사를 미국에서 인터뷰했다. 그는 “구한말 왕실에서 왕자나 공주는 김치의 하얀 부분만 먹을 수 있었는데 이 여사는 초록색 부분을 가장 맛있어 했다고 한다”며 “작품에서 왕자나 공주가 상궁들에게 ‘제발 초록색 김치 주세요’라고 말하는 대목은 그렇게 탄생했다”고 말했다. 한국 여성과 결혼해 생후 10개월 된 딸을 둔 그는 “아빠가 되고 나서 저출산 이슈에 관심이 생겼다”며 “차기작으로 한국의 저출산 문제에 대한 논픽션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소민 기자 [email protected]}

    • 2024-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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