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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위기의 방통위]① 한국판 FCC 꿈꿨는데…합의제 기구는 없었다

강소현 기자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 연합뉴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 연합뉴스]

[디지털데일리 강소현 기자]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의 독립성 문제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합의제 기구라는 취지가 무색하게 정부와 여당이 추천한 상임위원 2명이 방통위 내 모든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다.

특히 여권 추천 인사인 김효재 방통위 부위원장(위원장 직무대행)이 공영방송 장악의 첫 수순인 공영방송 경영진 교체에 속도를 내며, 정치적 논리에 휘말렸던 지난 15년의 역사가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동관 방통위원장 후보자의 6기 방통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방통위가 정상화되려면 정권을 견제할 수 없는 현재의 구조적 한계를 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 2人 방통위, ‘독임제 기관’으로 변질…공영방송 경영진 해임 등 폭주

방통위는 최근 전체회의를 열고 윤석년 KBS 이사에 이어, 남영진 KBS 이사장 해임 제청 건과 정미정 EBS 이사 해임 안건을 통과시켰다.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이하 방문진) 이사장에 대한 해임도 예고된 가운데, 그동안 김 직무대행 아래 방통위의 운영 행태를 볼 때 권 이사장의 해임 역시 강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 직무대행은 지난 5월30일 한상혁 전 방통위원장의 면직 처분으로 공석이 된 방통위원장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지난 두 달 반 동안 현행 ‘수신료-전기요금 통합징수방식’을 개선해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분리해 고지‧징수하도록 하는 방송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심의‧의결했으며, 5명의 공영방송 경영진 해임 처리하거나 추진 중이다.

업계에선 방통위 직무대행 체제에서 이 같이 사회적 파장이 큰 쟁점들이 안건으로 다뤄지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통상 직무대행은 현상유지적 업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5인으로 구성돼야 할 방통위 상임위는 현재 3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정부·여당 측 추천 인사인 김효재 부위원장과 이상인 위원, 야당 측 추천 인사인 김현 위원 등 2대1구도로, 김 위원이 반대하더라도 여권 추천 위원 2명의 찬성만으로 통과될 수 있는 것이다. 실제 지난 2개월 동안 정부·여당 측 2인의 찬성만으로 처리된 안건이 다수로, 합의제 기구라는 방통위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 처음부터 잘못 꿰어진 단추였나…출범부터 정치적 외풍 ‘우려’

지난 7월5일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전체회의를 통해 현행 ‘수신료-전기요금 통합징수방식’을 개선해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분리해 고지‧징수하도록 하는 방송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심의‧의결했다. [ⓒ 디지털데일리]
지난 7월5일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전체회의를 통해 현행 ‘수신료-전기요금 통합징수방식’을 개선해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분리해 고지‧징수하도록 하는 방송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심의‧의결했다. [ⓒ 디지털데일리]

전문가들은 지금의 상황이 ‘대통령 직속 합의제 기구’라는 방송통신위원회의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방통위 설치법)도 문제다. 방통위설치법 제5조 2항에 따르면 상임위원 5인 중 ▲위원장을 포함한 2인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3인(여당 교섭단체 1인·야당 교섭단체 2인)은 국회의 추천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관련한 논란은 방통위 출범 당시부터 있었다. 대통령 직속 기관인데다 정부·여권 인사가 전체 상임위원의 과반으로, 합의제 기구라는 운영 원칙을 살리지 못하고 정권이 교체될 때 마다 정치 논리에 좌우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그럼에도 불구, 방통위의 전신인 방송위원회(이하 ‘방송위’)와 같은 수준의 위상을 가지면서도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도 보장하려다보니 오늘날의 형태를 띄게 됐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지금의 방통위는 처음 구상했던 모습과 크게 다르다. 방통위를 처음 구상한 건 1990년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방송을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려면 방통위의 위상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의지를 거듭 밝혔던 만큼 당시엔 오히려 ‘행정부와 독립된 형태로 가야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었다. 이에 행정부로부터 분리된 독립위원회 형태인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모델로 제시됐다.

하지만 국내 첫 통방융합기구인 방통위가 전신인 방송위와 같은 위상을 가져가야한다는 이유로 미국 FCC 모델을 기본으로 한 대통령 직속의 위원회 형태가 이후 지지를 받으면서 ‘대통령 직속의 합의제 위원회’라는 모순적인 구조가 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와 관련 방통위 상임위원 출신의 한 관계자는 “가장 높은 독립성을 보장하려면 국가의 행정 수반인 대통령 소속으로 가는 게 맞다는 게 당시의 생각이었다. 대통령 직속이지만 행정부로부터는 독립적인 업무 수행이 가능토록 위원의 추천 주체를 국회로 둔 것”이라며 "방통위의 모델이 된 FCC 역시 집권당이 다수가 되어 끌고 가는 구조로 설계됐다" 밝혔다.

◆ 유례없는 일방통행, 구조 개편 목소리↑…전 상임위원 "여야 타협하려는 노력도"

김효재 방통위원장 직무대행. [ⓒ 연합뉴스]
김효재 방통위원장 직무대행. [ⓒ 연합뉴스]

특히 이번 직무대행 체제에서 이러한 방통위의 구조적 한계가 더욱 두드러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행법상 위원회 회의는 재적위원 과반수가 참석하면 의결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여권 추천 위원 2인 만으로 이뤄지는 의결이 정당성을 가질 수 있냐는 의문이 제기되면서다.

김현 위원도 최근 진행된 전체회의에서 이런 부분들을 지적하며 “제가 어떤 의견을 내도 다수결로 정리될 텐데, 표결의 효용가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사회적·정치적 논쟁 쟁점 현안에 있어선 상임위원 5인이 모두 참석해왔는데 (현재의 상황이) 방통위 설치법에 맞는지 사무처가 다시 들여다봐달라”라고 요청한 바 있다.

무엇보다 방통위가 3인 체제로 운영된 것이 처음이 아님에도, 이 같은 일방통행은 전례가 없었다고 국회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야당 관계자는 “공영방송의 이사를 해임할 때는 이사회가 먼저 해임안을 의결한 뒤 방통위에 제안하거나, 감사원의 조사결과 죄가 밝혀졌을 때 그것을 근거로 해임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방통위에서 임의로 이사 해임안을 상정해 의결하는 것은 전례도 없을뿐더러 이는 불법행위”라고 비판했다.

상임위원 출신의 관계자 역시 “정부·여당 추천 위원 2명이 방송의 인사나 공영방송의 경영에 직접적인 영향에 미칠 수 있는 결정을 과도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방통위의 설립 취지나 운영의 원칙에 맞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방통위 정상화를 촉구했다.

이에 정계와 학계에선 방통위가 이제라도 합의제 기구로서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바람직한 구조 개편 방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최근 조승래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방통위의 개의정족수를 위원 3인 이상으로 명시한 방통위 설치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현재는 2인 이상의 위원 요구가 있을 경우나 위원장 단독으로 회의를 소집할 수 있는데, 이를 3인 이상 위원이 개의를 요구하도록 바꾼는 것이 골자다.

일각에선 방통위의 실패를 제도의 문제로만 돌리려 한다는 비판과 함께, 방통위를 공영방송을 장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정부와 상임위원들의 태도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임위원 출신의 관계자는 “현재의 문제는 제도 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며 "진정한 정치가 실종되다보니 제도 탓을 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러한 정치권에 있으며, 대화를 통해 여야가 서로 타협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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