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연극리뷰] “연극현장 현실을 두 배우의 연기로 그대로 그렸다”…이영석·박상종 연극 배우의 ‘라스트 씨어터 맨’
[거침없이 연극리뷰] “연극현장 현실을 두 배우의 연기로 그대로 그렸다”…이영석·박상종 연극 배우의 ‘라스트 씨어터 맨’
  • 복현명
  • 승인 2024.07.26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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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씨어터 맨’(작, 정상미 연출 김경빈, 대학로 드림시어터, 극단 은행나무)은 연극배우를 위한 작품이다. 사진=공연기획사 앰비즈
‘라스트 씨어터 맨’(작, 정상미 연출 김경빈, 대학로 드림시어터, 극단 은행나무)은 연극배우를 위한 작품이다. 사진=공연기획사 앰비즈

[스마트경제] #. '거침없이 연극리뷰'가 스마트경제를 통해 매주 금요일에 새롭게 찾아간다. 한국연극을 대표하는 4명의 연극평론가들이 거침없는 연극리뷰를 연재한다. 
월간 ‘한국연극’ 편집주간이며 포스트드라마 권위자인 문학박사 김기란 평론가, 한국연극평론가협회 부회장이자 숭실대학교 교수 백로라 평론가, ‘한 줄도 좋다, 우리 희곡’의 저자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교양학부 객원교수 정수진 평론가, 계간 ‘한국희곡’ 편집주간으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방위적인 연극평론 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연극의 승부사들’ ‘동시대 연극 읽기’의 저자 대경대 연기예술과 교수 김건표 평론가가 매주 릴레이로 연재할 예정이다(편집자주). 

‘라스트 씨어터 맨’(작, 정상미 연출 김경빈, 대학로 드림시어터, 극단 은행나무)은 연극배우를 위한 작품이다. 

‘다시, 느티나무’ 소극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도 그렇지만 폐관 극장의 ‘라스트 씨어터 맨’(Last Theater Man)로 분한 두명의 배우가 극 중 인물들이다. 

60대 초반의 극중인물 성종(박상종 분)은 30년 전 느티나무 극장 개관 공연 오셀로에서 이아고 역을 한 후 대표 작품이 없어도 연극을 섬기며 살아가는 배우다. 

건물 경비를 하는 70대의 영식(이영석 분)도 오셀로 작품 대사만큼은 줄줄이 기억해 내는 것을 보면 연극으로 살아온 인생이다. 

무명 배우 성종은 무대 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사무엘베게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습하는 장면도 스쳐 가고 도둑으로 오인한 영석과 소동을 벌이는 장면에서 웃음이 짠하게 터진다. 

연극을 하던 선배의 죽음, 무명 배우로 살아온 성종의 시시콜콜한 과거 시절 추억들이 쌓여갈 때쯤 영식의 제안으로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의 극중극까지 더해진다. 

돌아보면 이 극 중 배경이 되고 있는 ‘다시, 느티나무’ 극장은 1994년 극단 은행나무을 창단하면서 노란 매표소 지붕의 은행나무 소극

장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라스트 씨어터 맨’은 연극현장의 현실을 두 배우의 연기로 그대로 그려내고 있는 공연이다.


◇대학로 소극장 ‘폐관위기’에도 연극은 수천년 역사로 시대의 파동을 그려내

연출은 첫 장면부터 ‘라스트 씨어터 맨’ 공연을 하루 앞두고 있는 극장 분위기이다. 사진=공연기획사 앰비즈

무대는 조명 설치 작업을 위한 사다리도 보이고 그 사이로 의상과 소품, 대소 도구들로 뒤엉켜 있다. 극장에서 공연을 앞두고 셋업 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성종이 오셀로를 공연하던 30년 전이나 경비로 극장을 지켜온 영석이 60, 70대를 넘겨도 연극 제작 환경은 달라질 수 없는 현실 그대로다. 

연출은 첫 장면부터 ‘라스트 씨어터 맨’ 공연을 하루 앞두고 있는 극장 분위기이다. 

30대 초반의 서아(김서아 분)와 용식(김용식 분)을 통해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들이 그려진다. 

용식은 음향 오퍼를 왕복하고 서아는 분무기로 극장 내부로 분사시키며 먼지로 쌓인 소품들을 정리하면서 연극배우 인생의 신세 한탄들이 쏟아진다. 

극단에 들어왔어도 배우로 무대에 서는 날보다 조연출, 조명, 음향, 의상까지 챙겨가며 막내 일을 해야 하는 웃픈 두 사람의 대화가 섞이고 실제 연출을 호명하며 “연출한다는 놈은 책도 안 읽고 대본도 안 봐”라는 대사에 객석을 키득거리게 만든다. 

성종이 무대 제작팀 알바를 하기위해 소품들을 들고 극장으로 들어올 때쯤 ‘라스트 씨어터 맨’의 등장으로 극은 시작된다. 

두 사람은 인터넷 검색을 하고는 “대선배인 선생님도 알바 하신다. 우리의 미래가 맞다”라며 연극배우 인생을 늘어놓는다. 그러면서도 이들이 향하는 것은 연습 후에 김치 쫄면을 먹으면서 연극을 하기 위해 달려가는 알바의 현장이다.

무명 배우 성종의 무대 팀 아르바이트는 현실의 삶보다는 연극배우의 인생이 되어준 마지막 무대를 지키기 위한 간절함이다. 

소극장이 탕후루 체인점으로 바뀌고 상업자본에 극장이 사라져도 성종이 할 수 있는 것은 연극 무대를 지키는 일이다. 

경비원 영석과 성종은 좀도둑으로 오해해 분장실로 무대 소품 뒤로 몸을 숨기는 해프닝이 일어나면서도 두 사람 인생과 삶은 연극으로 맞닿아져 무대는 두 사람의 추억 장소로 변주된다. 

기억은 30년 전 개관 공연을 하던 오셀로의 시절로 되돌아간다. 

“이 극장도 지난 30년 동안 다섯 번이나 바뀌었는데, 최근에 건물주가 바뀌면서 극장이랑 재계약 할 의사가 없다는 내용증명을 보내왔대요. 이 비싼 대학로 땅에 허름한 소극장을 끼고 있어봤자 손해만 본다고 생각한 거겠죠” 소극장 건물에서 극장을 지켜온 영식이 할 수 있는 것은 자본에 의해 사라져가고 맛집, 페스트푸드점, 빙설과 커피숍으로 공간이 활용되어 건물 주인들의 월세 수입만 늘어가는 소극장이 없는 건물들을 지키는 것뿐이다.


◇다시, 느티나무극장의 기다림

‘라스트 씨어터 맨’의 하이라이트는 에스트라공으로 분한 영석과 블라디미르 성종이 극중극으로 표현되는 ‘고도를 기다리며’의 한 장면으로 ‘라스트 시어터 맨’의 마지막 연기가 진행된다. 두 사람의 기다림은 연극배우의 희망으로 직진하는 연극인의 인생 아닐까. 사진=공연기획사 앰비즈

그럼에도 성종한테 ‘다시, 느티나무’ 극장은 배우로 평생을 살아가게 하는 젊은 시절 배우의 꿈을 키워낸 곳이면서도 무명 배우로 절절한 사연이 많은 무대다. 

‘느티나무 극장’이 오래전에 사라지고 연극을 섬기고 살았던 형을 추모하기 위해 ‘다시 느티나무’ 극장을 10년 전에 다시 세웠으면서도 사라지는 것은 관객들의 관심과 배우들의 추억들이다. 

“극장이 30년이나 자리를 지켜왔지만, 이젠 관심도 없고…. 극장이랑 같이 여러 사람들의 추억도 사라지네요. 극장 없어지고 탕후루라니…”두 사람 대화로 쏟아질 때쯤 1991년 학전소극장을 개관한 뒤 개관 33주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학전 소극장이 스쳐 간다. 

돈을 몽땅 털어 넣고 극장을 세우고 연극인들한테 최소한의 대관료로 대관을 해줘도 그 대관료를 떼어먹고 달아나도 연극만 하고 살아온 배우 인생은 영석의 대사처럼 “난 극장 특유의 케케묵은 냄새하고 서늘한 공기가 좋아요(중략) 여기서 공연된 수백 편의 연극은 관객들의 가슴에 오롯이 남아 있을 거예요…그 믿음으로 연극을 하는 거잖아요” 영석도 30년을 경비로 극장을 지켜오며 연극인이 된 지 오래다.

60대에 초등학교 다니던 딸이 있어도 연극을 하면서 살아가는 행복한 성종이고 영식의 소리로 전달되는 30년 전 그때의 오셀로 대사를 외우는 영식은 영락없이 주인공을 하던 배우이다.

오셀로에서 이아고를 했던 성종의 추억이 무대로 쌓여 갈 때쯤 이후 작품에서 움직이는 나무 역할을 하면서도 공로상을 탄 얘기며 그저 그런 역할만 들어오는 무명의 연극배우로 살아온 지난날의 추억도 현재의 삶도 힘들 법도 한데 성종은 60대에 대사 외우는 속도가 예전만 못해도 데스데모나의 아버지인 부라반쇼 역할을 맡았다며 후배들한테 어설픈 모습 안 보이려고 죽기 살기로 연습하는데도 대사를 까먹는 악몽을 꾸는 천상 연극배우 성종이다. 

무대는 가스버너, 냄비, 생수가 올려지고 라면을 먹어가면서도 유명 배우는 되지 않았어도 극장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것은 선배하고 한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약속을 지키고 싶은 성종의 마음 빛들이 들춰진다. 

‘라스트 씨어터 맨’의 하이라이트는 에스트라공으로 분한 영석과 블라디미르 성종이 극중극으로 표현되는 ‘고도를 기다리며’의 한 장면으로 ‘라스트 시어터 맨’의 마지막 연기가 진행된다. 두 사람의 기다림은 연극배우의 희망으로 직진하는 연극인의 인생 아닐까. 사진=공연기획사 앰비즈

그런 만큼 ‘라스트 씨어터 맨’의 하이라이트는 에스트라공으로 분한 영석과 블라디미르 성종이 극중극으로 표현되는 ‘고도를 기다리며’의 한 장면으로 ‘라스트 시어터 맨’의 마지막 연기가 진행된다. 두 사람의 기다림은 연극배우의 희망으로 직진하는 연극인의 인생 아닐까.


◇이영석의 ‘극단 은행나무’와 노란지붕의 ‘은행나무극장’ 

극단 은행나무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외각에 위치한 리우코푸 형무소를 배경으로 5명의 죄수를 통해 인종차별 문제를 다뤘던 ‘아시나마리’(1994년 12월 3일~연출 장두이)로 창단 공연을 했다. 

1999년 폐관 작품 ‘가루지기’(작 홍창수)까지 90년대 후반부터 세기말의 시대까지 노랑 지붕을 떠올리게 하는 소극장과 극단 은행나무는 ‘마로윗츠 햄릿’ 등 20작품을 공연하면서 연극의 열기로 뜨거웠던 90년대 후반까지 대학로 현장을 지켰다. 

창단 이전부터 40년 이상을 연극 현장을 지켜온 배우 이영석은 극단 은행나무를 현재까지 이끌어오면서도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서 주군 영공으로 분해 배우 이영석만이 표현 할 수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극단 대표, 기획과 예술감독, 배우 로 연극을 지켜왔다. 

120편이 넘는 연극을 통해 이영석만이 낼 수 있는 톤, 발성, 연기 등 배우술을 감각적으로 숙성해온 배우이다. 

2003년 영화 ‘선생 김봉두’에서 동네 이장을 시작으로 ‘마더’, ‘찬란란 나의 복수’ 드라마 ‘장영실’, ‘나의 아저씨’, ‘하나뿐인 내 편’, ‘번외수사’, ‘슬기로운 감빵생활’ 등 극 중 장면을 살려내는 조연으로 존재감을 보여줬다. 

최근에는 ‘연인’, ‘낮에 뜨는 달‘까지 150편의 영화, 드라마에서 90년대 은행나무 극장 시절보다 바쁜 배우 인생을 살고 있다. 

극 중에서 ’고도를 기다리며‘의 특정 장면을 그려내는 두 배우의 인생은 폐관의 극장에서도 연극의 미래에 희망을 버리지 않는 연극배우들에게 헌정하는 공연이다.

성종으로 분한 배우 박상종도 연기파 배우이다. 

’만선‘에서 범쇠로 분한 박상종은 자본의 폭력성을 들어내며 죽음에 이루는 장면까지 배우의 내면이 무대에서 파동 되는 감각적인 역할을 보여줬다. 

’뼈의 기행‘(작, 백화룡) 에서는 자식의 뼛조각을 찾아가는 70대 노인 준길로 분해 극중인물을 소화해 내는 절정을 보이는 연기를 표현했다. 국립극단 김광보 연출의 ’벚꽃 동산‘에서 죽어가는 피르스의 연기는 배우 박상종을 위한 장면이었다. 

작가 정상미는 조선일보 신춘 문예로 희곡 '그들의 약속'(2012)이 당선된 뒤 ’제발, 결혼‘, ’안녕, 내일‘, ’낙원상가‘ 등을 썼으며 전쟁과 식민 지배 역사를 인식하게 한 현대 일본 작가인 스즈키 아쓰토(鈴木アツト)의 '조지 오웰–침묵의 소리'를 번역하고 희곡으로 옮겼다. 

연출 김경빈은 극단 산수유의 신진 연출 가전 ‘완빤치 쓰리 강냉이’에서 ‘원고지’(작 이근삼)로 데뷔해 ‘바다 한가운데서’ 권리장전 ‘마산’, 2023년 제6회 노작홍사용 창작단막극제에 작품상과 희곡상을 받은 ‘즐거운 우리집’을 연출하며 극단 산수유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연극 연출가다.

영석의 존재는 은행나무 극장처럼 느티나무 극장을 만들고 사라져간 성종의 선배이면서도 여전히 허구로 지어지는 환영의 세계를 다양한 극중인물의 삶으로 무대를 지키며 살아가는 연극배우들이다. 

‘라스트 씨어터 맨’은 은행나무 극장을 모티브로 했다고 느껴질 정도로 두 배우를 위한 연극이면서도 대한민국 연극배우들을 위한 공연이다. 사진=공연기획사 앰비즈

‘라스트 씨어터 맨’은 은행나무 극장을 모티브로 했다고 느껴질 정도로 두 배우를 위한 연극이면서도 대한민국 연극배우들을 위한 공연이다. 

이 작품은 텍스트를 구조적으로 분석하는 것도 극 중 장면의 의미를 애써 부여하는 방정식도 필요하지 않아 보인다. 대학로 연극무대를 지켜온 개성 있는 두 배우의 존재감만으로도 ‘라스트 씨어터 맨’은 80분을 연기로 텍스트를 채우는 연극이다. 

연출은 특별하게 극 중 장면을 가공하지 않고 현실을 그대로 투영하려고 한 점이 좋았고 용식과 서아의 장면도 날것의 힘이 있다. 

메세나 지원사업에 선정돼 아주다남병원 지원을 받은 작품이다. 그러기에 폐관될 ‘라스트 씨어터 맨’들이 오늘도 에스트라공, 블라디미르로 희망을 가지고 연극 무대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김건표(연극평론가) / 대경대 연기예술과(연극영화과) 교수. 국립극단이사,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이사, ‘연극평론’ ‘문학세계’ 편집위원과 ‘한국희곡’ 편집주간, 한국문화예술위 책임심의위원으로 ‘동시대 연극 읽기’, ‘한국연극의 승부사들’, ‘장면텍스트’, ‘말과 정치문화’ 등 다양한 전공 서적을 발간했으며 전방위적인 문화정책과 연극평론을 하고 있다.

 

복현명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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