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서 K원전 세일즈 - 지난 5월 13일 체코 프라하 조핀 궁전에 얀 피셰르 전 체코 총리, 페트르 트레시냐크 산업부 차관 등 체코 정부 관계자와 현지 금융·원전 업계 인사 등 300명이 한자리에 모인 모습. 체코 원전에 원자로 등 주(主) 기기 공급을 맡게 될 두산그룹은 이날 행사를 열고 K원전의 강점을 알리는 막바지 총력전을 펼쳤다. /두산그룹

한국이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주 이후 15년 만에 한국형 원전 수출에 성공한 배경엔 민관이 함께 구성한 ‘팀코리아’의 역할이 컸다. 탈원전 폐기를 내걸고 당선된 윤석열 대통령은 2030년까지 원전 10기를 수출하겠다는 목표 아래 이번 수주전에도 직접 나섰고, 한수원, 두산에너빌리티 등 우리 기업들과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등 정부도 함께 총력전을 펼쳐 수주전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체코 원전 수주는 2022년 3월 입찰이 시작되기 전만 해도 전망이 그리 밝지 않았다. 체코 정부가 2016년 원전 건설 계획을 내놓은 뒤 미국, 프랑스는 물론 러시아, 중국 등도 관심을 키웠지만, 자국에서 ‘탈원전’을 밀어붙이는 한국이 적극적으로 명함을 내밀기는 쉽지 않았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2018년 아르헨티나 G20 정상회의 참석차 가는 길에 체코를 1박 2일 일정으로 방문했다. 당시 체코 대통령도 없는 상황에서 방문한 뒤 “중간 급유를 위해 방문한 것” “체코 원전 수주를 위한 것” 등의 이유를 밝혔다가 “정작 한국은 탈원전하며 다른 나라에 원전을 팔겠다는 게 모순”이란 비판을 받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정작 체코에서 총리와 회담하면서 모두 발언에서는 원전을 언급조차 하지 않기도 했다. 임기 말인 2021년 문 대통령은 체코 총리와 회담을 가지며 ‘ 한국 원전의 우수성’을 강조하기도 했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 정부 5년 동안 국내에선 탈원전, 해외에선 원전 세일즈라는 모순된 모습 속에 스스로 스텝이 엉키던 K원전 수출 전선은 2022년 3월 대선과 5월 윤석열 대통령 취임을 계기로 제대로 된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정부는 국정 과제로 원전 생태계 회복을 내놓고 원전 수출에 드라이브를 걸었고, 루마니아·폴란드 등 원전 수요가 폭증하는 동유럽을 중심으로 하나둘씩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픽=송윤혜

윤 대통령은 지난 11일에도 나토(NATO)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막판 수주전에 힘을 실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의 시공 능력과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며 “수출입은행과 한국무역보험공사를 통한 금융 지원도 가능해 체코 원전 분야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앞서 작년 9월 한덕수 국무총리를 시작으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지난 4월 체코를 직접 방문해 첨단 산업 R&D(연구∙개발)를 확대하고 수소 생태계를 구축하는 등 현안에 대해 직접 논의했다.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도 올 들어 세 차례나 체코를 찾았다. 지난달에는 체코공대와 함께 원전 전문가 양성을 위한 학부 커리큘럼을 공동 개발하는 MOU(양해 각서)를 체결했다. 원전 건설이 예정된 트레비치 지역 아이스하키단에 대한 후원도 내년 8월까지 연장했고, 2017년부터는 매년 현지에서 봉사 활동도 펼쳤다.

민간의 노력도 큰 역할을 했다. 박정원 두산 회장은 지난 5월 체코 프라하 조핀 궁전에서 행사를 열었다. 얀 피셰르 전 체코 총리, 페트르 트레시냐크 산업부 차관 등 체코 정부 관계자를 비롯한 현지 금융·원전 업계 인사 등 300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 자리에서 박 회장은 “체코가 유럽 내 무탄소 발전 전초기지로 부상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취지로 연설을 하기도 했다. 두산은 원전 사업 수주 시 제품 공급을 담당할 체코 최대 기업 중 하나인 두산스코다파워의 최대 주주이기도 하다. 이번 수주전에서 체코 여론이 한국으로 기운 데는 체코 최고 기업이 원전의 핵심 부품을 제공한다는 논리도 큰 몫을 했다는 평가다.

팀코리아 일원인 백정완 대우건설 사장도 같은 달 체코 현지에서 ‘한·체코 원전 건설 포럼’을 열고 한국형 원전의 우수성을 소개했다. 백 사장은 원전이 들어설 예정인 두코바니 지역을 찾아 현지 지역민 고용과 지역 경제 협력 방안을 논의하며 힘을 보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