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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 씨가 연민과 철학적 사유로 이끌었어요”

“파킨슨 씨가 연민과 철학적 사유로 이끌었어요”

‘누군지 이름도 몰랐던 파킨슨씨/내 곁에 다가온 줄은 더구나 몰랐는데/퇴근길 전차 안에서 무릎 아래 느낌을 온전히 거둬갔다.’ 이도화 시인의 ‘고행으로 가는 길’이라는 시의 도입부다. 파킨슨병으로 16년째 투병 중인 이 시인이 두 번째 시집 <온·오프는 로봇 명령어가 아니다>를 냈다. 그의 삶과 시는 ‘인생은 역경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이고,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이 시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바다와 육지를 종횡무진 누비다 지금은 경남 김해 상동에 닻을 내렸다는 그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만나러 갔다.경북고 재학 시절부터 문학을 꿈꾸던 소년은 한국해양대를 졸업하고 이등항해사로 바다를 누볐다. 2017년에 나온 첫 시집의 제목이 <출항>이 되었던 이유다. 호기심 많던 청년은 사람 관리와 경영학에 관심이 생겨 미국 매사추세츠대에서 경영학 석사, 퍼듀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아 포스코경영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한다. 그러다 장년이 되어 인제대와 동아대에서 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다.‘커밍아웃’이란 시에서는 정년을 앞두고 명예퇴직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읽힌다. ‘성냥갑의 성냥개비는 삐딱하게 기울지 말고 똑바로 서 있어야 한다. 14층 연구실에서 지하 1층 강의실로 내려가는 비좁은 엘리베이터 안/긴장감에 손이 떨려 힘을 주면/떨림은 팔뚝으로 건너가며/오히려 더 커져 솔깃해지는 소리를 쏟아내고//…동정이든 공감이든 소문으로 떠돌다 돌아오길 기다리느니 사실의 힘을 믿고 바로 설 때/부축해 주려고 팔을 내미는 학생에게 나는/업어 달라 부탁했다.’ 치부가 될 수 있는 기억까지도 서슴없이 드러내는 문학의 힘이 놀랍다.이번 시집은 1부 ‘공동선’, 2부 ‘시골살이’, 3부 ‘파킨슨병’, 4부 ‘사람들’로 구성되어 총 6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시골살이는 파킨슨병으로 명퇴하고 경남 김해 상동으로 귀촌한 뒤 쓴 귀촌일기이다. 닭장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오골계 이야기가 ‘밀당하는 닭’으로, 유기 고양이와의 인연이 ‘탁발승 땅콩이’로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늦은 나이에 꺾꽂이하듯 시골 땅에 나를 심어두었으니/귀촌의 하루하루에 무슨 큰 뜻이 있으랴/동트자 잠이 깨고 저녁상 물리면 잠이 절로 오니/시골살이 반은 이미 뿌리 내린 걸.’ ‘촌부의 하루’라는 시는 그렇게 나온 것이다. 이 시집에 실린 ‘무심코’ 등은 202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최종심까지 올라간 작품이다.시인은 생각보다 훨씬 건강해 보였다. 하지만 요즘엔 자주 넘어진다면서 까진 무릎을 보여 주었다. 파킨슨병 약을 복용한 뒤 약 효과가 발생하는 시점에서 끝나는 시점까지의 시간을 온(on), 약 효과가 사라지고 없는 기간의 시간을 오프(off)라고 했다. 오프가 되면 걸으려고 해도 첫 발이 안 떨어진단다. 시인은 그걸 의식적으로 깨보려고 지금도 노력하는 중이다. 굳어진 손에 펜 두 자루를 쥐고 그야말로 독수리 타법으로 시를 쓴다. 시를 생각하는 속도와 타이핑하는 속도가 비슷해서 괜찮다고 했다.이 시인은 “낮에 노동하고 밤에 시를 쓰는 주경야시(晝耕夜詩)가 파킨슨병의 진전을 늦춘 것 같다.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분들에게 희망이라는 단어를 건네고 싶다”라고 말했다. 해설문에서 김정수 시인은 ‘일상에서의 고통과 불편의 감수는 삶의 이면에 연민의 시선과 한층 깊어진 철학적 사유로 이끌었다’라고 평했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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