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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예측 불가능한 대한민국 의료 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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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저수가 의료보험제도
박리다매식 진료·비급여 시술↑
의료대란, 의료체계 손상 우려

[초동시각]예측 불가능한 대한민국 의료 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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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1977년 건강보험제도를 도입해 약 50년간 사회의료체제가 안정적·효율적으로 운영돼 왔다. 그런데 이번에 의대 정원 증원 문제로 의료대란이 나서 의료체계에 적지 않은 손상이 올 우려가 있다."


낙상사고로 이마를 다친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새벽 시간 20곳이 넘는 응급실에서 진료를 거절당한 사연을 털어놓으면서 한 말이다. 80대 노인이 머리에서 피가 나는데도 즉각적인 처치를 받지 못해 당황스러웠다며 정부가 추진 중인 의료개혁의 문제점을 지적한 데는 공감하지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바로 우리 건강보험제도는 그리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점이다.

건강보험의 전신인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된 건 1977년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1000달러에 불과하던 시기 부족한 재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보험은 '저수가·저부담·저급여' 구조로 설계됐다. 당시 정부가 관행수가의 50%에 불과한 보험수가를 책정하자 의사들이 크게 반발했지만 서슬 퍼런 유신체제 아래에서 이내 그대로 강행됐고, 불과 12년 만인 1989년 전 국민 의료보험제가 실시될 만큼 빠르게 안착했다. 병원은 턱없이 부족한 수가를 보전하려 환자를 많이 받는 데 집중했고, 환자들 역시 낮아진 병원 문턱을 더 자주 오가다 보니 오죽하면 "환자를 너무 많이 봐서 의사들 경험이 쌓이고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분명 대한민국의 의료 수준과 건강보험제도는 단시간에, 다른 선진국들이 부러워할 만한 최고 수준에 올라섰다.


문제는 이것이 당초 정부가 의도한 의료정책의 방향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정부는 의료보험에 가입하는 국민이 늘어나면 보험료와 수가, 급여율을 점진적으로, 적정 수준까지 끌어올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소득 수준이 높아진 뒤에도 박리다매식 진료는 계속됐고, 건강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 비싼 ‘비급여’ 항목은 병원 적자를 메꾸는 수단이 됐다. 정권마다 건강보험 개편 카드를 만지작거리긴 했지만 여론 눈치를 보느라 속으로 곪아가는 제도에 칼을 대진 못했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전공의 월급으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대형 병원이 유지되고, 거리엔 비보험 시술만 하는 피부미용 클리닉이 즐비한 풍경은 결코 과거의 정부관료도, 의사들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으리라. 여기에 필수의료 기피, 지역의료 붕괴 등 수십년간 쌓여온 구조적인 한계로 의료 시스템 전반에 과부하가 걸린 상태에서 올해 초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선언하자 그 모든 게 한꺼번에 폭발하고 말았다.


민생과 직결되는 정책을 시행할 땐 명확한 방향성과 함께 미래에 어떤 정책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 시나리오별 전망과 정확한 예측을 근거로 국민을 설득하는 일이 우선이다. 하지만 정부는 지금도 "전공의는 돌아와 달라"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 완수를 위해 뚜벅뚜벅 가겠다"는 다짐만 반복하며 '전문의·진료지원(PA) 간호사 중심 병원' '한시적 응급실 진찰료 가산' 등 알맹이 없는 대책만 늘어놓고 있다. 분명한 건 과거 1970년대 저수가 의료보험제도가 오늘날 상상하지 못했던 의료 환경을 만들어냈듯, 이미 6개월간의 의료 대란을 거치고 또 앞으로 얼마만큼의 의료 공백기를 보낸 뒤 대한민국의 의료 생태계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해있으리란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좌우한다.




조인경 바이오중기벤처부 차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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