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삼희의 환경칼럼] 원전 운영 연장, 왜 우린 10년만 해주나

한삼희 기자 2024. 10. 4.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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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폐로 원전까지 되살리겠다는데
한국은 미국 방식 규제에 프랑스식 규제까지 겹쳐 시행
운영허가 연장은 절반만… 상식과 합리에 맞나
부산 기장군 해안가에서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오른쪽) 모습이 보이고 있다. 사진 오른쪽부터 고리1, 2, 3, 4호기. /뉴스1

고리 2호기에 이어 고리 3호기가 며칠 전 발전을 중단하고 멈춰섰다. 둘 다 멀쩡한 원전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1차 운영허가(40년) 만료를 앞두고 미리 해뒀어야 할 운영허가 갱신 절차를 밟지 않았던 탓이다. 두 원전의 2년 남짓씩 가동 공백으로 국가적으론 수조 원의 피해가 불가피하다. 국민들은 자기 지갑에서 직접 돈을 빼내가고 있는 것이 아니어서 통증을 못 느낄 뿐이다.

한국과 대조적으로 미국에선 2019년 폐로(閉爐)시켰던 펜실베이니아주(州) 스리마일 원전 1호기를 다시 돌리겠다고 한다. 스리마일 1호는 1979년 미국 역사상 최악의 사고를 냈던 스리마일 2호기와 같은 부지에 있는 형님 원자로다. 2호기 부분 노심용융 사고의 충격파가 얼마나 컸던지 미국에선 그 후 30년 신규 원전 건설을 시도할 수 없었다. 그런데 사고 기(基)의 형제 원자로를, 그것도 45년 가동 후 폐로시켜 5년간 숨이 끊어져 있던 원자로를 다시 살려내겠다는 것이다. 그래도 별 반대 움직임이 없다. 무탄소 전력의 확보가 너무 시급하기 때문이다.

세계적 원자력 재부흥 흐름 속에서 우리가 다시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다. 한국은 왜 정상 절차를 밟아 운영허가를 연장(갱신)하는 원전에 대해 추가 가동 기간을 10년밖에 허가해주지 않느냐는 점이다. 고리 2·3호기를 포함해 2029년까지 계속운전 대상인 원전은 10기나 된다. 이것들은 운영허가 갱신을 받아 계속운전에 들어가더라도 그로부터 10년 뒤엔 다시 운영허가 연장 심사를 받아야 한다.

세계적으로 운영허가 연장에는 두 가지 모델이 있다. 하나는 프랑스 모델인데 별도로 최초 운영허가 기간을 설정해놓지 않고, 10년마다 주기적안전성평가(PSR)라는 안전성 종합 평가 절차만 두고 있다. 10년 주기로 주요 기기의 상태, 열화 정도, 위험 분석 등을 해가면서 가동 기간을 늘려가는 방식이다. 유럽과 캐나다가 이 방식이다. 반면 미국 모델은 최초 40년 운영허가 기간(한국의 경우 구형 원전은 40년, 신형 원전은 60년)을 설정해놓고 그 후 20년씩 허가를 갱신하는 방법이다. 이때 기기수명평가(LER)와 방사선환경평가(RER), 그에 따른 설비 보강을 거치게 된다. 대신 프랑스 방식의 10년 간격 주기적안전성평가는 따로 하지 않는다. 미국은 작년 6월 기준으로 92개 원전 가운데 88기가 20년 연장 허가를 받았고, 두 번째 운영허가 갱신을 통해 ‘80년 운영’에 들어간 원자로가 벌써 6기다.

희한한 것은 우리가 프랑스 모델과 미국 모델을 결합하면서 두 과정에 필요한 절차를 중복해 거치도록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프랑스 방식이면 프랑스 방식대로, 미국 방식이면 미국 방식대로 하면 될 것이다. 우린 그게 아니라 프랑스 방식을 따라 10년마다 주기적안전성평가를 받도록 돼 있고, 거기에 미국 방식으로 운영허가 갱신 때 기기수명평가와 방사선환경평가를 별도로 하고 있다. 일본도 ‘프랑스 미국’의 중복 평가 방식이긴 하다. 그러나 일본은 추가 운영허가를 20년씩 내주고 있다. 우리만 프랑스 방식과 미국 방식을 더해 규제를 곱절로 하면서 계속운전 기간은 10년으로 최소로 주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10년 계속운전’을 ‘20년’으로 바꿔보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원자력안전위원회 반대로 무산됐다는 것이다. 원안위 공무원들 입장에선 10년을 20년으로 늘려줬다가 다음번에 원자력에 비우호적인 정부가 들어서기라도 하면 어떤 날벼락을 뒤집어쓸지 모른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원안위에선 “바꾸고 싶으면 법에 넣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민주당 지배의 지금 국회 상황으론 불가능한 일이다. 과학과 기술로 판단해야 할 문제를 정쟁의 아수라장인 국회로 던져 넣어 책임을 피하겠다고 한 것이다.

프랑스 방식 주기적안전성평가를 하는 데 18개월, 미국식 기기수명평가와 방사선환경평가에는 24개월 걸린다. 계속운전을 위한 설비 개선 비용은 2000억(경수로)~6000억원(중수로)까지 든다고 한다. 그런 데다가 고리 2·3호기처럼 정치적 이유로 허가갱신 절차가 늘어지면 그나마 10년의 짧은 운영허가 기간마저 까먹게 된다. 고리 2호기의 경우 작년 4월 1차 허가 기간(40년) 만료로 가동을 중단한 후 내년 중반에야 원안위의 계속운전 허가가 떨어지면 사실상 8년짜리 허가가 되고 만다. 앞서 월성 1호기도 5900억원 들여 설비를 보강했지만 계속운전 심사에만 6년이 걸렸고 지난 정부에선 탈원전 소동에 휘말려 4년 5개월 일찍 폐로되는 바람에 실제론 1년 11개월밖에 추가 가동을 하지 못했다. 상식과 합리의 눈으로 볼 때 앞뒤가 맞지 않는 제도라면 고쳐야 한다. 문제는 지금 정부에 그런 불합리를 고쳐나갈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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