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발뮤다 창업자’ 테라오 겐 “세상에서 가장 잘 팔리는 건 ‘좋은 삶’… 타성 깨니 새길 열려”

최지희 기자 2024. 7. 1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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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21년차 日 가전업체 발뮤다
‘이중 날개’ 선풍기로 도약… 10배 비싸지만 ‘대박’
“소비자가 원하는 건 물건 아닌 훌륭한 경험”
“제품 편리함 포기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핵심 가치 택해”

‘가전업계의 애플’로 불리는 일본 가전회사 발뮤다는 신데렐라식 성공 스토리로 유명하다. 고등학교 중퇴 후 밴드 공연으로 생계를 연명하던 서른살 청년은 공장에서 일을 배우다 고급 전자기기 액세서리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발뮤다라는 명패를 달아 붙였다. 창업 6년 만인 지난 2009년 지지부진한 사업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겹치면서 회사는 도산 위기에 처했다. “내가 만들고 싶은 거 말고, 사람들한테 도움이 될 만한 걸 마지막으로 만들어보자.” 부도 직전, 청년이 고른 건 흔하디흔한 ‘선풍기’였다. 오랫동안 바람을 쐬어도 불편하지 않은 선풍기를 직접 만들어보자는 포부였다. 이 선풍기로 발뮤다는 작은 수공업 디자인 회사에서 가전 제조업체로 도약했다.

올해로 창업 21주년을 맞은 발뮤다 창업자 테라오 겐(51)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2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지금도 신제품 발표 전엔 항상 불안한데, 당시엔 발뮤다 제품이 반드시 팔릴 것이란 확신이 없었다”며 “자연에서 불어오는 것 같은 바람을 내는 선풍기가 세상에 없었기 때문에, 어떤 시대든 소비자에게 쾌적한 생활을 선사하는 제품은 선택을 받을 것이라 믿고 과감히 도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과에 대한 확신이 없더라도 자신을 믿고 실행하면 가능성은 결코 ‘제로(0)’가 되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고 했다.

그래픽=정서희

그는 어떻게 자연을 닮은 바람을 구현했을까. 온종일 선풍기만 생각하던 청년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공장 어르신들이 선풍기를 벽 쪽으로 두고 벽에 부딪히는 바람을 쐬고 있던 모습이었다. 그는 날개에서 소용돌이쳐 나오는 바람을 깨뜨려야 부드러운 바람이 분다는 데 착안해, 선풍기 날개를 5개, 9개로 만들어 앞뒤로 붙여봤다. 이전까지 이중 구조 날개를 단 선풍기는 없었다. 회전 속도가 다른 두 날개를 동시에 돌리자, 압력 차로 풍속이 느려지고 바람이 뻗어나가는 면적은 넓어졌다. 날개를 더 부드럽게 돌리려면 저진동·저소음·저전력이 특징인 브러시리스 DC모터가 필요했다. 당시 가격이 비싸 선풍기엔 외면받던 이 모터를 청년은 과감하게 선택했다.

3년간의 우여곡절을 거쳐 2010년 출시된 발뮤다 그린팬 선풍기 가격은 3만5000엔(약 30만원). 시중 선풍기보다 10배 이상 비쌌지만, 날개 돋친 듯이 나갔다. 작년까지 총 80만대 이상 팔렸고, 판매 국가는 전 세계 10곳으로 늘어났다. 겐 CEO는 “선풍기를 계기로 단순히 제품을 잘 디자인하는 데서 벗어나 브랜드 전체를 생각하는 경영자로 거듭났다”며 “사람들에게 유용하고 기쁨을 줄 수 있는 게 무엇일지 먼저 고민하는 쪽으로 관점이 바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린팬이 시장에 나온 지 14년이 지났지만, 발뮤다엔 의미가 남달라 시대에 맞게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며 “미세먼지로 실내 환기를 자주 하기가 어려워진 만큼 더 강력한 모터를 달아 바람이 23m까지 퍼지게 했다. 사계절 내내 쓸 수 있는 서큘레이터로 진화한 것”이라고 했다.

그린팬 선풍기 이후 발뮤다는 히트 제품을 잇달아 출시했다. 토스터, 랜턴, 공기청정기, 전기 주전자 등은 발뮤다 특유의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과 본질에 집중한 기능으로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10년 넘게 탄탄대로를 밟아오던 발뮤다는 최근 5개 분기 연속 적자를 내며 실적 부진을 겪고 있다. 2021년 스마트폰을 내놨지만, 성능 대비 가격이 높다는 비판 속에 2년 만에 사업을 철수한 여파다. 겐 CEO는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좋은 때도 있고 어려운 때도 있다”며 “발뮤다의 궁극적인 목표는 세상에 도움이 되는 기업인데, 이를 위해 앞으로도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발뮤다 제품은 대체로 고가다. 기능 대비 가격이 비싸다고 여기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어떻게 돌릴 수 있나.

“사람들이 원하는 건 물건이 아닌 훌륭한 경험이라는 걸 그린팬을 개발하면서 느꼈다. 세상에서 가장 잘 팔릴 수 있는 건 ‘좋은 삶’이 아닐까 싶다. 근데 그런 건 어디에서도 안 팔지 않나. 그렇다면 도구를 만드는 회사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일상의 경험을 조금씩 개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발뮤다 제품엔 공통적으로 ‘경험 가치’가 담겨있다. 이건 수치화할 수 있는 스펙(사양)이 아니다. 물건을 사용할 때 기분이 좋아지고 그 시간이 조금 더 즐거워지는 걸 목표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가격만 보면 납득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사용해 보면 그 가치를 알 수 있도록 디자이너와 엔지니어가 항상 함께 고민하면서 제품을 만든다.”

—발뮤다가 추구하는 디자인 철학은 뭔가.

“발뮤다 디자인팀은 새로움보다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제품 버튼의 촉감과 조작음 등 디테일에서 사용자의 기분이 좋아질 수 있도록 세심하게 다듬어 나간다. 예를 들어 선풍기에서 서큘레이터로 진화한 ‘그린팬 스튜디오’를 개발할 땐, 가전제품의 단점인 코드 선을 숨기는 대신 오히려 선을 본체에 걸었을 때 아름답게 정리되도록 디자인했다. 사용 범위를 넓히려고 케이블 길이를 3m로 늘리면서도 이를 디자인 요소로 승화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제품을 개발할 때 중요한 걸 포기하더라도 꼭 지키는 원칙이 있나.

“언제나 ‘코어 밸류(핵심 가치)’ 고민부터 시작한다. 이 제품이 고객에게 전달하려는 가치가 무엇인지, 그 핵심을 고민하는 작업이다. 이건 시대에 따라 변하지 않는 가치다. 가령 발뮤다의 조리 가전은 ‘맛’이 핵심 가치다. 커피 메이커나 전기밥솥에서 보온 기능을 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보온 기능은 편리하지만, 핵심 가치인 ‘맛’을 실현할 수 없어서 넣지 않았다.”

—다른 가전회사와 달리 제조 공장을 따로 두지 않고 있는데.

“발빠른 대처가 가능해서다. 자유로운 발상으로 신속하게 새 제품을 만들기 위해선 우리가 직접 제조하는 것보다 이미 실적이 있는 파트너와 협력하는 게 더 합리적이다. 다만 개발 초기 단계에서는 프로토타이핑(양산에 앞서 시제품을 제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완성품에 가까운 수작업 시제품을 만들 수 있는 설비와 체제는 자체적으로 갖추고 있다.”

—발뮤다가 계획하고 있는 다음 스텝은 무엇인가.

“현재 소형 풍력 발전 실증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창업 전 음악을 하던 시절부터 지구 온난화와 에너지 문제에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 선풍기를 만들 때도 적은 소비전력으로 쾌적한 바람을 낼 수 있게 고민한 거다. 환경 문제는 21세기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 도전하려고 한다. 아직 사업화엔 이르지 못했지만 발전 사업에 큰 관심과 열정을 갖고 연구개발 중이다.”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일에 진지하게 임하는 성실하고 근면한 자세, 끈질긴 근성이 필요하다. 나도 이 세 가지는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항상 자신감이 있는 건 아니다. 제품을 개발할 때 대단한 걸 만들었다고 생각하다가도 실제 발표할 땐 불안해진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지, 여러 번 스스로 되묻는다. 대체로 미래는 해피엔딩이거나, 실패하거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거나 셋 중 하나다. 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결말을 가장 피하고 싶다. 실패하면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아이디어를 고안하고 실현해 나가면 된다. 꼭 자신의 가능성을 믿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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