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 선 시인의 질문 [PADO]

조희정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2024. 7. 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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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전미도서상 시 부문 후보였던 차리프 샤나한의 시집 'Trace Evidence: Poems' 표지. /사진제공=Tin House Books


날이 갈수록 세상 모든 것들이 다양해지고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데도, 주변을 둘러보면 막상 사람들의 욕망은 오히려 점점 더 획일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고 싶은 대학도, 살고 싶은 아파트도, 타고 싶은 자동차도, 심지어 들고 싶은 가방조차도 사회적인 약속처럼 어느 정도 이미 정해져 있고, 능력이 있으면 있을수록 욕망의 서열에서 가장 위쪽에 있는 대상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곤 한다. 심지어, 외모의 아름다움을 평가하는 기준도 이런 획일화의 경향에서 예외가 아니기에, 성형이나 시술을 통해서라도 그런 기준에 좀 더 부합하는 모습으로 거듭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아지고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시는 이렇게 획일화된 욕망의 그물로부터 빠져나가서 나 자신을 찾는 것이 과연 가능할 수 있을지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2023년 전미도서상(National Book Award) 시 부문 후보였던 시인 차리프 샤나한(Charif Shanahan)은 이 시의 제목에서 '세수를 하는 동안 나는 나 자신과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불가능한 질문들을 던진다'고 말한다. 거울을 보는 장면은 문학 작품에서 흔히 등장하여 스스로의 진정한 자아를 응시하는 순간을 표상하는 경우가 많은데, 샤나한의 시가 흥미로운 이유는 제목에서부터 이런 응시가 "불가능"하다는 전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시는 애초에 명확한 답이 "불가능"한 질문으로부터 출발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질문을 통해 어떤 의미를 찾는 과정 그 자체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차리프 샤나한 - 세수를 하는 동안 나는 나 자신과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불가능한 질문들을 던진다 (번역: 조희정)
치약 자국들로 거울이 얼룩덜룩하다.
환풍기가 방 안에 먼지를 회전시킨다.
"바로 이거야"란 말은 받아들이기에 너무 천박하기에
나는 새로운 출발점을 기다린다,
마치 삶이 거기에서 그리고 그 때에 시작될 것처럼.
당신은 무슨 뜻인지 알까?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가 아니라, 무슨 뜻인지를.
내가 모든 복잡한, 세포 사이사이의
고통을 부여잡고서 명료한 것을 또렷이
말하는 기능을 가질 수 있을까?
내 손목에 배를 묶어 주면, 나는 날개를 피운다.
내게 신발 한 켤레를 주면, 나는 지느러미를 길러낸다.
한 시간에 두 번씩 나는 나 자신을 속여 초점을 맞춘다.
관통하여 보듯이 유리 속을 들여다본다.
새로운 시작이 올 때, 그 때는 어찌 될까?
아타리처럼 삶이 갑자기 초기화되나?
의미가 확실하게 그리고
저절로 드러나게 되나?
해야 할 일은 당신과 함께 충분히 잘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당신은 스스로 원하는 것이 뭔지 어찌 알까,
당신이 스스로에게 말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스스로에게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시의 첫머리부터 시인은 "거울"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을 제대로 보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거울은 "치약 자국들"로 얼룩덜룩하며, 화장실의 공기에는 "먼지"가 떠돈다. 이렇게 뿌옇고 불투명한 느낌으로 시를 시작함으로써, 시인은 거울을 통해 자아를 탐색하는 과정이 "바로 이거야"라는 답을 곧장 던져 줄 정도로 쉬운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렇게 쉽게 도달한 결론은 오히려 "천박"할 정도로 너무 가벼운 것일 수 있기에, 시인은 자신이 스스로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어떤 새로운 "출발점"의 도래를 기다리며 거울을 지속적으로 응시한다.

이런 응시의 과정은 시인이 강조하듯이 결코 쉽지 않다. "세포 사이사이의 고통을 부여잡는다"는 표현은 매우 실감 나고 강렬하게 시인이 스스로의 모습을 직시하려는 노력에 따르는 어려움을 전달해 준다. 사회적으로 규정되고 부과된 정체성에 함몰되지 않고, 또 이미 정해져 있는 욕망의 규칙들에 순응하지 않고,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나는 무엇을 바라는지를 묻는 것은 분명 고통스러운 과업이다. 그 물음의 끝에 어떤 "명료한 것"이 답으로 주어져 있어서 시인이 그것을 "또렷이 말할" 수 있을까? 이 시는 이런 물음에 대해 계속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지만, 그럼에도 시인은 이 불가능해 보이는 질문을 "한 시간에 두 번씩" 반복해서 던진다. 시인의 반복적인 노력이 이렇게까지 필요한 이유는 시의 마지막 부분에 제시되어 있다. "스스로에게 말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스스로에게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결코 "스스로 원하는 것이 뭔지" 찾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완결적인 형태로 주어진 답을 곧바로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시인은 할 수 있다고 자신을 "속여" 가며 거울을 앞에 두고 힘겨운 질문 던지기를 끝없이 계속한다.

일상생활 중에 거울에 비친 모습을 바라보는 때가 자주 있을 수 있겠지만, 이 시에는 특히 "세수"를 하는 도중 만나는 자신의 이미지와 조우하려는 시인의 노력이 담겨 있다. 밖에서의 삶이 요구하는 외양으로부터 가장 멀어진 상태에서 화장이나 면도 등으로 꾸며지지 않은 민낯은 우리 내면의 진실에 대해 그래도 좀 더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 줄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세수"를 하면서 짓는 표정은 억지스럽지 않은 진솔함을 담고 있기도 하다. 고객을 대하는 상냥한 표정, 상사에게 응하는 공손한 표정, 또 어떤 위치에서 지어야만 하는 권위 있는 표정, 이런 것들에서 그나마 가장 자유로운 순간은 아마도 내 집의 화장실에서 얼굴을 씻는 바로 그 때일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 시를 끝까지 읽고 시의 제목을 다시 살피면서 흥미로운 점은 시인이 던지는 "질문들"이 "나 자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하여까지 확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기다란 제목은 시인 주변의 의미 있는 사람들도 시인처럼 스스로의 내면을 만나기 위한 노력을 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시가 전해 주는 고유의 따스한 느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가지는 기대가 획일화된 사회적 욕망의 질서와는 상당한 거리를 가진 것일 수도 있다는 깨달음에서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나에 대해 진정한 관심과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내가 어느 아파트에 사는지, 혹은 어떤 차를 타고 다니는지보다 나의 삶이 얼마나 즐겁고 평안한지가 더 궁금하지 않을까? 역으로 말하자면, 손에 정확히 잡히지 않는 자존감이나 평화로움 같은 무형의 가치들이 삶에서 갖는 중요성은 때로는 나 자신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 더 분명하게 다가오기도 하는 듯하다.

이 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는 개인을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내면의 욕망을 확인하고 수긍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삶 자체가 복잡한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이루어지기에, 내가 지닌 고유의 정체성과 욕구를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주입되는 욕망과 명확하게 구분하여 인지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시인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곧바로 얻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자신의 맨 얼굴을 수없이 반복해서 바라본다. 그 지난한 바라봄의 과정을 통해 시인은 과연 삶을 새롭게 시작하게 할 만한 어떤 "출발점"을 찾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이 시에서 어떤 명료한 답을 끝내 발견하지는 못하더라도, 우리는 시인을 따라 스스로에게 말하고 스스로에게 귀 기울이는 방법을 조금씩이나마 체득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쩌면 우리는 나와 관계없는 타인들이 만들어 놓은 욕망의 알고리즘 속에서 허우적대는 인생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는 귀한 경험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조희정은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하버마스의 근대성 이론과 낭만주의 이후 현대까지의 대화시 전통을 연결한 논문으로 미시건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간과 자연의 소통, 공동체 내에서의 소통, 독자와의 소통, 텍스트 사이의 소통 등 영미시에서 다양한 형태의 대화적 소통이 이루어지는 양상에 관심을 가지고 다수의 연구논문을 발표하였다.

조희정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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