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포커 하듯 골프하기의 함정

방민준 2024. 7. 2.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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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엔 여백이 없다.

골프란 바로 긴 여백의 시간에 몰려드는 상념과의 싸움이다.

궁술의 요체가 호흡 안정과 정신 집중에 있듯 골프의 승패 또한 스윙에 소요되는 짧은 시간을 제외한 여백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달려 있다.

도락에 비유하면 골프는 서양식 포커가 아니라 화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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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를 하는 참고 이미지.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서양화엔 여백이 없다. 틈이 있으면 미완성이라는 인식에 화면은 모두 물감으로 채워진다. 동양화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여백이 많다. 특히 수묵화의 경우 절반 이상이 여백이다. 화면을 꽉 채운 그림보다는 적절한 여백을 남겨둔 그림이 사랑을 받는다.



 



골프는 그림에 비유하면 동양화다. 4시간 남짓 걸리는 한 라운드에서 골프의 가장 핵심적인 동작인 스윙에 소요되는 시간은 고작 15분을 넘지 않는다.



한 샷을 하기 위한 어드레스에서 피니시 동작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길어야 10초 이내다. 90타를 치는 사람이라면 한 라운드에 샷을 위해 소모하는 시간은 900초, 즉 15분에 불과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15분을 뺀 나머지 시간 3시간 45분 정도가 여백이란 셈이다. 이 여백의 시간은 잔디 위를 걷고, 코스를 살펴 전략을 세우며, 동반자와 담소를 나누는 데 쓴다. 



 



정작 꼭 필요한 동작을 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15분밖에 안 걸리는데 여백이 이렇게 많다 보니 온갖 상념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다. 골프란 바로 긴 여백의 시간에 몰려드는 상념과의 싸움이다. 



 



이런 면에서 골프는 궁술과 흡사하다. 구기종목이나 격투기, 육상 등은 쉼 없이 움직여야 하지만 궁술은 활을 들어 시위를 당겼다 놓는 최소한의 동작을 제외하고는 호흡과 정신 집중에 대부분 시간을 할애한다. 궁술의 요체가 호흡 안정과 정신 집중에 있듯 골프의 승패 또한 스윙에 소요되는 짧은 시간을 제외한 여백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달려 있다.



 



도락에 비유하면 골프는 서양식 포커가 아니라 화투다. 화투는 처음 패를 돌리고 나서 게임에 참가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순서대로 결정할 수 있다. 한번 참가를 결정한 뒤에는 그 판이 끝나기 전에는 물러날 수 없다. 중간에 빠질 수 있는 섯다를 제외하곤 한번 발을 들여놓은 이상 끝장을 봐야 한다. 승리를 추구하지만 상황이 나쁘면 어떻게든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게임을 마칠 것인가를 궁리해야 한다. 게임이 끝날 때까지 방심할 수 없다.



 



그러나 포커 게임은 다르다. 처음 패를 받고 시작할 때도 게임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지만 게임 중간에도 자신이 이길 확률이 없고 도저히 더 이상 버티는 게 무의미하다고 판단되면 중간에 패를 접을 수 있다. 중간에 지른 것은 손해지만 그만큼 손실을 줄일 수 있다.



 



서양에서 유래된 골프가 동양의 도락인 화투와 닮았다는 게 묘하다. 라운드를 한번 시작하고 나면 싫으나 좋으나 18홀을 끝내야만 게임에서 빠질 수 있다.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장을 봐야 하는 것이 골프다. 포커처럼 중도에 포기할 수 있다면 골프는 그야말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재미없는 놀이가 되었을 것이다.



 



많은 주말골퍼들이 화투가 아닌 포커를 하듯 골프를 한다. 18홀을 벗어나야만 게임이 끝나는데도 몇 홀 지나지 않아 스코어가 엉망이면 중도에 목표와 전의를 상실하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플레이한다. 사실상 카드를 던진 것이나 다름없다.



 



지든 이기든 게임을 끝내고 셈을 하는 화투와 같이 골프에서도 중도 포기란 있을 수 없다. 결과 또한 모두 자기 몫이다. 골프는 고스톱 하듯 해야 한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email protected])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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