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부외과→피부과' 무더기 환승?…사직 전공의 '인기과 쏠림' 우려

정부의 의대증원과 필수의료 정책에 반발해 병원을 떠난 후 돌아오지 않은 전공의는 1만2661명(8일 211개 수련병원 기준). 전체 전공의(1만3756명)의 92%에 달하는 규모다. 이들에게 정부가 '의사면허 정지' 같은 어떠한 행정처분도 하지 않겠다고 전날(8일) 밝히면서 전공의들이 복귀냐 사직이냐를 두고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향후 의사로서의 로드맵이 수정될 수 있는데, 이게 되레 기피과를 떠나 인기과로 갈아타는 데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지난 8일 정부 발표에 따르면 현재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난 전공의가 복귀할 경우 '수련 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원칙상으론 현재의 전공의 임용시험 지침에 따라, 수련 도중 사직한 전공의는 1년 이내에 같은 전공, 같은 연차로 복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정부는 올해에 한해 이를 완화해 이탈 전공의가 하반기 수련에 응시하면 같은 과, 같은 연차로의 복귀를 허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이탈했던 전공의가 오는 9월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 지원하면 당장 9월부터 수련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대신 수련 과정이 6개월 늦어지게 돼, 전공의 최고참(진료과에 따라 3·4년 차)의 경우 내년 초가 아닌 '내년 하반기'에 전문의 시험을 치르는 것도 정부가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 김국일 보건의료정책관은 "사직하지 않고 복귀하는 전공의는 현행 체계 내에서 최대한 수련하도록 특례를 적용할 것이고, 9월에 복귀하는 전공의는 (내년) 8월까지 수련하고 전문의 자격을 따도록 그 시점에 맞춰 (특례를) 준비 중"이라고 언급했다.

복지부 민차영 보도팀장은 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전문의 시험은 매년 1~2월에 한 번 있어서 만약 전공의가 9월에 복귀하면 전문의 취득 시점은 (원칙대로라면) 늦어질 수 있으나, 전문의 시험을 추가로 운영하는 식으로 해서 전문의 자격 취득시기가 늦어지지 않도록 수련 특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피부과 전문의와 비전문의가 운영하는 의원의 간판 차이점. /사진=대한피부과학회

사직 전공의가 올 하반기 다른 진료과로 지원(전과)할 수도 있을까? 민 팀장은 "사직 전공의가 다른 과로 지원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그럴 경우 1년 차로만 지원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럴 경우 흉부외과·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 등 기피과가 많은 필수의료 분야의 저년차(1~2년 차) 전공의가 인기 과로 '전과'할 가능성도 적잖아 보인다. 사직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큰 이유는 정부가 올 초 내놓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실망해서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기 과로의 쏠림을 부추기도록 악용될 소지가 있단 얘기다. 예컨대 기피과 중의 기피과로 꼽히는 흉부외과 전공의 1년 차의 경우, 올 초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났어도 올 하반기부터 인기과인 성형외과 전공의로 지원해 1년 차로 갈아탈 수 있는 셈이다.

정부가 특례를 내걸었지만 그래도 복귀하지 않고 사직을 고집한 전공의는 개원할 수 있을까? 민 팀장은 "끝까지 미복귀한 전공의는 개원이나 봉직의(페이닥터) 등 일반의로서 의사 활동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결국 수련병원이 많은 상급종합병원에서 교수가 되는 길은 포기하되, 인기 있는 진료과목으로 진로를 바꿀 수 있다.

이들은 전문의가 되기를 포기했으므로 피부과·성형외과 같은 인기과를 개원할 수는 없다. 대신 일반 의원을 개원하더라도 '진료과목 피부과', '진료과목 성형외과' 등을 간판에 넣고 진료할 수 있다. 예컨대 '홍길동 의원(진료과목 피부과)' 식으로 비전문의이지만 개원할 수 있단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