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폰트 무단으로 썼지?" 폰트 사냥꾼의 등장과 정치권의 헛발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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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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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탐구생활 대학생 기사취조단
더스쿠프-가톨릭대 공동기획
ESG의 이해와 전망➊ 저작권 논쟁 1부
2010년대 폰트 저작권 소송 증가
무분별한 소송 막을 필요성 대두
보여주기식 발의에 그친 정치권
대신 공공서비스 등장에는 기여
폰트를 무료로 배포했다가 유료로 전환해 저작권 소송을 제기하는 폰트개발업체도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 저작권은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개중엔 저작권 보호를 빌미로 사냥하듯 소송을 남발해 합의금 장사를 하는 이들도 있다. 글꼴(폰트) 시장에서 종종 발생하는 일이다. 오죽하면 공공기관조차 '글꼴개발업체의 저작권 사냥을 조심하라'고 공지할 정도다. '글꼴 저작권 소송 남용'의 부작용이다. 

# 하지만 그 이면엔 다른 발걸음도 있다. 탐욕스러운 '저작권 사냥'을 막기 위해 공공과 민간이 함께 생태계를 바꾸고 있다. 의도한 것도 아니다. 공공과 민간의 자율적 움직임이자 집단지성에 근거한 집단행동이다. 사회를 바꾸는 힘이 법과 제도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잘 보여주는 사례다. 

# 더스쿠프가 가톨릭대와 함께 기획한 클래스 '사회혁신 소셜리빙랩 프로젝트'를 통해 저작권 생태계의 진화와 함의를 취재했다. '저작권 논쟁' 제1부다. [※참고: 더스쿠프 취재진은 2024년 1학기 가톨릭대에서 진행한 클래스 'ESG의 이해와 전망(김승균 교수)'의 멘토로 참여해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 경영의 현주소를 들여다봤다. 그 첫번째인 '저작권 논쟁' 편이다. 각 편은 다시 1부와 2부로 나눠 게재한다.]


무분별한 폰트 저작권 소송은 저작권 시장을 바꿔놨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원래 글꼴(이하 폰트)은 저작권 보호의 대상이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가 배포한 '폰트 파일에 대한 저작권 바로 알기'를 봐도 법원은 '폰트의 저작물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어쩌면 당연하다. 글씨는 쓰다 보면 비슷한 모양이 될 수도 있는데, 그걸 문제 삼아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꼬집을 만한 근거가 없어서다. 미국, 영국, 일본 등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폰트 파일'은 다르다. 이는 '폰트를 디지털화해서 화면에 표시ㆍ출력할 수 있도록 만든 전자 데이터 파일'인데, 저작권이 있다. 폰트 파일을 만든 저작자는 저작권법 제2조 제16호(컴퓨터프로그램저작물)에 근거로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을 부여받는다.

누군가 폰트 파일을 허락없이 내려받아 PC에 설치해 무단으로 사용하거나 공유한다면 저작권을 침해(복제권 또는 전송권 침해)했을 소지가 크다. 폰트 시장에서 저작권 침해 소송이 일어나는 건 대부분 이런 경우다. 

문제는 '폰트 파일의 설치ㆍ사용'을 은근히 부추겨 저작권 침해를 유발하고, 이를 빌미로 저작권 소송을 남발해 합의금을 뜯어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질문: 소송의 이유 = 더스쿠프 통권 586호(2024년 2월)에 실린 기사 '7년 전 글꼴 도용했습니다, 갑자기 저작권 소장이 날아왔다'를 살펴보자. 이 기사에 등장하는 A폰트개발업체는 당초에 '비영리로 사용할 경우 무료'라는 단서를 달아 폰트 파일을 여기저기 배포했다. 이를 한 비영리단체(NGO)에서 내려받아 사용했다. 2013년 홍보물 제작을 도왔던 자원봉사자들이 '비영리=무료'란 문구를 보고 사용해도 괜찮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A폰트개발업체는 그로부터 7년이 흐른 뒤 NGO를 상대로 형사고소와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비영리'라는 말이 법적으로 '개인적 용도'에 한정한다는 허점을 이용한 소訴 제기였다. 쉽게 말해, '비영리=무료'란 용어의 뜻은 '비영리=사적으로만 사용'이란 거였고, 이를 악용해 NGO를 법적 분쟁에 끌어들인 셈이다. 

교육 현장에서 폰트 저작권 분쟁이 자주 발생했다.[사진=뉴시스]


물론 A폰트개발업체가 자신들이 만든 저작물의 저작권을 지키기 위해 대응한 것 자체를 일방적으로 꼬집긴 힘들다. 다만, A폰트개발업체가 정말 저작권을 지키기 위해 소송을 택했는지는 의문이다. 

우선 소송 대신 대화를 요구한 NGO에 터무니없는 높은 합의금을 요구했다. 실제 사용된 폰트 파일의 낱개 가격이 아닌 폰트꾸러미 전체의 가격을 제시하는 식이었다. NGO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특히 A폰트개발업체는 시민단체, 기관, 기업만을 표적으로 삼았다. 기업과 기관들을 형사고소한 사건만 해도 500건이 넘었다. 

그럼에도 A폰트개발업체가 개발한 폰트 파일을 '무료'라며 인터넷에서 여기저기 유포한 이들에겐 아무런 법적 책임을 묻지 않았다. A폰트개발업체가 저작권을 지키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면 불법 배포부터 막았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는 얘기다. A폰트개발업체의 저작권 보호 소송의 진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다면 A폰트개발업체와 같은 '무분별한 저작권 침해 소송'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사실 이 질문은 폰트 파일만의 얘기가 아니다. 저작권 침해와 역침해, 저작권 시장 속 법적 공백 등 사회적 관점에서 풀어볼 만한 문제다. 

자! 이쯤에서 A폰트개발업체의 소송을 좀 더 폭넓은 관점에서 얘기해보자. 여기엔 말만 내뱉는 정치권의 뻔한 구태,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의 의미 있는 행보, 민간기업의 사회적 공헌행위 등 수많은 함의가 들어 있다. 먼저 정치권의 헛발질부터 살펴보자. 

■ 변화 헛발질과 사회적 행보 = 시계추를 2020년으로 돌려보자. 그해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폰트 파일의 불법 유통 구조를 지적하면서 "포털의 폰트 라이선스 게시 방식을 개선하고, 포털에 불법 폰트 배포 단속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료폰트'로 소개ㆍ배포한 폰트 파일의 라이선스를 들여다보면 이용에 일부 제한이 있거나 '사실상 유료인 가짜 무료폰트'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최 의원은 "사용자들이 각 폰트의 라이선스를 좀 더 쉽게 인지할 수 있도록 한국저작권위원회가 포털 측과 '폰트 라이선스 게시 방식' 개선 등 사용자 보호를 위한 협의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참고: 포털에 폰트 파일 배포 단속 책임을 지우는 건 현실화하지 못했다.] 

2021년엔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저작권 침해 정도가 경미한 경우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하고, 고발보다 조정을 우선시하는 내용을 담은 저작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고소를 통해 형사벌을 무기화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취지에서였다. 하지만 이 개정안 역시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이렇게 정치권은 말만 그럴듯하게 했을 뿐 실제론 '헛발질'만 거듭했다.

그래도 달라진 점은 있다. 의미 없는 저작권 침해소송이 판을 치자 사회 곳곳에선 "복잡한 라이선스를 개선해 소비자 권익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었다.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무엇보다 폰트 파일의 이용약관을 명시하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았다. 사용에 제한이 있는 무료폰트의 경우, 제작사별ㆍ폰트별 (사용)범위가 달랐다. 폰트 파일을 활용해 만들 수 있는 작업물의 종류나 용도, 배포 범위도 차이가 있었다.

심지어 라이선스를 공지하는 방식이나 용어마저 통일돼 있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사용자로선 저작권자들이 쳐놓은 복잡한 거미줄에 걸려들 수밖에 없었다. '복잡한 라이선스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난 이유다. 



이런 사회적 행보는 정책 변화를 이끌어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폰트를 포함한 저작권 관련 교육과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서비스는 폰트 저작권의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폰트 저작권 분쟁을 예방ㆍ해결하기 위해 마련한 지원 활동이다. 교육저작권지원센터 역시 교육기관용 폰트 점검 프로그램을 개발해 사용자가 모르게 설치된 무료 또는 유료 폰트를 구분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교육저작권지원센터 관계자는 "팬데믹 국면에서 원격수업이 확대함에 따라 학교 선생님들이 수업 자료를 만들면서 저작권 때문에 애를 먹었다"면서 "폰트 점검 프로그램은 이런 교육 현장의 애로를 반영한 것으로 저작권 분쟁을 줄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주목할 점은 이같은 사회적 행보가 '시장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거다. 과연 어떤 변화가 나타났을까. 이 이야기는 '저작권 논쟁' 2부에서 이어나가보자.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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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환 경영학과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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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재 사회학과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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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준 사회복지학과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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