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의 ‘국회의원직 제명’을 요구하는 국민 동의 청원이 23일 오전 7만명을 넘어섰다. 현재 정 위원장과 민주당은 “법대로 한다”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안 발의 청원과 관련한 국회 청문회를 밀어붙이고 있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청원 청문회에 대해 민주당은 국회법에 따른 정당한 절차란 입장이다.
지난 22일 ‘정청래 의원직 제명’ 청원은 국회법상 처리 요건인 ‘청원 30일 내 5만명 이상 동의’를 충족해 청문회를 열 수 있는 요건을 갖췄다. 여권에서는 “그렇다면 ‘정청래 청문회’도 열어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 나왔다. 이를 의식한 듯 정 위원장은 자신에 대한 청문회 개최에 “찬성한다”고 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라고 했다. 야당이 청원 청문회를 대통령 탄핵 등 정쟁용으로 활용하면서 국민 청원 제도가 희화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야당이 장악하고 있는 법사위는 대통령 탄핵 청원보다 앞서 법사위에 접수된 ‘스토킹 범죄’ 피해 대책 관련 청원에 대해선 정작 청문회를 열지 않았다.
‘정청래 제명’ 청원은 지난 18일 국민 동의 청원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청원 사유는 정 위원장이 동료 의원들에게 “국회법 공부 좀 하라” 같은 막말을 하고 대통령 탄핵 청원 청문회를 여야 합의 없이 강행하는 등 위법하게 법사위를 운영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정 위원장은 지난 21일 페이스북에 “법대로 하자”며 이 청원에 대해서도 “대찬성, 환영한다”고 했다. 그는 이 청원이 적법하게 법사위로 회부되면 이 또한 청문회를 개최하겠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이해식 수석대변인은 “국회의원에 대한 해임 또는 제명 청원은 국회 운영위에서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이 사안은 법사위가 아닌 운영위 소관이란 것이다.
정 위원장의 ‘법대로 한다’는 논리에 대해 ‘선택적 법 적용’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법사위는 윤 대통령 탄핵 청원을 청문회로 넘기기에 앞서 ‘교제 폭력 관련 제도 개선 요청’에 관한 청원을 넘겨받았다. 청원인은 자신을 지난 4월 스토킹 폭행으로 숨진 21세 딸의 엄마라고 소개했다. 청원인은 “경찰 신고 11회에도 범죄를 막지 못했다”며 담당 경찰에 책임을 물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경찰 수사 매뉴얼을 개선하고, 교제 폭력 처벌법도 마련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런데 이 청원에 대해 법사위는 아직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한 법조인은 “사연이 절절한 청원인데 정 위원장이 왜 청문회를 안 여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청원이 시민의 억울함을 해소하는 제도로 활용되기보다 정쟁용으로 악용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또 국민 청원의 정쟁 활용은 또 다른 정치적 청원을 낳고 있다. 윤 대통령 탄핵 청원에 대한 반발로 대통령 탄핵 반대 청원도 국회에 접수됐다. 이 청원은 10만여 명이 동의해 법사위로 회부됐다. 그러자 정 위원장은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청문회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 밖에 민주당 정당 해산 심판 촉구 청원, 신원식 국방부 장관 탄핵 소추안 발의 청원도 올라와 있다. 5만명 이상이 동의한 두 청원은 아직 소관 상임위로 넘어가지 않았다. 국회 관계자는 “양쪽 진영에서 5만명씩 동원하는 건 일도 아니다”라며 “이런 식이면 상임위에 쌓여 있는 민생 법안 대신 정쟁용 청문회만 열어야 할 판”이라고 했다.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국회 청원은 ‘입법 청원’이나 국민 피해 구제 등 ‘민원 청원’이 기본”이라며 “지금 야당은 헌법이 보장하는 청원권의 근본 취지를 무시하고 국민 청원을 희화화하고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이날 정청래 위원장에 대해 “갑질 위원장의 오만함”이라며 “정 위원장께 권한다. 오늘은 국회의원 배지를 내려놓고 잠시 거울 앞에서 본인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시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권해본다”고 했다. 그러자 정 위원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거울 앞에 선 자기 사진을 올리며 “추경호 의원 권유대로 거울 앞에 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