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구점 사라진 게 쿠팡 탓?" 정책적 무관심과 골목경제 [추적 ]

입력
기사원문
이지원 기자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학교 앞 문구점 예고된 쇠퇴
매년 수백개씩 사라진 문구점
학령인구 감소 탓만은 아냐
다이소와 쿠팡 공격적 확대
학습준비물 지원제도 부메랑
최저가 낙찰제에 문구점 소외
생계형적합업종 지정도 불발
학교 앞 문구점. 30~40대에겐 '추억의 장소'지만 요즘 학생들에겐 그렇지 않다. 대형 할인점이나 온라인 몰 등 문구점을 대체할 만한 플랫폼이 숱해서다. 하지만 사라지는 문구점의 원인을 '시장'으로 돌려선 안 된다. 정책적 무관심도 문구점을 벼랑으로 몰아세운 이유 중 하나다.

2021년 문구점 수가 처음으로 1만개 밑으로 떨어졌다.[사진=뉴시스]


서울 영등포구에서 20년 가까이 자리를 지켜온 문구점 2곳이 최근 연이어 문을 닫았다. 둘 모두 유동인구가 많은 학교 앞에 있었지만 경영 악화를 이겨내지 못했다. '학교 앞 문구점'이 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는 건데, 이런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7년 초 2만개 밑으로 떨어진 문구점(문구소매업) 수는 2021년 1만개 벽마저 무너졌다. 현재 문구점 수는 9657개(2022년)로 더 쪼그라들었다. 

문구점을 운영하는 점주들로선 위기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영등포구에서 11년째 문구점 영업을 하는 점주 A씨는 착잡함을 토로했다. 그는 "5~6년 전과 비교하면 매출액이 50% 이상 줄었다"면서 말을 이었다. 

"문구점 인근 500m~1㎞ 거리에 다이소가 3개나 들어섰다. 다이소에서 팔지 않는 제품들을 찾아 판매해보려 했지만 쉽지 않다. 학생들이 주로 구매하는 볼펜 등은 다이소와 비교했을 때 가격 경쟁력을 갖는 게 쉽지 않다. 젊은 학부모들은 쿠팡과 같은 온라인 쇼핑몰을 주로 이용하니 문구점을 찾는 발길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혹시나 학용품을 챙기지 못한 학생들이 찾아올까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까지 12시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임대료조차 감당하기 버거운 게 현실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학교가 문을 닫은 팬데믹 국면에서도 버텼지만 문구점은 갈수록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 문구점의 민낯➊ 정책 공백 = 그렇다고 문구점의 위기를 다이소나 쿠팡에 전가할 순 없다. 학령인구 감소 속에 문구점을 그나마 보호해줄 최소한의 안전망이 사라진 이유를 따져봐야 한다. 대표적인 게 2022년 7월지정이 해제된 '중소기업적합업종'이다.

2015년 동반성장위원회(이하 동반위)는 '문구 소매업'을 중기적합업종으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대형마트에선 연필·지우개·교과노트 등 학용문구 18개 품목을 묶음 단위로만 판매할 수 있었다(낱개 판매 금지). 2018년엔 다이소도 이 제도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2022년 중기적합업종 지정이 끝나면서 문구점을 보호할 울타리가 사라졌다. 

[사진=뉴시스]


이후 문구점 업계는 문구 소매업을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해 달라고 동반위에 촉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동반위 주도로 지난해 10월 문구점 업계(한국문구유통업협동조합)와 대형 유통업계(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다이소)가 '상생협약'을 체결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상생협약엔 ▲학용문구 12종 묶음판매만 허용, ▲신학기 할인행사 금지 등의 내용을 담았지만 강제성이 없는 탓에 실효성에는 물음표가 붙었다. 

■ 문구점의 민낯➋ 지원의 덫 = 여기에 2011년부터 각 시·도교육청이 도입한 '학습준비물 지원 제도'도 학교 앞 문구점의 위기를 부추겼다. 학습준비물 지원 제도의 취지는 초·중·고 교육에 필요한 학습준비물을 교육청 예산 등으로 지원하는 거다. 학부모의 비용 부담을 덜어주고 교육복지를 확대하기 위해 도입한 이 제도가 공교롭게도 문구점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대다수 학교가 학습준비물을 공급할 업체를 '나라장터'나 '학교장터'에서 입찰을 통해 선정했기 때문이다. 낙찰 기준이 '낮은 단가'이다 보니 작은 문구점들은 입찰에 참여해도 낙찰받는 게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웠다.

문구 도매상이나 벤더사, 심지어 문구업종이 아닌 업체들이 입찰해 낙찰받은 후 납품을 문구업체에 떠넘기는 사례는 그래서 발생했다.[※참고: 가격 위주로 납품업체를 선정하면서 문구점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학습준비물 품질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물론 일부 학습준비물은 학교 앞 문구점에서 구매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 비중(2012년 경기도 기준 2.8%)은 극히 드물었다. 문구점들의 곡소리가 커지자 교육부는 2014년 학교 인근 문구점 이용을 유도하도록 권고안(학습준비물 지원 제도 개선 방안)을 내려보냈다. 하지만 이 역시 강제성 없는 '가이드라인'일 뿐이었다.

이 때문에 17개 시도교육청이 제각각 운영하는 학습준비물 지원 사업을 법적으로 제도화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학습준비물 지원 관련 법적 근거 마련, ▲학습준비물 구입 및 운영 기본 지침 마련 등의 내용을 담은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그것이다.

문구점들의 어려움이 극심해진 2014년 유은혜 의원(이하 당시·19대 국회)부터 2016년 백재현 의원(20대 국회)까지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두 법안 모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임기만료 폐기됐다. 

그로부터 10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매년 수백개의 문구점이 문을 닫고 있다. 여기에 더해 최근엔 '무인문구점'까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매출 감소를 겪는 업체들이 숱하다. 방기홍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회장은 "결국 문구점이 살아남으려면 매출이 늘어야 하는데 무인문구점마저 급증하면서 기존 업체들의 매출이 급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문구점 줄폐업을 막을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부산시다. 부산광역시의회는 지난 6월 '학습준비물 지원 조례안'을 가결했다. 배영숙 시의원이 발의한 이 조례안의 골자는 학습준비물 구입 시 지역 문구점 이용을 활성화하는 거다. ▲학교 인근 문구점의 범위, ▲인근 문구점 구매 권장 비율, ▲인근 문구점 구매 권장 품목 등 지정을 통해서다. 

유통 컨설팅업체 김앤커머스의 김영호 대표는 "문구점은 오랫동안 골목경제의 한 축을 담당해왔다"면서 "죽어가는 골목에 다시 활기가 감돌려면, 문구점 등 작은 요소들이 파괴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관심의 사각지대로 밀려난 문구점은 과연 얼마나 더 생존할 수 있을까. 문구점은 여전히 9500여개에 달하고, 여기엔 1만6553명이 종사하고 있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email protected]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경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