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형의 책·읽·기] 기호로 풀고 마음을 듣다… 첼리스트와 수학자의 대위법적 협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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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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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원×김민형 대담집 출간
2021년부터 온·오프 대화 정리
가벼운 수다부터 희망의 하모니까지
음악·수학 공통성 바탕 논쟁적 주제 확장
클래식 '대중화' 놓고 이견 흥미
26일 평창서 커피타임 행사도
▲ 양성원 첼리스트 김민형 수학자
음악이 수학으로 이해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철저한 대위법과 화성으로 엮어내는 멜로디가 감정적 깊이를 더한다. 그래서인지 많은 음악가에게 바흐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난제이자 새로운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는 이정표로 통한다.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인 양성원 첼리스트와 세계적 수학자 김민형 영국 에든버러대 국제수리과학연구소장의 대담집 '내일 음악이 사라진다면'은 지적인 첼리스트와 클래식을 사랑하는 수학자의 대위법적 협연과 같다.

2021년부터 본격적인 대화를 나눈 이들은 온라인과 현장을 오가며 원고지 1000매 이상의 녹취록을 남겼다.

각자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뤄낸 두 거장은 가벼운 수다로 시작해 팽팽한 설전으로 심각한 미궁에 빠지다가, 마침내 희망의 하모니를 찾는다. 클래식 음악의 미래를 고민하는 진지한 담론과 더불어 오는 24일 개막을 앞둔 평창대관령음악제에 대한 양성원 첼리스트의 생각도 엿볼 수 있다.

대담집은 '음악은 우리를 도덕적으로 변화시키는가', '라이브 음악과 레코딩 음악은 다를까', '팔리는 클래식이란 무엇일까', '나쁜 생각을 퍼뜨리는 음악이 있을까'와 같은 논쟁적 주제들로 채워져 있다. 대화가 불협화음으로 이어지는 분위기도 느껴지지만 한 명의 독자, 또는 관객으로서 대화에 뛰어들고 싶어지기도 한다.

어려움에 맞닥뜨릴 때면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아주 천천히 연주하며 스스로를 치유한다는 양성원 감독의 스타일을 미술로 분류한다면 화가보다는 미술사학자에 가깝겠다. 작곡가의 목소리를 풀어서 대신 전해주기 때문이다. 그는 곡이나 작곡가에 대한 배경지식을 중요하게 여기고, 본인을 연주에서 드러내지 않는 방식을 택한다. 스스로를 '엘리트주의자'로 언급하지만 청중에게는 최고의 연주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다.
▲ 내일 음악이 사라진다면양성원·김민형
"클래식의 매력은 눈물과 미소를 동시에 유발한다.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막엔 미소를 짓게 한다"는 부분은 격한 공감을 일으킨다.

김민형은 어쩌면 성역으로 여겨지는 클래식 음악계에 과감한 질문을 던진다. 음악을 이해하고 싶다는 갈망은 음악가를 계속해서 건드린다.

"음악이 우리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당연한 주장은 아니"라거나 "밥벌이가 어려운 뛰어난 음악가들이 많다는 건 대체로 음악계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는 등의 말들이다.

젊은 시절 독일 가곡 200여 곡을 외워 부르던 클래식 마니아이기도 한 김 수학자는 낭만주의 이면에 숨은 파괴적 속성을 지적한다.

음악과 수학이 모두 구조적 복잡성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어서인지 두 사람의 대화는 '대중성 확보'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클래식 음악은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도 진심으로 즐길 수 있지만 수학은 이해가 없으면 즐기기 어렵다는 것이 수학자의 입장이다.

하지만 양성원 첼리스트는 클래식 음악 대중화에 선뜻 동의하지 않는다. "클래식 음악을 대중화하다가 고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거나 음악의 격을 낮출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 우리가 수준 높은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데에는 인기보다는 곡 자체에 더 몰두했던 베토벤과 같은 작곡가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설명한다.

애초부터 복잡한 기호투성이인 수학과 음악, 두 분야를 완전히 이해하는 일은 영원한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는 세상과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같은 이야기에 대한 방법론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두 사람은 오는 26일 오전 11시 평창 알펜시아 컨벤션센터 루지홀에서 평창대관령음악제의 부대행사 '아티스트와의 커피타임'을 통해 다시 한 번 만나 대화를 나눈다. 김민형 교수는 27∼28일 같은 장소에서 '음악은 물질인가, 정보인가?'를 주제로 특강도 갖는다.

수학자와 음악자, 누구의 이야기가 옳다고 단정짓기보다는 자신만의 감상법으로 읽어나가며 방향과 깊이를 찾아보기를 권한다.

'다카포(●)'라는 음악 기호가 우리에게 희망을 주지 않는가. 처음부터 다시! 김진형 [email protected]

#음악 #수학자 #클래식 #첼리스트 #김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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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무용 , 출판, 종교, 문화재 등을 맡고 있습니다. 느릿해도 정직하게 읽고 들으며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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