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 비만약’ 위고비 열풍, 다음 과제는 ‘요요’ 없는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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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인사이드] 세계 비만 인구 10억 명 時代

● 2023년 8조 원 → 2030년 136조 원… 위고비가 키운 비만치료제 시장
● 68주간 체중 14.9% 감량, ‘기적의 비만약’ 삭센다 효과 뛰어넘어
● 대항마 일라이릴리 ‘젭바운드’ 맹추격, 경쟁사도 속속 참전
● ‘건강한 감량’ 각광, 요요현상·근육량 감소 극복이 관건


세계 비만 인구가 늘어나며 비만 치료제 시장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22년 전 세계 비만 인구는 10억 명을 넘었다. [Gettyimage]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킴 카사디안 등 해외 셀럽들의 다이어트약으로 유명세를 탄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폭증하는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해 해외에선 ‘없어서 못 파는 약’이 됐다. 국내에서도 물량 부족 등 이유로 출시가 미뤄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 비만 인구는 2022년 10억 명을 훌쩍 넘어섰다. 이는 1990년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이런 상황에서 위고비의 등장은 비만치료제 시장의 성장세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글로벌 비만 치료제 시장이 지난해 60억 달러(약 8조 원)에서 2030년 1000억 달러(약 136조 원)으로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공급 부족, 없어서 못 파는 위고비
위고비는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가 개발한 GLP(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1 계열 약물이다. GLP-1 제제는 체내에서 인슐린 분비를 유도해 혈당 수치를 조절하는 GLP-1 호르몬의 유사체로 작용한다. 췌장의 베타 세포에서 생성되는 이 호르몬은 체내 인슐린 합성 및 분비, 혈당량 감소, 위장관 운동 조절, 식욕 억제 등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보 노디스크의 비만치료제 제품 ‘위고비’. [노보 노디스크]
GLP-1 제제는 주로 당뇨 치료제로 사용되던 기전이지만 노보 노디스크가 위고비에 앞서 개발한 ‘삭센다’(성분명 리라글루티드)가 비만 치료제로 출시되면서 각광받기 시작했다. 삭센다는 당초 ‘빅토자’라는 제품명의 당뇨치료제로 사용돼 왔으나 임상 도중 뛰어난 체중 감량 효과가 확인되면서 용량 변경을 통해 비만치료제로 개발됐다. 삭센다는 임상시험에서 대상자의 체중을 5~10%가량 감소시키며 ‘기적의 비만약’이라는 타이틀을 얻기도 했다.

특히 삭센다는 뛰어난 체중감량 효과를 보였을 뿐만 아니라 기존 비만치료제의 부작용 위험을 줄였다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이전까진 뇌하수체의 특정 부분을 자극해 식욕을 억제하는 항정신성의약품이 주로 처방돼 왔다.

국내에서 식욕억제제로 허가받은 성분으로는 펜터민, 펜디메트라진, 디에틸프로피온, 마진돌, 로카세린, 펜터민·토피라메이트 복합제 등이 있다. 삭센다는 기존 식욕억제제처럼 뇌에 명령을 내려 식욕을 억제하는데도 향정신성의약품과 같은 의존 문제 위험이 크지 않아 비만 치료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끌었다.

이후 나온 약이 위고비다. 위고비 또한 2017년 ‘오젬픽’이란 이름의 제2형 당뇨 치료제로 먼저 허가받았고, 비만치료제로는 2021년 6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위고비는 매일 맞아야 하는 삭센다와 달리 1회만 투여해도 돼 환자들의 투약 편의성을 높였다. 초기에는 주 1회 0.25㎎을 투약하다가 서서히 증량하고, 이후 16주 동안 주 1회 2.4㎎ 용량을 꾸준히 맞으며 유지하면 된다. 체질량지수(BMI)가 30 이상이거나 당뇨병 외 한 가지 이상의 체중 관련 동반 질환이 있는, BMI 27 이상 과체중 성인 1961명을 대상으로 68주간 진행한 임상에서 평균 14.9%의 체중감량 효과를 확인했다.

위고비는 할리우드 스타 킴 카다시안이 3주 만에 7㎏ 감량에 성공하고, 일론 머스크 CEO도 체중감량에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품귀 현상을 빚었다. 위고비는 현재 미국과 덴마크·영국·독일·노르웨이 등에서 처방되고 있고, 아시아에서는 올해 초 일본에서 처음으로 출시됐다. 국내에선 지난해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사용 시기에 따라 용량 0.25~2.4㎎으로 구분한 제품 5종의 품목허가를 받았지만 아직 출시 전이다.

공급 부족으로 일부 국가에서만 처방되고 있지만 매출 상승세가 가파르다. 노보 노디스크에 따르면 지난해 위고비의 매출 규모는 313억4300만 크로네(약 4조 원)에 달한다. 올해 1분기에는 93억7700만 크로네(약 1조2097억 원)를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7%나 성장했다.

공급 부족 문제가 해결되면 매출은 더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노보 노디스크의 지주사인 노보홀딩스는 생산량 확대를 위해 2월 미국의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 카탈런트를 165억 달러(약 22조 원)에 인수했다. 회사는 카탈런트가 보유한 미국 인디애나주, 이탈리아, 벨기에 공장 3곳을 활용해 당뇨·비만치료제 공급 확장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일라이 릴리·바이킹 테라뷰틱스·로슈 참전, 경쟁 본격화
위고비가 비만치료제 시장을 빠르게 선점해 나가자 글로벌 제약사들도 GLP-1 계열 비만약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위고비의 대표적 경쟁 약물은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의 ‘젭바운드’(성분명 티르제파타이드)가 있다. 일라이 릴리는 2022년 2형 당뇨병 치료제 ‘마운자로’를 내놓은 뒤 같은 성분으로 치료 목적을 달리한 젭바운드를 개발해 지난해 11월 판매 허가를 받았다.

젭바운드는 위고비와 주 1회로 투약 주기는 같지만 체중감량 효과가 더 뛰어나다. 젭바운드는 비만이나 과체중인 성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 3상 시험에서 88주차에 평균 26%의 체중감량 효과를 확인했다.

일라이 릴리의 비만치료제 제품 ‘젭바운드’. [일라이릴리]
젭바운드는 GLP-1과 더불어 또 다른 호르몬인 ‘GIP’(포도당 의존성 인슐린 분비 폴리펩타이드)에 이중 작용해 위고비보다 뛰어난 효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GIP는 GLP-1 수용체 작용제의 약리학적 이점을 향상하는 한편 메스꺼움과 구토, 설사 등 일반적인 위장관 부작용을 완화할 수 있다.

이러한 효과를 바탕으로 젭바운드는 비만치료제 시장에서 위고비를 맹추격하고 있다. 젭바운드는 3월 초 신규 처방 건수 7만7590건을 기록하며 위고비의 그것인 7만1000건을 앞질렀다. 총 처방 건수로 보면 위고비가 여전히 많지만 젭바운드가 지난해 12월 미국에 출시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빠른 속도로 위고비를 추격한 것이다. 올해 1분기 젭바운드의 미국 매출은 5억1740만 달러(약 7000억 원)로 집계됐다.

젭바운드도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공급난을 겪고 있다. 이에 일라이 릴리는 마운자로와 젭바운드의 원료의약품(API)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지난해부터 인디애나주 레바논 인근에 건설하고 있는 대규모 제조 단지에 53억 달러(약 7조 원)를 추가로 추가할 계획이다. 일라이 릴리의 새로운 자금 조달로 해당 부지에 대한 총 투자액은 90억 달러(약 12조 원)로 기존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일라이 릴리는 2026년부터 이 시설에서 의약품 생산을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데이비드 릭스 CEO는 성명을 통해 “이번 결정은 우리 회사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투자이며, 미국 역사상 합성의약품 API 제조 관련 단일 투자 중 가장 큰 규모다”라며 “600에이커 규모의 제조시설에서는 젭바운드, 마운자로를 포함한 신규 의약품을 생산해 각 파이프라인의 성장을 지원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많은 후발 주자가 치료제 개발 경쟁에 참전하고 있다. 미국 바이킹 테라퓨틱스는 GLP-1 계열의 비만치료제 ‘VK2735’를 개발하고 있다. 이 물질도 GLP-1과 GIP 두 가지 호르몬에 작용해서 탁월한 체중감량 효과를 보인다. 최근 진행한 임상2상에서 13주차에 위약군 대비 최대 13.1%의 체중감소 효과를 확인했다.

스위스 로슈가 개발하고 있는 ‘CT-388’은 최근 공개한 임상1상 시험 결과에서 위고비와 젭바운드를 뛰어넘는 체중감량 효과를 보여 주목을 받았다. 임상 결과에 따르면 한 주에 한 번씩 주사를 맞은 환자들은 24주 만에 체중이 평균 18.8%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아스트라제네카는 중국 에코진의 GLP-1 계열 치료제 ‘ECC5004’를 독점 도입했다. 경구용으로 개발되고 있는 해당 물질은 현재 미국에서 임상1상 절차를 밟고 있다. 미국 암젠 또한 비만치료제를 미래 먹거리로 낙점한 상황이다.

체중감량 ‘질’ 제고 관건… “근육 유지·질환 치료 동시에”
GLP-1 계열 비만치료제 개발 트렌드는 ‘양’보다 ‘질’로 변화하고 있다. 대표 약물인 위고비와 젭바운드 투여를 중단할 경우 다시 10% 이상 체중이 늘어나는 ‘요요 현상’이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지금까지 개발된 약물들은 상대적으로 체질량지수(BMI)가 높은 서양인 환자 타깃으로 개발됐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특히 근육량 감소를 동반할 수 있다는 문제도 대두하고 있다. 따라서 마른 비만이나 노인 등 근감소증이 잘 일어나는 환자들에겐 비만약 처방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노보 노디스크 또한 근육 손실 없이 건강하게 체중을 감량하는 방향의 연구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토마스 랜드 노보 노디스크 사업개발부 선임 과학자는 4월 4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노보 노디스크 파트너링 데이 2024’ 심포지엄에서 “비만은 전인적 관리가 필요한 복잡한 질환이다. 노보 노디스크는 더 건강하게 체중감량을 해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며 “근육을 유지하면서 체중을 감량해 주고, 동반 질환도 같이 치료해 줘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이유로 노보 노디스크는 차세대 비만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는 한미약품, 유한양행 등 국내 제약사들과의 협업 및 경쟁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내비치기도 했다.

한미약품이 개발하고 있는 차세대 비만치료제 ‘HM15275’는 젭바운드가 타깃하는 GLP-1, GIP는 물론 GCG(글루카곤) 수용체 작용까지 최적화한 삼중작용제다. GCG는 포만감 조절과 함께 에너지 소비 및 지질 대사 조절에 관여한다. 한미약품 측은 이 세 가지 약리작용을 적절히 활용하면 근 손실을 최소화하면서도 25% 이상 체중감량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비만뿐 아니라 제2형 당뇨병 및 심혈관 질환에 대한 치료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물질은 현재 미국 임상1상 단계에 있다.

한미약품은 한국인 맞춤형 비만치료제도 개발하고 있다. 회사는 올 초 GLP-1 계열 비만치료제 ‘에페글레나타이드’의 국내 3상 임상시험을 개시했다. 목표 임상 종료 시점은 2026년 상반기다. 향후 3년 내 국내 상용화가 목표다. 이 물질은 2015년 글로벌 제약기업 사노피에 기술 이전했으나 2020년 6월 계약 권리가 반환되며 한미약품이 후속 개발하고 있는 물질이다. 회사는 자사 독자 플랫폼 기술 ‘랩스커버리’를 적용해 주 1회 투여하는 주사 제형의 대사질환 치료제로 에페글레나타이드를 개발해 오다가 비만치료제로 적응증 변경에 나섰다.

유한양행이 최대주주로 있는 프로젠은 GLP-1에 더해 장 누수 현상을 예방하고 전신 염증을 완화시키는 GLP-2를 접목한 GLP-1·GLP-2 융합 이중작용제 ‘PG-102’를 개발하고 있다. 현재 임상1상 단계로, 10월 말에서 11월 초 인체 적용 시험 결과보고서(CSR)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PG-102의 비임상 및 임상 1a상 결과에 따르면 이 약물은 기존의 GLP-1 유사체 대비 소화기 부작용이 적고 우수한 반감기를 보여 1주, 2주, 월 1회 투여 제형 개발 가능성이 확인됐다. 또 체중감소의 질적 측면에서 지방조직 선택적 감소 효과가 위고비, 젭바운드 대비 2배 이상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종균 프로젠 대표는 “현재는 단일 타깃 약물이 주를 이루지만 앞으로는 멀티 타깃 약물들이 비만치료제 시장을 점유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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