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노가 자화상이라 일컬은 ‘취야’ 첫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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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16. 오후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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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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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120돌 기념 전시회
이응노가 유럽으로 간 뒤인 1959년에 그린 새떼 그림. 새가 떼를 이뤄 기운차게 날아가는 모습을 윤곽만 잡아 반추상적으로 묘사했다. 노형석 기자

지독하게 그렸다. 밥 먹고 잠잘 때 말고는. 항상 눈으로 주위의 풍경과 사물, 사람을 관찰하고 손으론 그렸다. 그릴 수 없으면 찢고 붙여서 본 것들을 다시 빚어냈다.

근현대 한국화단에서 최고 거장으로 꼽히는 대화가 고암 이응노(1904~1989)에게 대상을 보고 그리는 사생은 본능, 혹은 천직과도 같았다. 어떤 미술인들은 고암을 두고 나무꾼이 나무 베듯, 어부가 고기 잡듯 그림을 그렸다고도 말한다.

그는 10대 시절인 1922~1923년 당대 글씨와 그림 명인인 해강 김규진한테 문인화와 대나무 그림을 배우면서 대상을 그릴 때 형상이 아니라 기운을 담는 운필의 뜻, 곧 사의(寫意)를 익혔지만, 천성적인 사생 기질로 용해시켜 버렸다. 그는 1920년대 후반 전주에서 업체를 만들어 간판 그리는 일을 했고, 1935년 일본 도쿄로 일가족과 떠나 유학을 결행했을 때도 신문보급소를 운영하면서 눈에 담긴 대도시 도쿄의 일상공간을 쉬지 않고 드로잉했다.

이응노가 생전 자신의 자화상 같은 그림이라고 했던 1950년대의 작품인 ‘취야’연작의 일부.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2점 가운데 하나다. 서민들이 술상에 둘러앉아 왁자하게 술판을 벌이는 장면을 생동감 있게 담아냈다.

올해 고암의 탄생 120주년을 맞아 지난달부터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에서 열리고 있는 기념전 1부 ‘고암, 시대를 보다: 사생(寫生)에서 추상(抽象)까지’(28일까지)는 현장 사생에 투철했던 현실주의 화가 고암의 진면목을 여실히 보여주는 감상의 성찬이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공간, 한국전쟁 시기의 풍경, 풍속, 인물 관련 그림들과 1958년 프랑스로 건너간 뒤 종이 콜라주와 문자 추상 같은 특유의 추상회화들이 나왔다. 2000년대 초반 한 대학의 인문학부 교수한테서 뜻밖의 구매 제안을 받고 수년에 걸쳐 인물과 풍경 드로잉, 채색화 등 500여점을 사들인 이호재 가나아트 회장의 고암 컬렉션 중 일부와 개인 소장가한테서 대여한 작품들을 통해 평생 지속된 고암 그림 세계의 변모상을 소개한다.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의 드로잉과 채색화 등 110여점의 출품작들이 나왔는데, 무엇보다 일반관객에게 매혹으로 다가오는 건 1층 공간의 다채로운 인물군상과 풍속, 풍경의 요지경 같은 드로잉 모음들이다.

일본 화가 오노지로가 1942년 그린 이응노 화가의 초상 드로잉. 노형석 기자

관찰하고 그리는 것을 숨 쉬듯이 했으니 여느 한국 화가는 엄두도 못낼 일상의 생생한 생활과 풍정이 이미 30년대 청년작가 시절부터 드로잉 화면들에 빼곡히 꿈틀거리듯 생동감있게 들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굴비를 여러마리 꿴 두름을 배경으로 열심히 흥정하는 남자, 돼지머리 올린 주점에서 흥겹게 떠드는 각양각색 얼굴과 체형의 사람들, 눈을 지그시 감으면서 감정의 울렁거림을 다독이는 노파, 서촌 사직단 어귀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노년의 두루마기 남자, 심지어 육감적인 자세로 서 있는 여성 누드모델의 뒤태도 보인다.

풍경으로 보면, 유학 시절의 일본 도쿄거리, 일제 말기와 해방공간의 서울 도심 인사동 천도교회관 주변이 등장한다. 특히 인상파 화풍의 점묘법으로 묘사된 북악산 배경의 명동성당과 해방공간 그가 살던 남산 집에서 내려봤을 필동과 그 북쪽 서울 북촌 도심 풍경 등이 주목된다.

생생한 스냅 필법으로 묘사된 다양한 남녀노소의 얼굴들과 1942년 일본 동료화가 오노 지로가 그려준 그의 초상 등도 놓칠 수 없다. 2층에선 후기 문자추상 군상도 등의 예술적 뿌리가 된 난초 등의 문인화, 죽 그림, 난초, 동물 군집화 등이 선보이고 있다. 새우, 메기 등의 어류와 기러기, 제비 등이 떼로 헤엄치거나 날아오르는 모습을 윤곽만 잡아 반추상화한 동물 군집화는 약동하는 생명력을 고암 특유의 구두와 필치로 담아낸 것으로 인간 연작을 예고하는 수작들이다.

해방 공간 시절에 그린 것으로 보이는 이응노의 서울 명동성당 일대의 풍경화. 점묘 기법으로 묘사한 것이 돋보인다. 노형석 기자

일제강점기 그린 것으로 보이는 이응노의 누드 그림. 노형석 기자

탄탄한 현장 사생을 바탕으로 사의의 내공을 갖춘 그는 1930년대 일본 유학에 이어 1950년대 유럽으로 건너가 현대미술의 흐름과 직접 접하면서도 주눅들지 않고 문제작을 양산한다. 말년에 종이를 짓이겨 만든 저 유명한 문자 추상과 수많은 사람이 뒤엉킨 인간 연작은 바로 길거리의 사람과 꿈틀거리는 새들과 물고기, 새우 등의 떼를 보고 사생한 작가적 성찰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1부에서는 잡지 등의 종이를 찢어 구기거나 짓이겨 만든 1960년대 종이 오브제 추상회화와 천과 종이 등에 그린 문자 추상을 2층 전시장 안쪽에서 보여준다. 가나아트 쪽은 다음 달 2일 개막하는 2부를 말년 핵심작품인 인간 연작으로만 꾸려 내보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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