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펄에서 나온 대가야 첫 ‘대왕’ 흔적…1500년 미궁 풀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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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08. 오후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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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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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인이 부른 최고지도자 호칭 수수께끼
고령 궁성터에서 ‘대왕’ 새겨진 토기 출토
대가야 지배자에 신라처럼 ‘대왕’ 호칭 추정
‘大王(대왕)’새김 추정 토기조각의 명문 세부 모습과 토기조각의 전체 모습. 토기 조각 하단에 ‘大’ 자와 그 아래에 일부 자형이 떨어져 나가 ‘王’자 또는 ‘干(간)’자로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불완전한 글자 하나를 잇따라 돋을새김해 놓았다. 대동문화재연구원 제공

대가야는 1500여년 전 영남 서부와 호남 동부에 걸쳐 번영하며 신라와 경쟁했던 강소국가였다. 이 대가야 사람들이 최고 우두머리를 당대 신라처럼 ‘대왕’으로 불렀음을 추정할 수 있는 유물이 세상에 나왔다.

지난달 27일 발굴 조사가 끝난 고령 대가야읍 연조리 555-1번지 ‘대가야 추정 궁성터’ Ⅰ-1구역의 해자(방어용 연못)터 내부 바닥 펄층에서 나온 명문토기 조각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달 21일 발굴 기관인 대동문화재연구원이 궁성터와 해자 흔적에 대한 현장 공개회를 연 직후 출토된 6세기 초반께의 대가야계 토기로, 아직 공개되지 않은 유물이다.

이 토기 조각을 살펴보면, 아랫부분에서 명확한 ‘大’(대) 자와, 일부 자형이 떨어져 나가 ‘王’(왕)자 또는 ‘干’(간)자로 각각 추정할 수 있는 불완전한 모양새의 글자 하나를 수직 구도로 잇따라 돋을새김(양각)한 모양이 확인된다.

‘大’자는 글자의 전모가 확실히 드러나고, 그 아래 글자는 윗부분의 획만 남아있는데, ‘王’이 분명하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 등 고대 금석문을 연구하는 일부 역사학계 전문가들이 사전 감식한 결과 ‘王’자가 거의 확실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내 대가야 궁성 추정 유적의 해자(방어용 연못) 바닥에서 발견된 ‘大王(대왕)’새김 추정 토기 조각. 아랫부분에 ‘大’ 자와, 일부 자형이 떨어져 나가 ‘王’자 또는 ‘干(간)’자로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불완전한 모양새의 글자 하나를 잇따라 수직구도로 돋을새김한 모습이 보인다. 대동문화재연구원 제공

‘대왕’으로 판독할 경우 출토지가 분명한 대가야 유물에서 ‘대왕’이란 호칭명이 확인된 최초의 사례가 된다. 대가야 최고 수장을 ‘대왕’으로 호칭했다는 실물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지배세력의 내부 위계 구조를 파악하는 구체적인 단서를 찾았다는 의미가 크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의 국내 역사서에는 고구려나 백제, 신라의 수장을 ‘왕’이라 불렀으며 신라의 경우 6세기 초반 불교를 공인한 법흥왕 때 ‘대왕’이란 칭호를 썼다는 기록이 전하지만, 가야 사람들이 자신들의 우두머리를 어떻게 호칭했는지에 대한 사적은 없다.

다만, 한반도 관련 사적의 왜곡이 심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7~8세기 고대 일본의 역사서인 ‘일본서기’에 경남 함안군 일대에 있던 안라국(아라가야)와 가라(대가야)에서 왕이란 칭호를 썼다는 내용이 남아있다. 이런 맥락에서 대가야 수장이 ‘대왕’이란 칭호를 썼다는 것은 가야제국의 다른 가야 세력들 사이에서 우월한 지위를 과시하고 신라와 백제와는 동등한 격의 나라임을 드러내려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왕’ 추정 글자 새김 토기가 출토된 대가야궁성추정유적의 토성벽 아래 해자 모습. 바닥면의 거뭇한 펄층이 보이는데, 여기서 명문 토기가 나왔다. 대동문화재연구원 제공

출토 지점이 궁성터로 추정하는 유적의 아래쪽 해자 바닥면이란 점도 중요하다. 토기 자체가 학계가 실체를 추적해온 고령의 대가야 궁성터임을 입증하는 또 다른 고고학적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대가야계 유물에서 ‘대왕’ 명문이 나온 선례는 1990년대 이래 충남대 박물관에서 소장해온, ‘대왕’(大王) 글자가 오목새김된 대가야계 대형토기인 유개장경호(有蓋長頸壺:뚜껑이 딸린 목 긴 항아리)가 있다. 그러나 출처를 알 수 없는 도굴품 성격의 구입품이어서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출토된 대가야 토기들 가운데 다른 명문이 새겨진 사례도 드물지만, 일부 보고된 사례가 전한다. 경남 합천 저포리에서 출토된 ‘하부사리리’(下部思利利) 기명 토기가 대표적으로, 대가야가 고신라처럼 지방행정단위로 부(部) 체제를 갖췄음을 보여주는 유물로 꼽힌다.

충남대가 소장하고 있는 대왕 글자 새겨진 뚜껑딸림목긴항아리(유개장경호)와 이 항아리의 머리와 몸체 허리 부분에 각각 오목새김된 ‘大王(대왕)’글자. 국립김해박물관 제공

김세기 대구한의대 명예교수(고고학)는 “대가야는 다른 가야 소국들과 달리 5세기 말 중국 남조 남제에 사신을 보내 수장이 공식 작위를 받았고 그 뒤 신라처럼 고대 국가급으로 성장하게 된다”면서 “대왕 명문 토기의 발견은 고대국가 단계에 이른 대가야의 국가 체제의 실체를 보여주는 중요한 성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동문화재연구원은 9일 오후 2시 대구시 두류동 연구원 건물에서 고대사, 고고학 전공자들을 초청해 명문 토기를 공개하고 의견을 듣는 설명회를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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