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체코 비밀특사 보낸 尹…친서에 ‘원전 대박’ 비밀무기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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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18. 오후 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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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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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75주년 정상회의가 개최된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체코 정상회담에서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김현동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주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동안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원자력발전소 건설 수주를 위한 윤 대통령의 친서를 품고 체코에 비밀 특사로 다녀온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윤 대통령은 같은 시기 나토 정상회의에서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을 만나 체코 원전 건설에 한국 기업의 참여를 요청하는 세일즈 외교를 펼쳤다.

지난 17일(현지시간) 체코 정부가 한국수력원자력을 24조원 규모의 신규 원전 건설 사업(두코바니 5·6호기)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기까지 한국 정부는 체코를 상대로 전방위 설득 작업을 벌였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18일 “경쟁자인 프랑스에게 알려져서는 안 되는 상황에서, 안 장관이 비밀리에 체코를 찾아 현지 정부 관계자를 두루 접촉하며 한국 원전의 우수성을 알렸다”고 말했다. 한국이 대규모 원전 사업 수주에 다가간 건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주 이후 15년 만이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8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체코 신규원전 건설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관련 브리핑을 마치고 밝은 표정으로 퇴장하고 있다. 뉴스1

안 장관도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지난 4월 사실상 (체코 원전) 4기 입찰이 (한국과 프랑스의) 2파전으로 굳어진 이후 제가 체코를 3번 다녀왔다”며 “대통령께서 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체코 대통령과 협의하는 와중에 저는 친서를 가지고 프라하에 가서 체코와 우리나라 산업 전체 차원에서 생태계를 같이 구축하는 안을 갖고 협의했다”고 특사 파견의 배경을 설명했다.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안 장관이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에게 전달한 윤 대통령의 친서에는 이번 원전 수주의 결정적 이유로 꼽히는 한국 정부의 ‘산업 패키지 지원’ 전략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신규 원전 건설뿐 아니라 노후화된 체코의 제조업 분야를 한국이 지원해 반도체와 전기차 등 신산업 중심 전환에 기여하고, 한국 기업과의 인공지능(AI) 연구개발(R&D) 협력 방안까지 담은 내용이었다. 체코 정부가 이런 패키지 지원에 높은 평가를 했다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면서 제조업 능력이 살아있는 한국과의 협력이 체코 정부에 매력적으로 다가간 것”이라고 말했다. 안 장관도 브리핑에서 “체코는 제조업 기반의 개방형 경제를 끌고 가고 있고, 우리나라는 중유럽 국가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며 “체코의 에너지 환경이 바뀌면 아마 우리 산업계에서도 투자 고려 사항이 많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월 윤석열 대통령과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이 16일 오후(현지시간) UAE 아부다비 알다프라 바라카 원자력 발전소에서 열린 3호기 가동 기념식에 참석해 손뼉 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UAE 바라카 원전 건설에서 한국 기업과 정부가 보여준 공사 기간 및 비용 준수 능력도 체코 정부가 한국을 택한 주요 이유 중 하나였다.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국내 원전 생태계 복원에 적극 지원을 해왔던 점도 긍정 요소였다. 윤 대통령도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을 만나 “바라카 원전 사업을 보고 판단해 달라”는 당부를 전했다. 실제 체코 정부는 UAE 바라카 원전에 전문가를 파견해 한국 기업의 건설 능력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고 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체코 정부는 처음 협상 때부터 원전 건설의 비용과 공기 준수를 강조했고, 윤 대통령도 원전 수주 과정에서 기간과 예산을 지키겠다는 온 타임, 위딘 버짓(On time, within budget)을 강조했다”며 “UAE 바라카 원전이 이번에도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고 전했다.

낭보가 전해지기까지 대통령실과 정부는 마음을 놓지 못했다. 수주 경쟁자인 프랑스가 체코와 같은 유럽연합(EU) 회원국이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프랑스 홈그라운드에서 혈투를 벌인 셈이다. 한수원의 경쟁사였던 프랑스 EDF는 유럽 내에서 원전을 운용한 경험과 양국이 유럽연합 회원국임을 앞세우는 전략을 취했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체코 신규 원자력발전소 수주를 위한 우선협상자 선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체코 정부는 이날 신규 원전 건설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한수원을 선정한다고 발표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 저녁 정진석 비서실장과 함께 관저에 머물며 체코 정부의 최종 발표를 보고받은 뒤 “됐어!”라며 기쁨에 책상을 내리쳤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윤 대통령은 곧바로 “‘팀코리아’가 되어 함께 뛰어주신 우리 기업인과 원전 분야 종사자, 정부 관계자, 한마음으로 응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이번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으로 세계 최고의 대한민국 원전 사업 경쟁력이 세계 시장에서 다시 한번 인정받게 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성태윤 정책실장도 같은 날 저녁 긴급 브리핑을 통해 “바라카 원전 수주 이후 15년 만의 쾌거이며 상업용 원자로를 최초로 건설한 원전 본산 유럽에 우리 원전 수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며 “체코 역사상 최대 규모 투자 프로젝트에서 대한민국의 손을 들어준 체코 정부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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