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에 의한 투표’는 완전한 이동 가능성이라는 비현실적인 가정을 기반에 두고 있지만 만약 거주지 이동이 아닌 자본의 이동, 계좌의 이동이라고 하면 어떨까. 계좌를 통해 자신의 선호 지역과 국가를 드러낼 수 있다면 말이다.
올해 들어 개인투자자들은 국내 증시에서 11조2720억원을 순매도했다. 반면 미국 주식 순매수액은 80억달러(약 11조원) 가까이 된다. 국내에서 뺀 돈이 거의 미국 증시로 재투자된 것이다. 해외 주식 투자에 대한 장벽이 거의 없어지다시피 하니 아예 국내 주식을 팔고 미국 주식을 사는 방식으로 한국 증시에 반대표를 던지고 미국 증시에 대한 신뢰와 선호를 드러낸 것이다.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을 불신할 이유는 많다. 이 불신은 주식시장에 제한되지 않는다. 한국의 경제와 법제도에 대한 신뢰까지 연관돼 있다. 개인투자자들이 대주주의 1표와 소액주주의 1표가 다르게 취급받는다고 생각한다면 한국의 경제구조에 높은 점수를 준다고 보기 어렵다. 투자자가 저성장으로 인한 기업 실적을 걱정한다면 한국 경제의 전망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주주들이 내부자와 작전세력에 의해 주가가 요동치는 것을 경험했다면 경제 범죄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을 믿지 않을 것이다. 결국 한국 주식에 투자할 때 생기는 불만은 계좌 이동이나 계좌 이민으로 이어진다. 올해만 그 규모가 11조원에 달한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한국 증시 엑소더스가 있다면 이는 한국의 경제구조에 대한 불신을 나타내는 경고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증시 문제를 ‘코리아 디스카운트’ 차원에서만 볼 게 아니라 우리 경제구조의 개혁 계기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