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만이 다가 아니다”…의료개혁 성공하려면 ‘이것’부터 해결해야 [뉴스 쉽게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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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물리치료 등 실손의료보험 비급여 항목에 대한 과잉 진료 논란은 꾸준히 벌어지고 있다. 서울의 한 산부인과에 ‘여성 물리치료사가 진행하는 산후 도수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안내 문구가 걸려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상관 없다. <이충우 기자>
요즘 ‘의료 위기’라는 말을 뉴스에서 자주 들어보신 분이 많을 거예요. 의과대학 정원 늘리기를 두고 벌어진 갈등은 이런 표현을 익숙하게 만들었죠. 대체로 의료 위기라는 말은 꼭 필요한 분야나 지역에 의료 자원이 부족하다는 뜻으로 사용돼요.

전문가들은 단순히 의사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다가올 의료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고 분석해요.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되는 게 바로 ‘실손의료보험’의 부작용이에요. 오늘은 국내 의료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받는 실손의료보험의 문제를 정리해 봤어요.

실손의료보험이 뭐야?
보통 실손보험, 실비보험 등으로 불리는 실손의료보험은 ‘실제 의료비로 발생한 손해’를 보상하는 보험상품이에요. 이 보험에 미리 가입해 두면, 사고로 다치거나 병에 걸렸을 때 병원비 중 일부를 보험회사에 청구할 수 있죠. 보험 회사마다 조금씩 기준은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대부분 비슷한 상품을 판매해요.

실손보험은 정부가 운영하는 국민건강보험과 함께 사실상 우리나라 의료 체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해요. 건강보험처럼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보험이 아닌데도, 국내 실손보험 가입자 수는 3997만 명에 달하거든요. 국민 5명 중 4명꼴로 가입한 거죠.

우리나라 진료비 체계는 ‘급여’와 ‘비급여’ 항목으로 나뉘는데요. 건강보험이 적용돼 저렴하게 진료받을 수 있는 것들이 급여 항목이고, 건강보험 적용이 안 돼서 병원비가 비싼 항목들은 비급여 항목이라고 보면 돼요. 꼭 필요한 치료인데도 큰 비용이 드는 비급여 치료를 받을 땐 실손보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게 일반적이에요.

근데 실손보험이 왜 문제야?
문제는 실손의료보험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거예요. 실손보험은 2003년부터 판매를 시작했는데, 이때 판매한 ‘1세대 실손보험’은 병원비 100%를 모두 보장했어요. 이후 2009년 10월부터 2017년 2월까지 판매된 ‘2세대’는 병원비의 80~90%를 보장했죠. 작년 말 기준 전체 실손보험 가입자 중 1세대(19.1%)와 2세대(45.3%) 비중은 3분의 2에 달해요. 이후 3~4세대에는 병원비의 70% 정도만 보장하는 등 계약이 가입자에게 조금씩 더 불리하게 바뀌었어요.

지출한 병원비 중 대부분을 돌려받을 수 있는 실손보험의 대중화는 건강보험으로 보장받을 수 없는 의료 안전망을 국민에게 제공한다는 점에서 분명히 긍정적인 역할을 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작용도 발생시켰어요. 대체로 이런 것들이에요.

◆‘의료 쇼핑’하는 환자 : 병원비를 전액 또는 대부분 돌려받는 초기 가입자 중 일부를 중심으로 과도하게 많은 진료를 받는 현상이 일어났어요. 1년에 1000회 이상 진료를 받는 극단적인 사례까지 존재해요.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사례를 보면, 60대 A씨는 2021년에 1425회 병원을 찾아 3779회에 달하는 치료를 받았어요. 1년 중 7일을 뺀 358일에 걸쳐 병원에 갔고, 하루에 8곳의 병원에 간 적도 있었어요.

◆‘과잉 진료’하는 의사 : 의사들은 실손보험 가입으로 병원비 부담을 적게 느끼는 환자가 늘어나자, 이들에게 꼭 필요하지 않은 치료들을 권하기 시작했어요. 어차피 보험 회사가 낼 돈이니까 이것저것 비싼 치료를 끼워 넣은 거죠. 아예 진료 전에 ‘실손보험 있으시죠?’라고 묻는 병원도 많아졌어요. “실손보험은 눈먼 돈이라 최대치로 뽑아먹지 못하면 바보가 되는 분위기”라고 고백하는 의사까지 있을 정도예요.

대표적으로 꼽히는 게 도수치료 등 각종 근골격계 물리치료예요. 요즘에는 10~20회 도수치료나 물리치료를 선불로 결제하도록 유도하는 병원들까지 생겨났대요. ‘비타민 주사’를 포함한 각종 주사 치료도 과잉 진료에 자주 동원되는 항목이에요. 실제로 최근 몇 년간 비급여 항목에 해당하는 주사 처방은 몇 배씩이나 증가했다고 해요.

치료 과정에서 과도한 처치를 끼워 넣는 보험료 허위‧과다 청구 사례로는 한때 ‘백내장 수술’이 많이 꼽히기도 했어요. 최근에는 ‘무릎 줄기세포 주사’가 사람들의 비판을 많이 받고 있어요. 과잉 진료 트렌드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바뀌고 있어요.

실손보험 악용하면 뭐가 문젠데?
이렇게 과도한 ‘의료 쇼핑’에 나서는 환자와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과잉 진료를 하는 병원들은 점점 늘어났어요. 앞서 언급했듯 실손보험의 계약 조건이 점점 가입자에게 불리하게 바뀐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죠. 예를 들어 3~4세대 실손보험에는 도수치료, 비급여 주사 등 과도한 이용 사례가 많은 항목에 몇몇 제한을 추가했어요.

이렇게 실손보험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문제는 사회 전반으로 퍼졌어요. 우선 실손보험을 활용해 돈을 벌기 쉬운 분야로 의사들이 몰리기 시작했어요. 정형외과‧재활의학과‧안과 등이 대표적인 분야였어요. 이런 과의 전문의들은 미용 의료 시장의 성장으로 인기가 더욱 높아진 성형외과나 피부과와 함께 큰돈을 버는 진료 과목으로 인식됐죠. 수입이 다른 과 의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해요. 당연히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등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에는 의사가 부족하게 됐어요.

만약 의대 정원 확대로 향후 의사가 늘어난다고 해도,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필요한 곳에 의사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을 수 있어요. 이 상태에선 “아무리 의사를 늘려 봐야 결국에는 돈이 되는 쪽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진단하는 의사들이 적지 않대요.

실손보험 악용은 선량한 가입자들에게도 피해를 줬어요. 실손보험료로 병원비를 감당하는 보험 회사들은 손해를 줄이기 위해 좋은 조건의 보험들을 없애고, 기존 가입자들의 보험료를 점점 올렸어요. 보험에 가입해 두고 꼭 필요할 때만 사용하던 가입자들은 더 많은 보험료를 내게 됐죠. 실손보험 가입자들은 5년 후 평균 2배 이상의 보험료를 감당해야 할 거라는 분석도 나와요.

공유지의 비극 부추긴 실손보험
우리나라 실손의료보험의 부작용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은 미국의 생태학자 개릿 하딘이 내놓은 ‘공유지의 비극’ 이론을 자주 언급해요. 모두에게 개방된 공유 목초지가 있다면 목동들은 자신이 소유한 땅 대신 이 공유지에만 소를 풀어 경쟁적으로 풀을 먹일 것이고, 결국 공유지는 황폐해지고 말 것이라는 이론이에요.

너도나도 욕심을 내다가 결국 모두의 목초지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공유지의 비극, 실손보험은 이 이론과 참 닮은 사례예요. 좋은 혜택을 제공하던 보험은 시간이 지날수록 계약 내용이 안 좋아지고, 한쪽으로 집중된 의료 인력은 필수 의료 위기를 부추기고 있으니까요. 실손보험이라는 공유지에서 과잉 진료로 많은 돈을 번 일부 의사들만이 웃었고, 선량한 가입자들은 아무 죄 없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걸 잃었죠.

정부는 필수‧지역 의료 등을 강화하기 위한 ‘의료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방침이에요. 의사 수를 늘리면서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점을 인식한 거예요. 앞으로 상식을 넘어서는 의료 쇼핑과 돈벌이용 과잉 진료를 막기 위한 정책들이 마련될 것으로 보여요.

고민하는 정부, 어떻게 해결할까?
정부와 연구기관, 보험회사, 보험협회 등은 이달 7일 ‘보험개혁회의’를 출범하고 내년 초까지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해 발표하기로 했어요. 또한 정부는 실손보험의 적용을 축소하거나, 필수적인 치료에 실손보험을 활용한 비급여 항목을 끼워넣기 어렵게 ‘혼합진료(급여 비급여)’를 제한하는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어요.

물론 논의 중인 방안들이 적절한 해결법인지는 아직 알 수 없어요. 의료계가 강하게 반발하는 것도 문제고, 실손보험의 적용을 여기저기 제한하기 시작하면 일반 가입자들이 보는 혜택도 줄어든다는 점도 문제거든요. 공유지의 비극을 거쳐 결국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시작된 실손보험 시장. 문제 해결도 좋지만, 선량한 이들의 이익을 세심하게 고려해 줬으면 좋겠네요.

<뉴미디어팀 디그(d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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