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서 사진, 딥페 사이트 접속 기록 등 확인됐는데
경찰 “딥페이크 처벌법 적용 어렵다” 불기소
이른바 ‘지인능욕방’에서 중학교 동급생의 얼굴과 나체 사진을 합성한 딥페이크 성범죄물을 만든 혐의를 받은 남학생이 본인 소유 휴대폰에 문제의 영상물을 소지한 사실이 확인됐음에도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된 사례가 확인됐다. 딥페이크 성범죄물을 직접 제작했거나 게시했다는 점까지 입증하지 못하면 처벌이 어렵다는 이른바 ‘딥페이크 처벌법’의 맹점이 그대로 증명된 셈이다.
29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A양(17)은 지난해 6월 자신의 얼굴이 들어간 딥페이크 성범죄물을 소지한 동급생 B군(17)을 고소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허위영상물편집·반포)혐의였다.
중3이던 2023년 1월 A양의 고통은 시작됐다. 인스타그램 다이렉트메세지(DM)으로 A양의 얼굴이 합성된 성범죄물이 날아왔다. “너도 흥분해서 자위 중이냐” ”흑인과 성관계하니 좋냐” 등의 성희롱도 함께였다. 심지어 성범죄물을 보며 자위하는 영상을 보낸 사람도 다수였다.
A양은 최초 유포자를 찾기 위해 텔레그램방에 들어갔다. 확인한 건 A양의 주소와 집 비밀번호, 연락처, 학교, 나이 등 구체적 개인정보가 이미 공유됐다는 사실 뿐이었다. 그때마다 성범죄물 유포 게시글을 찾았다며 소식을 알려온 건 B군이었다. 성범죄물을 보내온 66개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차단했지만 DM은 계속됐다. 결국 A양은 인스타그램을 닫았다.
B군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면서 연락은 뜸해졌다. 연락이 다시 온 건 A양이 인스타그램 활동을 재개하며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을 때다. B군은 “네 얼굴이 또 올라왔다”며 A양에게 연락했다. 이 때 A양은 B군이 범인이라고 확신했다고 한다.
A양은 친구들과 함께 B군을 만나 사실을 추궁했다. B군은 A양의 사진을 저장해 텔레그램에 올려 딥페이크 합성을 요청했다는 사실을 자백했다. 그러면서 A양이 자신을 가식적으로 대하는 거 같아 이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다.
A양은 그간 모은 증거를 모두 경찰에 제출했다. 경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B군의 휴대전화에서 피해자의 얼굴이 합성된 딥페이크 사진을 확인했다. 딥페이크 성범죄물을 공유하는 온라인 사이트에 접속한 기록도 확보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같은 증거만으로는 B군이 딥페이크 성범죄물을 제작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수사결과 통지서에 “일명 ‘딥페이크’ 사진이 제작되고 사이트에 게시되는 등 반포된 사실, 자위 영상 등을 전송받고 텔레그램 대화방 내에서 성적인 채팅이 전송된 것은 사실이나, 피의자와 피해자의 진술이 상반되고 피의자로부터 압수한 휴대폰 등에서 피의자의 범죄혐의를 입증할 만한 단서나 증거 등이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다”고 했다.
A양은 어렵게 모은 증거가 소용없었다는 생각에 이의신청할 생각도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최근 딥페이크 사태를 지켜보면서 다시 공론화에 나섰다. A양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할까 한다”면서 “가해자가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 제게는 2차 가해”라고 말했다.
A양 사례는 딥페이크 성범죄물을 직접 제작했거나 유포 목적이 있는 경우 처벌하는 현행법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문제는 텔레그램 특성상 제작자 특정이 사실상 불가능 하다는 점이다. 어떤 목적으로 소지했는지를 증명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를 맡은 법률사무소 진서의 민고은 변호사는 “텔레그램은 행위자를 특정하기 쉽지 않아 유포 사실이 확인되더라도 유포자가 누구인지 증명이 어렵다”며 “행위는 있는데 사람이 없는 상황이 많다”고 했다.
다만 최근 확산하는 초·중·고등학생 딥페이크 성범죄물의 경우 수사기관이 적극적 판단을 한다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착취물은 소지만으로도 처벌 대상이기 때문이다. 민 변호사는 “딥페이크(허위 영상물)는 소지로 처벌이 어렵지만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은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유기 징역이 가능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