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하면 하늘과 사후세계를 떠올리는 이들에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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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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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다시 묻다/크리스토퍼 모스 지음/윤상필 옮김/비아
게티이미지뱅크

‘천국’이란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종교 유무를 떠나 끝없이 펼쳐진 하늘이나 텅 빈 공간, 천사 등 영적 존재를 만나는 사후 세계를 떠올리는 경우가 적잖을 것이다. 아예 ‘이상향’으로 그리는 이들도 꽤 된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003년 ‘땅에 내려온 천국’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천국은 한 사회가 그리는 가장 쾌적한 동네의 모습으로 묘사된다”고 보도했다. 또 “미국인 82%는 천국을 실제로 믿으며 천국을 가기 위해 종교를 갖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고 전했다.

20년도 더 지난 기사지만 여전히 종교를 갖게 된 배경으로 천국을 꼽는 이들이 다수라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묵시(默示) 신학 전문가로 미국 유니언신학교 신학과 윤리학 교수를 지낸 그는 “복음서의 맥락에 맞춰 천국을 이해하는 법”을 소개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이때 저자가 말하는 천국은 ‘하나님 나라’(하늘나라)를 포함하는 의미다.


기독교인, 특히 교회에 오랜 시간 몸담은 이들에게 천국은 낯설지 않은 개념이다. 매주 예배에서 고백하는 주기도문과 신조에 천국을 상징하는 표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하늘’과 ‘하늘들’(heavens)이란 의미로 번역된 단어들도 신·구약 성경에서 675회나 등장한다. 저자는 “성경에서 이토록 자주 언급되는 단어는 찾기 어렵다”며 “최근 주목받는 신학 주제와 비교해봐도 그렇다”고 말한다.

천국은 예수가 당시 대중에게 전한 핵심 메시지 중 하나다. 의외의 사실은 예수가 전한 천국이 현대인의 인식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복음서에서 천국은 각양각색의 문맥에서 인용되지만 지금처럼 물리적 하늘이나 사후 세계로 활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공통점이 있다면 이들 표현은 ‘생명’(삶)을 다룰 때 주로 사용됐다. 여기서 생명은 ‘하늘에서 인류를 향해 오고 있는 생명’을 뜻한다. 기독교에서 ‘장차 도래하는 나라’로 번역되는 헬라어 ‘바실레이아’와 동일한 의미다. 즉 복음으로 본 천국은 인간이 죽어서 가는 장소나 이상향이 아닌 “하늘에서 인간에게 온 무언가”이자 “지금, 그리고 이곳에서 누리는 생명”이다. 이 관점에서 복음은 “천국이 하늘에서 내려와 우리가 발붙인 땅에 가까이 있다는 놀라운 소식”(눅 10:9,11)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모호한 정의다. 저자도 이런 반응을 예상한 듯 “천국에 대해 인간이 공언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하늘에서 들려오는 반향에 대한 지식”이라고 부연한다. “쉽사리 증명하고 확정할 수 있는 지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가 천국을 비유로 설명한 것도 모호성을 더하는 요인 중 하나다. 저자는 영국 철학자 이사야 벌린의 입을 빌려 천국 이해의 난해함을 전한다. “천국은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개념 체계로도 포착할 수 없다.”

이는 신학자에게도 증명하기 힘든 난제였다. 천국 관련 성경 본문은 인간의 내면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로만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근대정신에 알맞게 모호성을 제거해야 한다고 여긴 독일 신학자 아돌프 폰 하르나크의 제안이다. 저자는 이에 단호히 반대한다. 예수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요 18:36)라고 했음에도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내려와 십자가에서 수난을 당했다. 결국 “천국의 목적지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20세기 유명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과 칼 바르트, 위르겐 몰트만 등의 이론을 열거하며 복음서 속 천국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소개한다. 귀중한 견해나 질문은 남는다. “그래서 천국이 뭐가 어떻다는 것인가.” 내세가 아닌 현세에 임하는 천국이 전하는 희망은 “예수가 늘 인간과 함께한다”는 것이다. 추상적 주제를 다루면서도 가시적 희망을 도출해내는 신학자의 노련함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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