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필요한 ‘적정 진료’로 ‘건강한 지역 공동체’ 만드는 것이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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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07. 오후 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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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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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민 조합원 출자금으로 설립된 ‘무지개의원’
의료복지 사회적 협동조합인 서울 마포구 서교동 무지개의원에서 지난달 27일 조영실 사무국장, 전재우 원장, 장원호 이사장(왼쪽부터)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조합원들이 비급여 수가 책정
진료 이력 확인 후 맞춤 처방
성소수자들 치료에도 적극적

거동 어려운 경우 방문 진료
심리 상담·구청 사업 연계도
“조합원들 마지막 함께하고파”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는 ‘환자가 을이 되지 않는’ 특별한 병원이 있다. 지역주민들의 손으로 직접 세운 ‘무지개의원’이다. 무지개의원은 예방접종 주사 등 비급여 진료비부터, 의원이 지향하는 가치까지 주민들이 직접 정한다. 무지개의원이라는 이름도 10세인 동네주민이 “10년, 20년이 지나도 무지개라는 말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고 제안해 투표를 거쳐 정했다.

무지개의원은 1575명 조합원들의 출자금으로 만들어진 ‘마포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의원이다. 2013년 개원 때부터 함께한 전재우 원장, 간호사 2명, 사회복지사 등 이사회 사무국의 운영진이 함께 꾸려가고 있다. 지난달 27일 경향신문이 만난 장원호 이사장과 조영실 사무국장은 무지개의원이 10년째 조합원들의 곁을 지키며 ‘지역주민의 건강한 삶’을 함께 고민해왔다고 소개했다.

이들은 먼저 무지개의원이 지향하는 것이 ‘적정한 의료’라고 말했다. 무지개의원은 조합원들의 의견을 반영해 이사회에서 비급여 진료 항목의 수가를 정하고, 내원한 조합원의 진료 이력 등을 살펴 불필요한 처방·진료 등을 줄이는 식으로 적정 의료를 실현하고 있다.

조 국장은 “몸이 피곤하면 동네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는 게 일상이었는데, 조합원이 된 후엔 수액을 맞고 싶다고 하니 원장님이 ‘수액을 맞는 대신 쉬어야 한다’고 말해줬다”며 “주사 하나를 맞는 일까지도 봐주시는 것 같아서 만족도가 높았다”고 말했다.

‘적정한 의료’에 대한 고민은 현재 한국 의료 지형이 안고 있는 병폐에서 시작됐다. 조 국장은 “병원들은 비영리기관임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이익을 위해 과잉 진료를 하고, 행위별 수가제 때문에 필요 없는 진료를 하는 현실”이라며 “주민의 건강이 더 우선인 병원을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무지개의원을 시작한 것”이라고 밝혔다.

무지개의원은 설립 초기 ‘성소수자 친화 병원’으로 성소수자 내원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기도 했다. 대형병원이 아닌 지역 병원에서 호르몬치료를 받기 어렵던 10여년 전부터 해당 치료를 시행해 트랜스젠더 내원자들이 자주 찾는 병원이 됐다. 성소수자 단체,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 진료 상담 등 사회적 진료도 계속해왔다.

연대는 병원 밖까지 뻗어나갔다. 무지개의원은 3년 전부터 ‘마포동네퀴어위크’라는 이름의 지역 퀴어 축제를 주최하고 있다. 지역단체들이 참여해 부스를 차리고, 망원동의 골목에서 작은 행진을 벌이기도 한다. 장 이사장은 “마포구에는 워낙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조화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무지개의원의 또 다른 목표는 ‘지역에서 건강한 공동체 꾸리기’다. 조 국장은 “건강이라는 것이 병원과 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서로 돌보는 공동체가 우리의 건강을 담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무지개의원은 거동이 불편한 주민들에게는 방문 진료 등을 진행한다. 심리적 상담 등이 더 필요한 경우에는 지역의 상담소로,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면 구청 등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사업에 연계하는 역할까지 담당한다.

최근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연명 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서약하는 ‘사전 연명 의료 결정 의향서’ 사업이다. 조 국장은 “건강한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 좋은 죽음도 미리 논의해봐야 한다는 취지에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이사장은 “무지개의원은 조합원의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기관이 되는 것이 꿈”이라며 “한 사람이라도 조합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문을 닫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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