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영국 노동당 14년 만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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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07. 오후 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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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창민 논설위원

영국 노동당이 돌아왔다. 보수당이 역대 최악의 참패를 기록하면서 영국에 14년 만에 좌파 진보 정권이 들어선 것이다. 영국 BBC 등에 따르면 지난 4일(현지시간) 치러진 영국 조기 총선에서 전체 650석 중 노동당 412석, 보수당 121석, 자유민주당 72석 등을 차지했다. 영국은 총선 결과 발표와 총리 임명이 거의 실시간으로 이뤄진다.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는 버킹엄궁에서 찰스 3세 국왕을 접견한 뒤 곧바로 총리로 취임했다.

영국 노동당의 뿌리는 19세기 중반 참정권 획득을 위한 노동자들의 차티스트운동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00년 처음으로 2석을 얻어 의회에 진출했다. 러시아 혁명 지도자 레닌은 영국 노동당이 사회주의 혁명을 포기했지만 지지의 뜻을 밝혔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므로 연대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자본주의가 득세하면서 지난 100여년간 노동당의 붉은색은 탈색됐다. 1918년 채택한 ‘생산수단 공동 소유’ 당헌을 20세기 후반 ‘제3의 길’을 주창하며 폐기했다. 2010년대 들어 ‘좌클릭’ 행보를 보였지만 2019년 총선 패배 후 중도 실용주의를 지향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영국 총선 결과는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시민들은 무능하고 무책임한 보수당 정권을 응징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물가, 공공지출 축소로 인한 국민보건서비스(NHS) 혼란 등은 시민들의 삶을 벼랑으로 내몰았다. 그런데 노동당의 득표율은 결코 높다고 볼 수 없다. 의석의 3분의 2가량을 얻었지만 노동당 후보를 찍은 유권자는 3명 중 1명에 불과하다. 한국처럼 영국도 소선거구제인 탓에 사표가 무더기로 나왔다. 650석 중 5석에 그쳤지만 극우 포퓰리즘 정당인 영국개혁당이 14.3%의 득표율을 기록한 것은 유럽 전역에서 불고 있는 극우 바람에 영국도 예외가 아님을 보여준다.

당장 도버해협 너머 프랑스에서 극우 정당이 사상 처음으로 의회 제1당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스타머 총리의 첫 일성은 전 정부가 간판으로 내세운 르완다 난민 이송 정책의 폐기라고 한다. 외국인에 대한 혐오와 폭력 등이 난무하는 유럽에서 영국 노동당이 약자를 보듬고 평화를 지키는 사회민주주의의 보루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5일(현지시간) 새로 임명된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관저인 다우닝가 10번지에서 지지자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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