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아픔을 노래하는 ‘공장 의사’···그의 노랫말에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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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07. 오후 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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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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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가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의 한 실내 공연장에서 ‘북아현동 가는 길’을 부르고 있다. 오동욱 기자


“문득 깨보니 작은 새 / 보이지 않고 차가운 / 겨울밤 날갯짓하던 / 아 너의 목소리 들리지 않으니 / 나 노래할 수밖에…”.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의 한 공연장에서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가 ‘북아현동 가는 길’을 불렀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합창단 ‘지보이스’가 부른 북아현동 가는 길은 성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에 시달리다 세상을 등진 동료를 기리며 만들어진 노래다.


김 교수는 “지보이스의 가사를 보면 많은 사람이 나온다. 그중에는 성 정체성에 대한 혐오로 죽은 자기 합창단 동료에 대한 노래도 있다”며 “고 변희수 하사의 죽음도 그렇고, 성 정체성을 이유로 받은 혐오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너무 슬펐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차별받고 소외당하는 이들을 위한 음악회를 열고 있다. ‘노래하는 공장 의사의 작은 음악회’다. 김 교수가 자신의 직업을 일컬은 ‘공장 의사’는 산업 현장의 근로 환경이나 노동자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를 뜻한다.


경향신문이 7일 만난 김 교수는 올해 들어 4번째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우리 사회는 누가 죽어야만 그제야 깨닫는다”며 “이런 차별과 죽음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음악회를 통해 주변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공유하고, 아픔과 고통을 더 널리 알리겠다는 취지의 말이다.


그의 시선은 소외된 이들, 차별당하는 이들을 향해 있다. 지난달 공연에서 김 교수는 성소수자 단체 합창단 ‘지보이스’, 탈시설 중증발달장애인들과 장애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모인 ‘노들노래공장’, 이주노동자 밴드 ‘스탑크랙다운’ 등에서 악보를 받아 편곡을 의뢰했다. 김 교수는 “노랫말을 되새기며 이들의 아픔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음악회를 시작한 것은 종합예술단 ‘봄날’에서 연대 공연을 한 것이 계기가 됐다. 봄날은 세종호텔노동자, 산업재해 유가족, 세월호·이태원 참사 유가족 등을 위해 노래를 불렀던 사회참여합창단이다. 그는 “많게는 한 해에 43회 거리 공연을 하기도 했는데, 노래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위로를 받았다”며 “노래의 힘이 세다고 느꼈다”고 했다.


최근에는 경기 화성에서 일어난 아리셀 화재 참사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김 교수는 “복잡다단한 ‘기형적 하도급 구조’가 만든 모순이 터진 것”이라며 “산업 구조와 고용 형태의 변화에 맞춰 모든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해 작업에 배치되기 전 해당 작업이 노동자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발생 가능한 사고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등을 미리 알 수 있어야 하지만 책임이 불분명한 불법 혹은 편법 파견은 이를 점점 어렵게 만든다는 취지다. 그는 다음 공연으로 아리셀 화재 참사를 당한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특별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김 교수는 노동건강정책포럼 대표·중대재해전문가넷의 공동대표로 2019년엔 석탄화력발전소 비정규직인 고 김용균 사망 사건 특별조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그는 “직업병 피해자를 만나고 공장에 가면서 좀 더 차별없는 사회, 안전한 사회를 바라게 됐고, 음악회에도 그런 바람을 담았다”며 “우리 애들도 살아가야 할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안전하고 건강하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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