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러시아와 갈등 키우는 윤 대통령, 지금은 그럴 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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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09. 오후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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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8일(현지시각) 미국 하와이 태평양국립묘지(펀치볼)를 방문해 헌화한 뒤 6·25전쟁 참전용사들과 인사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하와이를 거쳐 10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가 열리는 워싱턴으로 향한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앞서 러시아를 향해 “남북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중요하고 필요한 존재인지 판단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과 건전한 관계를 원한다’고 해온 러시아를 불필요하게 자극하는 말이다. 세계의 진영 대립이 거세질수록 ‘최전선’에 놓여 있는 한국이 입는 피해는 커지게 된다. 윤 대통령은 갈등을 키우는 대신, 냉철한 정세 판단에 기초한 현실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

윤 대통령은 8일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러-북 간 군사협력은 한반도와 유럽의 평화·안보에 대한 결정적 위협”이라며 “한-러 관계 향배는 오롯이 러시아 태도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미 북한과 동맹 관계를 회복한다는 ‘전략적 결단’을 내린 러시아를 향해 남북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는 ‘현실성 없는’ 요구를 한 셈이다. 윤 대통령 발언이 ‘외교적 상식’과 동떨어져 있다 보니 러시아 반응 역시 곱지 않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현실적으로 우린 이제 평양과 동반자이지만 한국은 반러 제재에 함께하고 있다”며 “윤 대통령 말을 이해하기 힘들다. 우리에게 적대적인 입장을 가진 나라와 어떻게 좋은 관계를 만들겠느냐”고 맞받았다.

북·러가 지난달 19일 옛 냉전에 버금가는 동맹 조약을 체결한 이튿날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은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겠다”고 했던 기존 방침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발언과 윤 대통령 인터뷰 등을 보면, 정부는 ‘한국의 월등한 경제력’과 ‘살상무기 제공 가능성’ 등을 지렛대 삼아 북·러 접근을 견제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냉정히 따져볼 때 이 문제는 이미 한국 혼자서 결정할 수 없는 글로벌 현안이 됐다. 러시아 경제는 서구의 엄혹한 제재 속에도 그런대로 굴러가고 있고,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한다 해서 서구 전체가 2년간 막대한 지원을 쏟아붓고도 어쩌지 못하는 전황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에 견줘 러시아가 북한에 첨단 군사기술을 제공할 때 우리가 보게 되는 피해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러시아를 겨냥한 속 시원한 발언으로 당장 나토 회의에서 서구 정상들의 ‘호의적 평가’를 받을 순 있다. 하지만 11월 미 대선 결과에 따라 우크라이나 정세는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게 된다. 지금은 냉철히 정세를 관망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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