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180억 횡령, 대출서류 35회 위조 아무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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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09. 오후 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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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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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고 막기 위한 내부 통제 없어
서울 중구 회현동에 위치한 우리은행 본점의 모습. 우리은행 제공

대출사기 등으로 180억여원을 횡령한 우리은행 직원 수사 과정에서 은행의 미흡한 관리·감독 등 실태가 확인됐다. 앞서 금융 감독 당국이 금융사고 과정의 내부통제 미흡이 발견될 경우 본사 책임을 묻겠다고 밝힌 바 있어, 향후 조처가 주목된다.

앞서 창원지검 형사1부(부장 황보현희)는 지난해 7월부터 지난 5월까지 10개월여 동안 개인과 기업체 등 고객 17명의 명의로 서류를 위조해 허위 대출을 일으키는 등 방식으로 180억여원을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사기 등)로 ㄱ(34)씨를 지난 5일 재판에 넘겼다. ㄱ씨는 이 기간 동안 무려 35차례에 걸쳐 대출 서류를 위조했으며, 위조된 서류를 본점 담당자에게 보냈던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이 과정에 은행 차원의 적절한 관리 감독이 이뤄지지 않았던 점이다. 9일 수사 결과 자료를 보면, ㄱ씨는 결재권자가 부재할 때 관행적으로 실무 담당자가 시급한 대출 결재를 대신 하는 관행을 이용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또 대출금을 대출 명의자가 아닌 지점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한 뒤 이 대출금을 지인의 계좌로 송금하는 대담한 수법도 활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사고를 막기 위한 내부통제가 사실상 전혀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결재 권한이 있는 지점장이 휴가 등 공식 부재 상황이 아닌 경우, 실무 담당자가 대출 결재를 대신 해선 안 된다”며 “이후 감사에서 이 부분이 걸러지지 않았다는 것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도 “대출 종류에 따라 대출명의자가 아닌 지점으로 대출금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지만, 이 사건에서 대출명의자에게 대출금이 전달되지 않은 사실이 적발되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은행 관계자들은 대출명의자에게 대출 실행 알림이 제대로 가지 않았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이 사건은 10개월여에 걸친 횡령 사실을 우리은행 쪽이 뒤늦게 포착해 자체 조사에 착수하자 지난 6월 ㄱ씨가 경찰에 자수하면서 불거졌다.

향후 금융 감독 당국의 대응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 사건과 관련해 “본점에 문제가 있다면 책임을 엄하게 물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조병규 우리은행장은 “모든 임직원에게 내부통제 교육을 해 앞으로는 같은 일이 절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ㄱ씨는 가상자산 투자 자산을 마련하고자 범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빼돌린 대출금 약 180억원 가운데 약 150억원을 가상자산 구매 등에 사용했고, 대출 채무 돌려막기에 약 27억원, 개인 용도로 약 3억원을 사용했다고 한다. 검찰은 “몰수보전・추징보전을 통해 약 45억원 상당의 가상자산 거래소 예치금, 은행예금, 전세보증금 등을 동결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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