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시장’ 규제 본격화… 빅5 원화거래소 중심 재편 수순 [심층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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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18. 오전 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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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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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 19일 시행

보험 가입 의무화 등 예치금 보호 강화
불공정거래 처벌 ‘최대 무기징역’ 명시

37개 사업자 중 8~9월 갱신 앞둔 34곳
대부분 개점휴업 … 10곳은 ‘폐업’ 선언

마켓메이킹 막혀 ‘김치코인’ 위축 전망
일각 “블록체인 산업발전 저해” 우려도


19일부터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됨에 따라 국내 시장의 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까다로워진 규제로 인해 금융당국에 신고된 상당수 가상자산거래소는 이미 영업에서 손을 뗐다. 연말부터 나머지 가상자산사업자 갱신이 줄줄이 예정된 터라 원화거래소를 뺀 대부분이 문을 닫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특히 마켓메이킹(MM)이 금지되면서 국내 기업이 발행한 가상자산을 뜻하는 김치코인의 거래량도 급락할 것으로 보인다. 가상자산이 본격 규제의 영역에 들어선 만큼 이용자 보호 측면에선 긍정적이겠지만, 국내 블록체인 사업들이 역차별에 가로막힐 수 있다는 업계의 한숨 소리도 크다.
 
◆사업자 ‘확’ 줄어드나
 
17일 세계일보가 금융위원회에 신고된 가상자산사업자(VASP)들의 운영 현황을 분석한 결과 18개 거래소 중 12곳(67%)은 전날 거래량이 ‘0’이었다. 거래소 간판을 내걸고 있지만 사실상 찾는 고객이 1명도 없어 개점휴업 상태인 셈이다. 다른 한 거래소에선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리플 등 주요 가상자산의 거래는 없었다. 단독 상장된 알트(얼터너티브)코인만 일부 거래됐다. 나머지 성업 중인 거래소는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 회원사인 5대 원화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였다.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 시행 후 업계는 이들 원화거래소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용자보호법에 따라 거래소는 앞으로 고객이 위탁한 가상자산과 동일한 종류와 수량의 가상자산을 실질적으로 보유해야 한다. 이용자 가상자산에 대한 보험 가입, 이상 거래 감시 조직 및 인력 확충 등의 의무도 이행해야 하는데, 현재 사실상 영업종료 상태인 거래소들은 이를 충족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37개 VASP 중 34곳은 8∼9월 금융당국에 갱신 신고를 해야 한다. 이미 10곳은 이용자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영업종료를 선언했고,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개선 요구로 메가존에 지분 매각을 진행 중인 고팍스 역시 경영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사업자 갱신이 힘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원화거래소 외 VASP들이 모인 한국블록체인사업협동조합 이준복 이사장은 이날 “조합사들이 국내에서 사업을 더는 못 하겠다며 해외로 나가고 있다”며 “이대로 가면 국내 중소거래소들은 다 퇴출당하고, 불법으로 영업하는 해외거래소로 사람이 몰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바이낸스 등 해외거래소는 국내에서 VASP로 신고하지 않고 영업하고 있다. 지갑을 통해 자유롭게 이동하는 가상자산의 특성상 금융당국이 이를 원천적으로 막기는 쉽지 않다.
 
◆김치코인 거래 위축되나
 
이용자보호법 시행과 더불어 국내 거래소에 단독 상장된 가상자산의 거래량은 급감할 것으로 전망된다. 법에 따라 가상자산 MM이 금지돼서다. MM은 시장에 유동성을 제공해 투자자 간 거래를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돕는 활동이다. 증권시장에서는 MM이 한국거래소를 중심으로 제도화돼 있지만, 가상자산 시장은 규제가 어렵고 시세 조종 등에 악용되는 사례가 잦아 이용자보호법 시행을 계기로 금지된다. 이런 탓에 국내 투자자 위주로 거래되는 김치코인은 거래량이 적어지면서 시세가 널뛰는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
 
김동환 원더프레임 대표는 “이용자보호법 시행에 따라 가상자산이 대량으로 상장폐지될 수 있다며 관련 리스트가 지난달 몇몇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공유됐는데, 대부분 거래량이 많지 않은 김치코인이었다”며 “전에도 이들 코인에선 가격 급변동이 발생했는데, 법 시행 후 유동성이 급격히 줄어들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대신 특정 코인의 가격을 인위적으로 올린 뒤 투자자에 물량을 떠넘기는 이른바 ‘펌프 앤드 덤프’는 줄어들 전망이다. 국내 거래소에서는 상장 후 시세가 급등했다 바로 급락하는 이른바 ‘상장빔’ 현상이 잦았다. 이에 손해를 본 투자자도 적지 않았다.
 
거래소는 이용자보호법에 따라 자체 이상 거래 감시 조직을 의무적으로 갖추고 불공정 거래가 의심되는 사례를 발견했을 때 금융당국과 수사기관에 보고해야 한다. 덕분에 거래소나 발행사, 대량 보유자를 중심으로 한 자전거래 등이 예방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미공개 정보 이용, 시세 조종 등의 가상자산 불공정 거래에 대한 처벌조항이 없어 수사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법 시행에 따라 관련 조항이 마련된다. 관련 수사에도 탄력이 붙게 될 전망이다. 가상자산 불공정 거래에 대해서는 1년 이상 징역 또는 부당이득의 3∼5배 상당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부당이득 규모가 50억원을 넘어가면 징역 5년 이상 또는 무기징역에 처할 수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블록체인 산업에는 ‘규제’로 작용
 
일각에서는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이 불공정 거래 규제에 초점을 맞춰 제정됐기 때문에 산업 발전 자체를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예를 들어 시세 조종을 막기 위해 국내 가상자산사업자의 자기 발행 가상자산 거래는 금지된다. 따라서 가상자산을 사업에 활용하는 데는 장벽이 될 수 있다.
 
17일 서울 강남구 업비트 고객센터 전광판에 비트코인 가격 정보가 나오고 있다. 뉴시스
정호석 변호사(법무법인 세움)는 “이용자보호법은 가상자산과 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전제로 만들어졌다”며 “건전한 사업자가 어디까지 영업할 수 있는지 그 길을 보여주지 않는데, 이에 따라 산업 자체가 움츠러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상자산사업자에 대한 정의 등 가상자산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조차 담기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 보완 또는 새로운 제도를 마련하기 위한 2단계 논의가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황석진 동국대 교수(국제정보보호대학원)는 “테라·루나 사태 등을 거치면서 법안을 만들다 보니 투자자 보호에 초점을 맞춘 규제부터 먼저 나왔다”며 “2단계 법안에서는 법안·진입·사업·영업규제, 공시 의무 등을 담아서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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