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콘텐츠도 문자로 귀결… 그래서 출판은 미래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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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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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가] 커뮤니케이션북스 박영률 대표
서울 성북구 커뮤니케이션북스 사옥, 편집자들 사이에서 포즈를 취한 박영률 대표. 그는 “출판은 사양 산업이 아닌 미래 산업”이라며 “한 시간에 책 한 권을 만들어 내는 미래를 꿈꾼다”고 말했다. 최현규 기자

현재 컴북스가 내놓은 책은 12개 브랜드 6000종이 훌쩍 넘는다. 거의 모든 책은 시력이 나쁜 분들을 위한 큰글자책과 함께 전자책, 오디오북을 동시에 낸다. 지하의 녹음실은 오디오북을 제작하는 공간이다. 인쇄공간을 함께 둘러보던 박 대표는 “무재고 출판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컴북스는 POD(Printing on Demand, 주문에 따라 인쇄하는 것) 방식을 고수한다. 보통은 1000부 이상 한꺼번에 찍지만 컴북스는 주문이 올 때 바로바로 인쇄해 출고한다. ‘세상에 읽을 수 없는 책이 없게 하라’는 사명으로 ‘다품종 소량 생산’을 하는 컴북스의 철학을 실현하는 가장 중요한 시스템이다.

내 인생의 책 ‘미디어의 이해’

박 대표의 삶은 늘 책과 함께였다. 초등학교 때 동화와 위인전만 읽어봤던 그는 중학교 도서관에 있던 세계문학전집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졸업 때까지 저걸 다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제1권을 뽑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2주 동안 씨름하다가 결국 포기했다. 그게 바로 단테의 ‘신곡’이었다. 결국 세계문학전집을 독파하리라던 꿈은 포기하고 한국문학전집으로 돌아섰다. 그는 “아마 신곡이 아니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같은 책을 처음 선택했다면 중학교 때 세계문학전집을 독파했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세계문학전집은 고등학교 때로 미뤄졌다. 밤새워 책을 읽다가 지각하기 일쑤였다. 고3 때 첫 모의고사 결과를 보고 ‘대학 가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 정신을 차렸다. 기자의 꿈을 키우던 그의 전공은 신문방송학이었다. 1976년 대학 1학년 때 운명과도 같은 책을 만난다. 마셜 매클루언의 ‘미디어의 이해’였다. 그는 “지금도 미디어의 변화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출판을 생각한다”면서 “책을 낼 때도 무슨 이야기냐 누가 썼느냐(메시지)도 중요하지만 어떤 형태의 미디어에 담을까를 고민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96년 절판됐던 ‘미디어의 이해’를 복간했고, 2011년에는 재번역 후 새로 출간했다.

정보를 민주화하자

대학 졸업을 앞두고 여러 고민을 하던 박 대표는 우연히 광고회사에 입사한다. 83년 전두환 독재정권 때였다. 잠깐 시간을 벌어보자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6년 정도 일했다. 대리가 됐을 때 이러다 평생 직장인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민주화운동을 하던 동료들과 1년 동안 고민하며 새로운 일을 찾았다. 87년으로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됐던 때였다. 정보화 시대를 떠올렸고 부동산 정보를 민주화하자고 결정했다. 대중은 부동산 정보에 목말랐지만 정보는 복덕방에만 있었고 그 정보들은 공유되지 않았다. 그렇게 만든 것이 주식회사 정보성이다. ‘정보의 성’이라는 의미로 아파트 매매·전세가 등 부동산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해 ‘부동산뱅크’라는 인쇄 매체와 PC 통신을 통해 판매했다. 처음 시도되는 일이라 호응이 컸다. 은행에서도 부동산뱅크의 아파트 매매가를 기준으로 담보대출을 해주기도 했었다. 출판에도 조금씩 손을 댔다. 신문 한 장으로 세계의 정치와 경제 동향을 꿰뚫는 노하우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신문소프트’를 출간하기도 했다.

잠깐의 외도

하지만 불황이 닥쳤다. 경영 상황이 어려워져 인력 구조조정을 선언하고 동시에 정보성의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다. 가끔 방송에도 출연했는데 박영률은 부동산전문가였다. ‘이러다 평생 부동산전문가로 살겠구나’라는 자각도 결정에 영향을 줬다. 출판 쪽으로 눈을 돌린 박 대표는 94년 지식공작소(‘일본은 없다’), 96년 박영률출판사(‘디지털이다’)를 창업해 베스트셀러를 출간했다. 그리고 98년 현재의 컴북스를 만들었다. 박 대표는 잠깐의 외도를 한다. 한 신문사의 제안으로 스포츠신문의 주말판과 경제신문의 문화면을 외주제작한 것이다. 어릴 적부터 꿈이었던 저널리스트로서 활약할 기회였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는 “책이라는 것은 시간 여유가 있고 기획도 하고 지식을 쌓아서 상품을 만들 수 있는데 신문은 그렇지 않았다. 바로바로 찍어내야 했다”면서 “6개월여 만에 번아웃이 왔다”고 말했다.

결국 신문사 일을 그만두면서 직원들에게 1년간 찾지 말라고 하고 ‘앞으로 뭐 하고 살아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때 기준이 있었다. ‘정말 좋아하면서 누구보다 잘할 수 있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잘할 수 있고, 하면 할수록 나한테도 좋고 사회에도 좋은 일’이었다. 그렇게 찾은 것이 지식을 축적하고 편집하고 유통하는 일, 바로 출판이었다.

나는 오로지 출판만 한다

그동안 출간한 책들 앞에 선 박 대표. 최현규 기자

2001년 직원들에게 “나는 오로지 출판만 한다”고 선언했다. 박 대표는 경영 원칙, 세 가지를 세웠다. 첫째, 망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돈만 벌면 안 되고 일의 결과가 다음 일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축적 효과가 있어야 한다. 셋째, 우리만 돈 벌고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면 안 된다. 말하자면 공동선을 추구해야 한다. 그는 “둘째와 셋째 목표는 출판을 한다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문제는 망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었다”고 했다.

‘망하지 않는 출판사’를 만들기 위해 우선 그는 베스트셀러 전략을 포기했다. 그는 “삼각형의 높이를 매출로 하고 밑변은 책의 종수라고 했을 때 책의 종수가 적고 매출이 높다면 이익률이 극대화된다”면서 “이게 베스트셀러 전략이다. 하지만 문제는 베스트셀러가 무너지면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삼각형의 밑변은 ‘최대한 넓게, 높이는 낮게’ 출판사 구조를 혁신했다. 그렇게 컴북스는 주문형 출판, 무재고 경영을 고수하고 있다.

컴북스는 전문성 독창성 소통성, 세 가지 기준만 충족하면 책을 만든다. 아무리 연구해도 알 수 없는 시장성은 고려하지 않는다. 다른 출판사와의 차이점이다. 박 대표는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지식과 사유의 다양성이다. 어떤 지식 어떤 사유가 다른 사유 지식보다 낫다 아니다를 우리가 판단하는 건 불가능하다”면서 “그 판단은 지식 소비자들에게 맡기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가능한 다양한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출판은 미래 산업이다

박 대표는 “출판을 사양 사업이라고 하는데 전혀 그렇게 생각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는 “최근 지식 생산이 폭발하고 있기 때문에 출판의 원료와 욕망도 급증하고 있다”면서 “어떤 미디어로 어떤 책을 만들 것인가에 대답할 수 있다면 출판은 미래 산업”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유튜브에 주목했다. 과거 블로그 등에서 생산되던 콘텐츠의 수십, 수백 배나 되는 이야기의 폭발이 유튜브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유튜브는 비문자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다. 콘텐츠가 쌓이면 쌓일수록 압축해서 남하고 공유하고 싶어하는 게 인간의 욕망이다. 인류가 지금까지 개발한 사유 압축의 가장 결정적인 도구는 문자고 언어다. 결국 유튜버들은 가장 압축률이 높은 문자를 통해 자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박 대표는 “출판은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과 그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을 문자를 통해 연결해주는 것”이라며 “넘쳐나는 잠재적 작가들이 쉽게 책을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게 출판인의 숙제”라고 말했다.

컴북스는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15년 전부터 컴북스에서 나온 책의 모든 콘텐츠를 세분화해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었다. 현재는 챕터별로 구분했지만 앞으로 문장 단위까지 세분화할 수도 있다. 콘텐츠를 작게 만들수록 쉽게 조합이 가능하다. 또 스마트폰으로 누구나 자신만의 자서전을 만들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테스트 중이다.

박 대표는 “한 시간에 책 한 권을 만들어 내는 미래를 꿈꾼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과 같은 기술의 진보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는 “10년쯤 뒤에는 가능할 것 같다”면서 “하지만 그동안의 기술 진보는 항상 내 예상보다 빨랐다”고 말했다.

기자 프로필

국민일보 맹경환입니다. 1997년 입사 이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베이징특파원을 거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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