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간 손상에 피부암까지 유발하는 놀이터 [발암물질 위의 아이들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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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20. 오후 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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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위협하는 놀이터

최근 많은 놀이터의 바닥이 탄성포장재로 시공되고 있는 가운데 경기도교육청으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탄성포장재 놀이터를 시공한 경기도 초등학교·유치원은 총 756곳에 달한다. 이 중 초등학교는 148곳, 유치원은 608곳이다. 정부는 충격 흡수가 안 돼 뇌진탕 등 낙상사고 위험이 있는 데다 위생 문제도 불거진 모래 놀이터 대신 탄성 있는 포장재로 변경, 아이들이 안전한 곳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었지만 경기일보 취재 결과 도내 초등학교 어린이 놀이터에서 1급 발암물질 등 유해성 물질이 다량 검출됐다.

검출된 물질에는 장기간 노출될 경우 호흡기 암, 피부암 등을 유발할 수 있는 벤조(a)안트라센과 같은 ‘1급 발암물질’은 물론이고 나프탈렌, 아세나프틸렌과 같이 장시간 흡입 시 장기에 손상을 주는 물질과 석탄 등을 사용할 때 나오는 유독물질 등도 포함돼 있어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설치된 탄성포장재가 되레 위협이 되고 있다.
지난 5월 K-ECO팀이 초등학교 내 어린이 놀이터의 바닥재 유해성 검사 시료 채취 중 바로 옆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이지민기자
■ 지역 내 초교 네 곳 놀이터 채취부터 의뢰까지

K-ECO팀은 지난 5월 도내 초등학교와 유치원 놀이터 바닥재의 유해성 검출 여부 확인에 나섰다. 2016년 육상트랙, 인조잔디 운동장 등 어린이 사용시설 우레탄 바닥재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납이 검출되면서 아이들의 건강에 유해할 것이라는 우려가 일었고, 정부는 이러한 어린이 놀이시설 우레탄 바닥재에 대한 기준을 마련, 기준을 넘긴 시설의 바닥재를 전량 교체하면서 일단락됐다. 그러나 같은 어린이 사용시설로 구분되는 초등학교·유치원 어린이 놀이터에는 여전히 기준이 마련되지 않고 있어 도내 초등학교와 유치원 내에 설치된 어린이 놀이터 여덟 곳의 바닥재 유해성 검사를 시행했다.

초등학교와 유치원 출입 및 시료 채취를 위해 경기도의회 안광률 교육행정위원회 부위원장(더불어민주당•시흥1)의 협조를 받아 학교 선정 작업을 진행했다. 시험 대상지는 경기도교육청의 예산을 지원받아 탄성포장재 놀이터를 설치한 도내 초등학교와 유치원 중 남부와 북부로 나눠 선정했으며 연식에 따라 결과가 상이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 이들 각 학교 놀이터의 연식을 10년이 넘은 곳과 최근에 지어진 곳으로 다양화했다.

먼저 초등학교 네 곳의 검사 결과를 살펴본다. 대상은 △양주 △평택 △하남 △의정부 소재 초등학교다. 시료 채취를 위해 양주 A초등학교(5월21일), 하남 C초등학교(5월21일), 평택 B초등학교(5월24일), 의정부 D초등학교(5월24일)에 전문업체와 동행, 현장에서 시료를 채취하는 과정을 참관했다. 업체는 고무바닥재를 최소 5~10cm로 설정, 육면체 모양으로 절단한 뒤 현장 보수 작업도 즉각 시행했다.

지난 5월21일 하남 소재 C초등학교 놀이터 탄성포장재 시료 채취 현장. 이지민기자

K-ECO팀은 절단된 시료를 가지고 5월29일 대전으로 이동, 국가공인시험검사기관인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에 유해성 시험 의뢰를 진행했다.

시험 결과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이중합성고무(EPDM)로 구성된 부분(2~4cm)을 상부로, 폐타이어 등 합성고무로 만들어진 부분을 하부로 구분해 유해성을 검사했다.

이 과정에서 시험 방법은 ‘KS M 6956(재활용 고무분말의 유해 물질 측정방법) 2022년 버전’을 적용했다. 이는 산업표준화법 관련 규정에 따라 산업표준심의회의 심의를 거쳐 개정한 한국산업표준으로 폐고무를 주원료로 한 보도, 학교 운동장, 유치원 바닥재 고무 블록의 유해화학물질 시험에 사용되는 시험방법이다.

현행법상 어린이 놀이터 탄성포장재는 한국체육시설공업협회가 제정한 ‘어린이 놀이시설용 현장포설형 충격흡수바닥재’ 단체표준 SPS-KSSFIA1-1944를 따른다. 다만 이 규정은 통상 2층 구조로 이뤄진 놀이터 탄성포장재 하층부의 PAHs 18종을 검출할 기준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경기일보는 관련 기준과 시험 방법을 ‘KS M 6956(재활용 고무분말의 유해 물질 측정방법)’으로 동일하게 적용, 분석을 진행했다.

지난 5월24일 진행된 평택 B초등학교 시료 채취 모습. 황호영기자

■ 초교 네 곳 PAHs ㎏당 평균 25㎎ 검출... 기준치 150% 초과

약 3주의 시험을 거쳐 지난달 18일 받아본 결과지를 통해 시험을 진행한 모든 초등학교에서 PAHs(다핵방향족탄화수소, 다수의 독설 물질과 발암물질이 포함된 방향족 화합물) 등 유해 물질이 검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PAHs 총량은 ㎏당 10㎎ 이하로 제한되지만 4개교 바닥재 하층부에서는 평균 25㎎의 유해 물질이 검출됐다. 이는 국가기술표준원이 규정한 PAHs 총량의 2.5배에 달한다.

암이나 호흡기 질환 등을 일으키는 유해 화학물질로 불리는 PAHs는 어린이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PAHs를 구성하고 있는 18개 화합물 중 일부 물질은 국제암연구소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로 민감한 생리적 발달 단계에 있는 어린이에게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이번 시험에서 검사한 PAHs 18종 중 가장 많이 검출된 물질은 플루오란텐과 피렌이다. 플루오란텐은 석탄 연소나 도로 교통, 산업 활동 등에서 발생하는 탄화수소다. 피부와 접촉할 경우 피부 자극을 일으키고 높은 농도로 흡입하면 호흡기에 자극을 줄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 노출될 경우 간 손상과 유전자 독성 등 문제를 유발하는 발암물질이다.

피렌은 화석연료나 음식을 태울 때 발생하는 잔류성 독성물질로 환경 오염의 주요 원인이다. 일반적으로 검은색 결정 또는 분말 상태로 존재하며 대기나 토양에서 오랜 기간 존재할 수 있다. 고농도의 피렌을 흡입하면 호흡기에 자극을 줄 수 있고 오랜 기간 노출 시 호흡기 질환의 위험을 증가시킨다. 간 손상을 초래하는 독성도 가졌다.

이외에도 국제암연구소가 폐암과 피부암, 방광암 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명시한 1급 발암물질 △벤조(a)피렌 △인데노(1,2,3-C,D)피렌, 2급 발암물질로 분류한 △크리센 △벤조(b,j,k)플루오란텐 △페난트렌 △벤조(e)피렌 △벤조(g,h,i)페릴렌 등 여러 유해물질이 검출됐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2007년 12월 놀이터가 조성된 양주 A초등학교의 경우 상층부와 하층부 모두 PAHs가 기준치를 초과했다. 상층부에서는 ㎏당 23.1㎎, 하층부에서도 28.5㎎의 PAHs가 검출됐다. 이곳의 놀이터 바닥에서는 석탄이나 휘발유가 탈 때 발생하는 발암성 물질 벤조(a)안트라센이 검출 한계(화학 분석에서 성분의 유무를 알아낼 수 있는 최소량)를 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자동차 배기가스나 담배연기 등에서 나오는 벤조(a)피렌과 폐에 손상을 줄 수 있는 벤조(g, h, i)페릴렌도 검출 한계를 초과했다.


2014년 조성된 평택 B초등학교 역시 상층부와 하층부 모두 PAHs가 기준치 이상 검출됐는데 상층부는 ㎏당 12㎎, 하층부는 15.2㎎이었다. 상∙하층부 동일하게 페난트렌(환경오염 물질 중 하나인 독성물질)이 검출 한계를 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하남 C초등학교의 놀이터(2017년 8월)는 하층부에서 기준치의 2배가 넘는 ㎏당 22.9㎎의 PAHs가 검출됐다. 그중에서도 화석연료나 음식을 태울 때 발생하는 잔류성 독성물질인 피렌은 검출 한계인 ㎏당 0.3㎎의 33배에 달하는 10㎎이 검출됐다.


비교적 최근인 2021년 12월 조성된 의정부 D초등학교 놀이터에서도 PAHs가 ㎏당 32.5㎎이 검출돼 기준치의 3배를 넘었다. 이곳 역시 1급 발암물질인 벤조(a)피렌과 벤조(g, h, i)페릴렌이 검출 한계를 넘겼다.

지난 5월21일 하남 소재 C초등학교 놀이터 탄성포장재 시료 채취 현장. 이지민기자
■ 중금속 납과 바륨도 검출... 해외선 사용 금지

검사를 진행한 네 곳 학교에선 공통으로 납이 검출됐는데 수치는 ㎏당 9㎎에서 20㎎까지 다양했다.

중금속은 인체에 축적될 뿐더러 장기간 노출 시 심각한 건강 문제를 일으킬 수 있어 ‘검출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피부 접촉 등 어린이가 납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발육장애나 학습장애 등 건강에 해를 입을 수 있고, 심할 경우 혈액과 뇌 장벽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더욱이 평택 B초등학교 상층부에서는 농도 ㎏당 6㎎의 바륨도 검출됐다. 고농도 바륨은 근육 약화나 혈압 상승 등 건강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높다.

해외의 경우 재활용 타이어에서 나오는 고무 부스러기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와 교체 작업이 일찍이 제기돼 왔다.
지난 2019년 5월 외신 ‘더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미국 코네티컷주 웨스트포트와 워싱턴주 에드먼즈를 포함한 일부 지역에서는 놀이터 내에 폐타이어를 원료로 한 고무충전재의 사용을 금지했다. 같은 해 뉴저지주 마와에서도 폐타이어에서 발암물질을 포함한 유해 물질이 대거 발생함에 따라 놀이터 바닥재 전면 교체를 요구하는 학부모 청원이 진행된 바 있다. 올해 3월에는 미 킹스턴 시립 학군(KCSD)이 고무바닥재가 어린 학생들에게 안전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 후 관내 초등학교의 운동장 표면을 교체하기로 했다.

뉴저지 공과대학 연구원이자 환경 독성학자인 제노아 워너는 “암을 유발하고 내분비계를 교란할 수 있는 고무바닥재가 놀이터에도 적용되는데, 이는 굉장히 위험하다”며 “아이들이 독성 화학 물질이 깔린 침대에서 놀고 있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처럼 폐타이어를 활용한 탄성포장재에서 아이들의 건강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1급 발암물질과 유해 물질이 다량 검출됨에 따라 해외에서는 탄성포장재 사용을 수년 전부터 지양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사용되고 있는 탄성포장재의 설치 기준을 강화하거나 대체재 연구를 통한 교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인터뷰 박정임 순천향대학교 환경보건학과 교수 “다양한 노출경로 부작용 예측불가”

박정임 순천향대학교 환경보건학과 교수가 경기일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어린이 놀이터 바닥재에서 나온 유해 성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Q. PAHs란 무엇인가.
A. 우리말로는 다핵방향족탄화수소, 벤젠링이 여러 개 붙은 구조의 다양한 화학물질을 통칭하는 말이다. 고깃집에서 탄 부위를 먹지 말라고 할 때 지칭하는 성분도 PAHs의 일종이고 교통이 혼잡할 때나 타이어 마모 부위 등에서 나오는 유해 물질도 여기에 속한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발암성에 따라 PAH를 그룹으로 나누는데, 거기서 1급 발암물질과 같은 표현이 나온다. 보통 우리가 발암물질이라고 칭하는 건 그룹 1과 2에 포함된 물질이다. 이번 시험방법으로 사용된 표준의 PAHs 기준은 ㎏당 10㎎이다. 이는 ‘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대다수 학교가 이 기준을 넘었다는 건 제조 자체를 규격에 맞지 않게 했다고 볼 수 있다. 발암물질은 안전한 기준이 없다. 표준이 제시한 기준도 관리의 기준이지 안전의 기준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기준과 상관없이 가능한 한 검출이 되지 않는 게 이상적이다.

Q. 아이들이 PAHs에 노출될 경우 생기는 부작용은.
A. 아이들은 작은 어른이 아니다. 같은 양에 노출돼도 아이는 어른보다 몇 배의 위험성을 갖는다. 어른처럼 생리적 기능이 완성되지 않아 해독 기능이 모자란 데서 생기는 문제도 있다. 손을 비비고 빨아 먹는 습관은 호흡을 통한 노출을 뛰어넘어 피부 노출을 유발한다. 노출 경로 자체가 훨씬 다양하기 때문에 더 위험할 수 있다. 그래서 어른들에게는 나타나지 않는 어떤 식의 부작용과 독성이 발현될지 예측할 수 없다. 어린이 생활 공간을 또 다른 기준으로 관리하는 이유다.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둔다면 놀이터에서 유해 물질이 검출됐다는 사실은 좀 더 심각한 문제가 된다.

Q. 하층부의 PAHs가 외부로 드러날 가능성도 있나.
A. 아이들이 뛰어놀며 가해지는 충격으로도 바닥이 패고 드러날 수 있을 만큼 상층부의 두께가 눈으로 보기에도 너무 얇다. 하층과 완전히 구분된 층도 아니기에 성분이 서로 넘나들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PAHs는 분자 크기가 다양한 물질이다. 이번 시험에서 검출된 벤조(a)피렌은 PAH 중에서도 입자가 크지 않고 무거운 쪽에 속한다. 따라서 해당 성분이 검출됐다면 이동 가능성은 의심해 볼 만하다.

Q. 현재 어린이 놀이터에 적용하는 표준으로는 하층부의 PAHs 농도를 18종까지는 검사할 수 없는데.
A. 가장 먼저 하층부 유해 물질이 상부로 올라갈 수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검사를 통해 비율을 확인하고 상부보다 완화된 기준이라도 두고 관리를 하는 게 최소한의 노력이라고 본다. 보이는 부분은 깨끗한 물질을 쓰고, 밑에는 뭐가 있는지도 모른다는 건 미봉책이 아닐까.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A. 놀이터를 설계할 때 어른들은 일정 사용 범위를 기대하지만, 아이들은 훨씬 창의적인 행동 양식을 보인다. 이런 것을 고려해 아무리 창의적으로 놀아도 위험하지 않은 기준을 적용해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위험은 분명 존재한다. 이를 명심하고 아이들의 놀이터 사용 방식을 고려해 다양한 시나리오까지 보호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


※ ‘K-ECO팀’은 환경(Environment), 비용(Cost), 조직(Organization)을 짚으며 지역 경제(Economy)를 아우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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