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 화가가 만든 별난 예술 카페 [소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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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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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소셜기록제작소
홍승수 수의프하우스 대표 인터뷰
사진작가 꿈꾸던 엘리트 예술가
독특한 '가죽 회화'로 힐링 전파 
커피 한잔이면 작품 감상까지
작가가 운영하는 카페형 미술관
요즘의 카페는 커피나 음료, 디저트를 판매하는 곳을 일컫는다. 하지만 잘 알려진 것처럼 17세기 프랑스에서 처음 생겨난 카페는 디저트 가게가 아닌 소설가와 시인, 화가 등 온갖 예술인들의 사교모임 장소였다. 카페에는 예술가와 예술이 있었던 셈이다. 최근 그런 카페의 본래 의미를 살린 카페가 문을 열었다. '수의프하우스(soo'p house)'라는 곳이다. 

홍승수 수의프하우스 대표이자 가죽 회화 작가.[사진=수의프하우스 제공]


9만6016개. 전국에 둥지를 튼 커피·음료 전문점 수(국세통계포털·2024년 1월 기준)다. 전국민의 '맥주 안주'를 책임지는 치킨전문점이 대략 3만개라는 걸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다. 제과·제빵점, 브런치를 판매하는 휴게음식점 등을 포함하면 이른바 '카페'는 그야말로 차고 넘친다. 그래서 점포 위치, 제품 가격, 인테리어, 맛 등 소비자를 끌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이렇게 숨 막히는 시장에서 지난 5월 '수의프하우스(soo'p house)'란 독특한 카페가 문을 열었다.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의 외진 비탈길에서다. '카페=디저트 가게'란 관점에서 보면 이 카페는 경쟁력이 높지 않다.

입지가 좋으면 손님의 발걸음이 알아서 쏠리겠지만, 고기동의 꼬불꼬불한 길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입에 잘 붙지 않는 카페 이름도 마이너스 요인이다. 그렇다고 이곳의 커피나 디저트가 압도적인 맛을 뽐내는 것도 아니다. 사실 커피 맛은 평준화한 지 오래다. 

하지만 수의프하우스는 이런 '모자람'을 상쇄할 만한 특별함을 갖고 있다. 다름 아닌 예술이다. 무엇보다 카페 공간 자체가 수의프하우스의 대표이자 예술가인 홍승수(53)씨의 작품이다.

홍 대표는 7개월 동안 카페의 모든 공간을 직접 꾸몄다. 페인트칠은 물론, 조명도 손수 디자인해 자신이 생각하는 위치에 달았다. 타일도 스스로 만들어 붙였다. 의자 하나 탁자 하나까지 홍 대표의 손때가 묻었으니, 뭐 하나 평범한 게 없다. 

"처음엔 인테리어 업체에 맡기려 했지만 제가 원하는 걸 전달해서 구현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결국 직접 했습니다. 여기저기 타일이 삐뚤삐뚤한 것도 비전문가인 제가 만들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그런 자연스러움이 제가 원하던 것이기도 합니다." 

'손품'을 팔아서인지 수의프하우스는 조명이 만들어낸 그림자조차 평범하지 않다. 어떤 조명은 낮고 너른 언덕이 있는 그림에 해를 만든다. 또 어떤 조명은 카페 모서리 벽면에 하트 그림자를 새긴다.

예술가의 손으로 탄생한 카페의 인테리어도 독특하지만, 곳곳에 걸린 작품들도 눈길을 끈다. 그림, 도예품, 가죽공예품, 주물공예품, 심지어 흑백사진들까지 전시했다. 모두 홍 대표의 작품이다. 

수의프하우스 입구.[사진=더스쿠프 포토]


원래 사진작가를 꿈꿨던 홍 대표는 미국의 명문 디자인학교인 파슨스디자인스쿨을 졸업했다. 월트 디즈니가 설립한 명문 예술학교인 캘리포니아 예술학교(칼아츠·CaLARTS)에선 석사 학위를 땄다.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는 얘기다. 이 정도 간판이면 충분히 상업적인 성공을 보장받는 길을 걸을 수 있었겠지만, 그는 순수예술가를 택했다.

"순수예술에 눈을 뜨게 해준 칼아츠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어요. 다양한 표현기법도 그곳에서 배웠고, 예술을 하나의 영역으로 규정하기 힘들다는 것도 깨달았죠. 덕분에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면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이 가는 작품은 벽면 곳곳에 붙어 있는 그림들이다. 일반적인 그림이 아니어서다. 가까이 다가가야 알 수 있는 그림의 소재는 가죽이다. 오려낸 형태의 가죽 위에 안료를 칠한 그림인데, 홍 대표는 이 작품들을 '가죽 회화'라고 소개했다. 

"이런 작품을 만드는 작가들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저에겐 생소했어요. 이 작품들을 뭐라 불러야 할지도 난감했죠. 가죽공예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던데, 제 작품은 그림이어서 저는 가죽 회화라고 부릅니다. 그저 제 생각을 사각의 틀 안에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평면은 싫고, 너무 입체적인 것도 별로였어요. 그러다 가죽으로 그림을 만들어보니까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힐링이죠. 제 가죽 회화를 보면서 다른 누군가도 힐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이곳의 다른 작품들도 똑같은 이유로 전시한 겁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었죠. 그래서 만든 게 바로 이 카페예요." 

이쯤 되면 수의프하우스라는 카페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수의프하우스는 단순히 커피와 음료, 다과를 파는 음식점이 아니라, 홍 대표의 작업실이자 전시공간이다. 수의프하우스라는 카페 이름이 탄생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수(soo)'는 홍 대표의 이름 끝자를 뜻하고, '프(p)'는 펜트하우스를 줄인 약자다. 해석하면 '(홍승)수의 펜트하우스'다. 

홍 대표의 가죽 회화 작품.[사진=더스쿠프 포토]
홍 대표의 가죽 회화 작품들.[사진=뉴시스]


수의프하우스에서 손님은 전시관에 찾아온 관람객이다. 찻값이나 빵값이 관람료를 대신할 뿐이다. 세상에 흔치 않은 가죽 회화를 보고, 가죽 회화를 그린 작가에게 직접 작품 설명까지 듣는 가격이 차 한잔 값이라면 이런 행운이 또 있을까.

당연히 전시관인 이 카페는 변신도 한다. 홍 대표는 카페 한쪽을 새롭게 꾸며 과거에 찍었던 흑백사진들을 모아서 전시할 계획을 갖고 있다. 누군가 대관을 원한다면 언제든 가능하다. 수의프하우스가 이렇게 '팔색조 변신'을 꾀하듯 홍 대표가 앞으로도 가죽 회화 작가일지는 알 수 없다. 그가 생각하는 예술에 '제한'이란 없어서다. 

"지금은 가죽으로 그림을 그리는 게 너무 재밌어요. 그래서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한시적으로 저는 가죽회화 작가일 겁니다. 하지만 하고 싶은 걸 하다 보니 가죽회화 작가가 된 것처럼 또다른 예술에 푹 빠진다면 그걸 하고 있겠죠." 외진 비탈길 위 작은 카페엔 이렇게 별난 예술가가 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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