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에 진실 있다" 페달 블랙박스의 함의 [추적 ]

입력
기사원문
김정덕 기자
TALK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페달 블박 의무화 담은 보고서
새 국면 맞은 급발진 의심사고
차 제조사에 반대할 명분 없어
급발진 의심사고 종지부 찍을까
지금까지 일어난 자동차 급발진 의심사고 중 '급발진'이 입증된 사례는 몇건일까. 공교롭게도 제로다. 당연히 이 결과를 신뢰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급발진 의심사고의 입증 책임이 제조사가 아닌 운전자에게 있다는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그러자 국토부가 '페달 블랙박스'를 설치할 것을 권고했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이를 받아들였을까.

자동차 제조사가 페달 블랙박스 의무화를 반대할 명분은 없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운전자에게 자동차 급발진 의심사고는 공포의 대상이다. 자동차가 굉음을 내며 앞으로 내달리는 상황에서 운전자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곡예운전을 하거나 어딘가에 부딪혀 멈춰서길 기대하는 것 외엔 없어서다. 그래서 사고 경험자들의 후유증은 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함께 타고 있던 이가 사망했다면 더욱 그렇다.

운전자들을 더 힘들게 만드는 건 죄책감이다. 가령, 급발진 의심사고의 당사자인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작동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고 치자. 그런데 정작 사고기록장치(EDR)에 '운전자가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면 어떨까.

객관적 자료가 그렇다면 대부분 운전자 과실로 결론이 난다. 결국 운전자는 자신의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빠지고, 모든 걸 자신의 잘못이라며 자책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렇다고 사고 원인을 제대로 규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급발진 입증 책임은 비전문가인 소비자에게 있다. 제조자는 소비자의 주장이 틀렸다는 걸 반박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이 때문에 국내에선 소비자가 급발진을 주장하며 제조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단 한번도 승소한 적이 없다. 

다행스러운 건 정부가 급발진 문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제조물책임법을 개선하기 위한 '제조물책임법 운용 실태조사' 연구용역을 진행해 보고서를 내놨다. 지난해 2월 급발진 의심사고 발생 시 운전자가 아닌 제조사가 차량 결함 여부를 입증하도록 해달라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근거로 시작했다.

눈여겨볼 건 이 보고서에 '급발진 문제를 제조물책임법만으로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 자동차관리법을 개선해 급발진 입증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이 담겼다는 점이다.

제조물책임법을 손봐서 누구에게 입증책임을 부여할 것인지도 중요하지만, 자동차관리법에 '급발진 여부를 입증할 증거 확보 수단'을 명시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거다. 일부에서 논의하고 있는 그 수단은 '페달 블랙박스' 의무적 부착이다. 

페달 블랙박스는 급발진 자동차의 운전자가 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 중 무엇을 밟았는지를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장치다. 예전엔 기술력의 한계 때문에 할 수 없었지만 자동차 블랙박스가 보편화한 지금은 그렇지 않다. 기존 블랙박스 장치에 채널만 추가해도 페달 쪽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급발진 사고가 운전자의 실수인지 아니면 차량 문제인지 식별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국토교통부가 페달 블랙박스 장착을 권고하는 방안을 추진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문제는 국내 자동차 제조사들이 이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유는 '빌트인캠(내장형ㆍBuilt-in Cam) 형식의 페달 블랙박스를 개발하려면 최소 3~5년이 걸린다' '소비자가 페달 블랙박스의 옵션 판매를 공감할지 의문이다' 'EDR이 있는데 굳이 페달 블랙박스까지 장착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등으로 다양하다.

급발진 의심사고 중 급발진 인정을 받은 사고는 단 한건도 없다.[사진=뉴시스]


소비자들 역시 "페달 블랙박스를 급발진 증거로 제출해도 수사기관이나 재판부에서 채택할지 의문"이라면서 "오히려 제조사들이 페달 블랙박스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전자계통에 문제가 생겼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이런 우려가 현실이 돼선 안 된다. 더구나 제조사들의 주장은 이치에 맞지도 않는다. 그동안 제조사는 급발진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해결책을 적극적으로 마련하지도 않았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급발진 여부를 입증할 수 있는 페달 블랙박스 장착 권고를 수용하지 않는 건 어불성설이다. '급발진은 존재하지 않는다'던 주장을 유지하는 데 자신이 없다는 방증일 뿐이다. 급발진 의심사고를 명확하게 규명할 의지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운전자가 자신의 비용을 대면서 미래에 일어날지 모를 급발진에 대응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달 블랙박스 장착 권고는 자동차 제조사가 찬성하고 거부하고 그럴 문제가 아니다. 이젠 급발진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때도 됐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
[email protected]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email protected]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경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