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서이초 1년’ 학부모도 학교도 교육 본령 자성 계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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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18. 오전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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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보호 강화에도 현장 체감 못해
존중·신뢰 바탕 공동체 회복이 관건
오늘은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순직 1주기다. 꽃다운 20대 교사의 죽음은 바닥에 떨어진 교권을 되돌아보게 했다. 많은 선생님이 주말이면 광화문에 모여 ‘나는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고 흐느꼈다. 사회적 이슈에 쉽게 목소리 내지 않던 교단이 거리로 나선 배경엔 교권 추락 경고음을 정부와 국회가 한 귀로 흘려 보냈다는 원망이 자리잡고 있었다. 과거에도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학대 행위’로 신고하는 사례는 빈번했다. 욕설은 양반이고 ‘매 맞는 선생님’은 흔했다. 1년이 지난 지금 공교육은 제자리를 찾았나. 현장 교사들은 “변화를 체감하지 못한다”고 호소한다. 지난해 부산에선 술 취한 학부모가 교실에 난입해 소동을 일으키는가 하면 상습적으로 교사를 고소하는 학부모까지 있었다.
서이초 교사 사망 1주기를 하루 앞둔 17일 서울시교육청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서 추모객들이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이초의 비극을 계기로 교권 보호제도는 강화됐다. 지난해 9~12월 국회를 통과한 개정 교육보호 5법(교원지위법·교육기본법·초중등교육법·유아교육법·아동학대처벌법)은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신체적·정서적 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면책 조항을 명문화했다. 교원이 아동학대 혐의로 수사 받아도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직위해제를 금지했다. 악성 민원 전담시스템 설치도 의무화됐다. 그렇다고 교권 침해가 줄어든 건 아니다. 그 효과를 실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서울교사노동조합 설문조사에선 교사 10명 중 8명이 “변화가 없다”고 답했다. 56.2%는 여전히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를 당할까봐 걱정이다.

교권이 무너지면 공교육이 기를 펼 수 없다. 교사들은 제자를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이 민원을 유발할까 봐 망설이게 된다. 아이가 화상을 입을 수 있는 요리 수업은 포기한다. 안전사고 우려 때문에 야외 체험학습을 포기하는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교사와 학부모·학생이 서로 거리를 두면 공교육의 핵심 가치인 인성교육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최근 전북에선 초등학생이 무단 조퇴를 제지하던 교감의 빰을 때리는 사건까지 있었다. 폭력 행위를 제지하면 신체적 아동학대 신고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 빰 맞으면서도 뒷짐지고 있는 교감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교육 정상화의 길은 여전히 멀고 험난하다.

교육계에선 모호한 신체·정서학대 기준을 명확히 하고 악성 민원 가해자 처벌을 강화하자고 요구한다. 제도적 빈 틈은 채워야 하지만 그게 완벽한 해법은 아니다. 분명한 것은 학교가 갈등과 상처의 공간이 아니라 존중과 배움의 공간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교육공동체 회복이다. 이건 교사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른들이 모두 나서야 한다. 학부모가 ‘밥상머리’ 교육을 책임지지 않고 교사 탓만 하면 백약이 무효다. 지난 5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스승의 날을 맞아 실시한 설문조사에선 ‘다시 태어나도 교직을 선택하겠냐’는 질문에 20%만 ‘그렇다’고 했다. 스승이 괴로운데 아이의 인권과 학습권이 제대로 보장될까. 부모와 교사 모두 ‘올바른 아이 키우기’라는 교육의 본령을 되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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