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몸·정신 아픈 수급자 강제로 막노동…여전히 두렵다" '심리 지배' 후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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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11.20. 오후 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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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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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여전히 피의자에 정신 속박된 피해자부산 사하구 다대동 어느 모텔. 두 50대 남성이 불편한 다리를 끌며 길을 걷는다. A(56) 씨와 B(57) 씨다. 두 사람은 몇 걸음 떼기가 무섭게 휴대전화를 들어 주변을 촬영한다. 그리곤 누군가에게 사진을 전송한다. 골목을 지나 조형물이 나타나자 또다시 사진을 찍는다. 어김없이 촬영한 사진을 누군가에게 보내 자신들의 위치를 알렸다. 걷고, 찍고, 보내고를 반복하며 두 사람은 동구 범일동 중앙시장에 이르렀다. 두 사람이 거주하는 고시원 근처다. 거리 15㎞ 이상, 도보로 약 5시간 걸리는 길이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두 사람의 휴대전화에 새 지시가 떨어졌다. ‘다시 모텔까지 걸어와라.’

20일 종합된 취재를 토대로 재구성한 거제 옥포동 변사사고(국제신문 지난 13일 자 온라인 보도) 피의자 C(49) 씨의 ‘심리 지배’ 방식이다. 그는 폭력과 공갈로 두 사람을 틀어쥐곤 기초생활수급비와 생계비 등을 수시로 갈취했다. A 씨는 지난달 11일 B, C 씨와 술을 마시다 옥포항에 뛰어들어 숨졌는데, 당시 술에 만취해 심기가 나빴던 C 씨의 기분을 풀고자 “물에 들어가자”고 자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경은 심리 지배 상태에 빠진 A 씨가 초조함을 덜고자 스스로를 위험에 빠트렸다고 보고 C 씨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 적용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몸·정신 아픈 수급자 돈 뺏고 막노동 강요

숨진 A(56) 씨는 오랜 시간 병치레를 해왔다. 발에 통풍이 심해 때때로 걷기가 힘들었다. 한쪽 귀에도 문제가 있어 청각이 나빴다. 정신 질환도 앓고 있었던 터라 꾸준히 약을 먹어야 했다. 사실상 일할 수 없는 몸이었다. 그런데도 C 씨는 자신이 숙소로 삼은 다대동 모텔로 수시로 두 사람을 불러냈다. 그리곤 별다른 이유도 없이 먼 길을 걷고 오게 했다. 딴 길로 새지 않도록 짧은 간격으로 이정표를 찍어 전송하도록 요구하기도 했다. C 씨는 특별한 일이나 지시가 없을 때도 두 사람의 평소 동선을 꼼꼼히 보고받았다.

A 씨의 고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아픈 몸을 이끌며 공사장으로 나갔다. C씨의 지시였다. 막노동으로 돈을 벌어 자신에게 보내라고 시킨 것이다. A 씨의 친구 B(57) 씨도 마찬가지였다. 지자체 자활 근로자인 B 씨는 주중 근무의 피로도 풀지 못한 채 주말마다 건설 현장으로 출근했다. 두 사람이 번 돈은 고스란히 C 씨 계좌로 꽂혔다. 수년에 걸친 심리 지배의 결과였다. 무리한 노동 강요로 몸이 갉아 먹히고, 일말의 자기 시간조차 허용하지 않는 ‘24시간 대기’ 강압에 정신이 옥죄여도 두 사람은 차마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생각을 품지 못했다.

부산역 노숙인. 위 이미지는 본문과 상관 없음. 국제신문 DB

두 사람의 삶은 너무나 갑작스럽게 땅 아래 지옥으로 던져졌다. B 씨는 2018년 무렵 부산역 일원에서 노숙 생활을 했다. 대학을 나온 뒤 생계를 위해 여러 일에 종사했지만, 행운이 따르지 못했다. A 씨와는 노숙인 지원 단체의 도움으로 부산 동구 한 고시원을 얻으면서 인연을 맺었다. 당시 A 씨는 고시원 총무로 일하며 생계를 꾸렸다. 불운하게도, C 씨 또한 같은 고시원에서 살았다. 같은 곳에 산다는 ‘인연’으로 C 씨는 두 사람에게 자주 술을 강권했다. 머지않아 술값을 갚아달라는 둥 금전적 강압을 수시로 해왔다. 그의 말을 듣지 않을 땐 즉각적인 응징이 뒤따랐다.

▮피해자 몸·정신은 여전히 ‘구속 상태’

C 씨는 자신이 조직폭력배 행동대장으로 활동했다고 입버릇처럼 읊었다. 지금도 그들과 연락이 닿는 것처럼 ‘조폭 사무실’을 언급하며 말을 꾸몄다. 심리 지배를 통해 C 씨는 두 사람의 보스가 되려 했다. 서열을 가려야 한다며 두 사람을 강제로 싸움 붙였고, 말을 듣지 않으면 응급실에 실려 가야 할 정도로 때렸다. 두 사람이 일해 번 돈은 물론, 기초생활수급비나 장애 수당까지 모두 ‘상납’받았다.

그러나 C 씨의 말은 전부 거짓이었다. 두 사람은 허상의 공포에 떨어왔다. 사실을 알게 된 지금도 B 씨 마음속엔 깊은 두려움이 심어 넣어져 있다. 이런 일을 당해 마땅한 잘못이 두 사람에겐 없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살길을 찾아 고군분투해 왔을 뿐이었다. 그야말로 불운, 악연이었다. 어쩌면 찬바람 맞으며 집 없이 살 때가 더 마음 편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럼에도 둘은 C 씨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가 말한 조폭이 자신들을 공격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창원해양경찰서 전경. 국제신문 DB


해경 수사가 시작된 뒤 C 씨는 더 이상 B 씨에게 연락하지 않는다. 경찰 또한 혹여 B 씨에게 접촉하는 상황에 대비해 경찰이 둘을 예의주시한다. 이제 B 씨의 몸과 정신은 자유로워졌을까. B 씨는 “연락이 오지 않은 지 꽤 됐지만 아직도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그간의 일을 조금이라도 언급하는 것 자체가 두렵고 하기 싫다”며 “더 이상 연락이 안 오니 이 정도에서 정리가 됐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고 전했다.

현재 해경은 C 씨에게 절도와 강도 혐의를 적용해 조사를 이어 나가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C 씨를 긴급체포해 신병을 확보했지만, 창원지검 통영지청의 불승인으로 곧 그를 풀어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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