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보니] 낙동강 페놀 사태 ③ 정부 '솜방망이 처분'에 2주일 만에 다시 페놀 유출 | 시민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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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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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두산전자에 30일 조업 정지 처분했지만 17일 만에 해제했고, 2주일 뒤 다시 페놀 유출···'물 사 먹는 시대' 본격 시작

정부, 두산전자에 30일 조업 정지 처분했지만 17일 만에 해제···2주일 뒤 다시 페놀 유출
당시 언론 보도가 이어지자 정부도 뒤늦게 조사를 나섰는데요, 검찰은 두산전자 간부 6명을 구속하고 대구시는 상수도 관련 공무원 10여 명을 징계하고 환경처는 두산전자에 조업 정지 30일 처분을 내리는 걸로 사태를 수습하려 했습니다.

김수박 시사만화가 "하지만 30일간의 조업 정지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두산전자는 전기회로기판 공급에 차질이 생겼다면서 정부에 선처를 부탁했다고 해요. 당시 재계에서도 수출길을 더 걱정했다고 하는데요, 4월 8일 환경처의 행정심판위원회는 전자업계의 수출 타격과 함께 '현지 확인 결과 사고 재발 대책이 완비되었음'을 이유로 조업 정지를 17일 만에 해제합니다. 그러고는 고작 2주일 뒤인 4월 22일에 다시 페놀 1.3톤이 유출됩니다"

추가 유출 사건으로 더 난리가 났고, 검찰이 두산전자에 대해 더 정밀하게 조사를 한 결과 훨씬 더 놀라운 사건이 드러납니다. 사건이 발생하기 9개월 전부터인 1990년 6월부터 총 325톤의 페놀이 무단 방류됐던 겁니다. 페놀 폐수는 전량 소각 처리해야 하는데, 소각로 두 개 중 한 개가 고장 나자 폐드럼통에 보관하다가 하루 2.5톤씩 무단 방류를 했다는 건데요, 당시 정화 비용이 500여만 원이었는데, 이를 아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찬호 사회학자 "당시 기업들의 환경 파괴 행위에 대해 얼마나 안일하게 생각했냐면요, 환경 오염 규제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 문제가 너무 미미하다 보니 환경 처리 비용보다 얼마간의 벌금이나 위로금을 내는 것이 기업에 훨씬 이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법이 효력이 없었던 거죠"

이재용 전 환경부 장관 "두산전자는 조업 중단에 따른 경제적 손실 이외에도 상수도 요금 감면 등의 명목으로 대구시에 13억여 원을 지불하고 시민 1만여 명에게 11억 원, 환경분쟁조정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3억 5,200만 원 등을 내고 당시 그룹회장은 물러났습니다. 한 명당 11만 원 정도의 보상 수준밖에 되지 않잖아요? 이렇게 큰 사고를 두 번이나 연달아 일으키고도 제대로 된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고 볼 수밖에 없죠"


'물 사 먹는 시대' 본격 시작···생숫값이 경윳값보다 비싸
페놀 유출 사건으로 바뀐 것 중 하나가 물을 사 먹는 시대가 시작된 겁니다. 당시에 페놀 유출 사태가 일파만파로 알려지면서 가게의 생수가 동이 나고 청량음료나 우유의 판매도 급증했습니다. 당시에 생수가 불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생수 업체마다 정기 배달 주문이 쇄도했다고 합니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생숫값이 14% 인상하면서 생숫값이 경윳값보다 18.9리터 기준 6백 원 이상 비싸지게 됐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신재호 경북대 농업생명과학대 응용생명과학부 교수 "물을 돈 주고 사 먹는다면 모두가 농담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입니다. 마치 지금 공기를 돈 내고 사서 호흡한다면 웃긴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겠죠? 페놀 사건 이전에는 극히 일부 상류층들이 외국에서 수입한 물을 사 마신다는 소문이 있었고, 나중에 보니까 88년 서울 올림픽 때도 외국인들을 위해서 병에 생수를 넣어서 공급하기도 했더군요. 하지만 91년 당시에는 정부가 수돗물에 대한 근거 없는 불신, 저소득층의 반발, 사회적 위화감 조성 등의 이유로 내국인에게는 생수 판매를 금지했습니다. 그러다가 낙동강 페놀 사태 이후로는 국민들이 가만있지 않았죠. 제 기억에도 깨끗한 물을 얻기 위해서 전국의 약수터에 아침마다 줄을 서고, 생수 담는 통이 불티나게 팔려나갔어요. 결국의 깨끗한 생수를 먹을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는 국민들에 의해서 94년 정수기 성능 기준이 마련되고 생수 시판도 허용됐습니다"

본격적으로 물을 사 먹는 시대에 접어들면서 환경부에서는 생수 시판을 앞두고 1리터 이하의 생수 용기를 처음에는 유리병으로 의무화하는 것을 검토했습니다. 페트병은 환경 오염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는데요, 유리병은 무겁고 휴대가 어렵고 병값이 비싸다는 이유로 결국 철회가 됐다고 합니다.

오찬호 사회학자 "사실 생수 사 먹는 시대에 플라스틱 문제 말고도 불편한 진실이 많아요. 물이라는 공공재가 기업의 이윤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 있고 생수 회사의 '청정' 광고가 늘어난 만큼 수돗물 불신은 커지겠죠. 실제 미국의 생수 회사는 '수돗물은 독약'이라고까지 광고한다고 하는데요, 20세기 최고의 마케팅 성공작이 생수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또한 지하수 고갈 문제가 있는데요, 인도에서는 지하수 고갈의 원인으로 지목된 코카콜라 공장을 폐쇄하기도 했습니다"


환경운동연합 창립·환경처→환경부 승격···2002년에는 낙동강 특별법 제정
환경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1994년에는 '환경처'가 '환경부'로 승격했고, 이보다 앞선 1993년에는 '환경운동연합'도 창립했습니다. 정부 차원에서 낙동강의 수질 개선을 위한 여러 대책이 나왔고, 2002년에는 낙동강 특별법이 제정되기도 했습니다.

낙동강을 관리하고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진 낙동강 특별법은 상수원과 상류 하천에 구역을 설정해 배출할 수 있는 오염의 총량을 제한하고, 수계의 물을 수돗물로 이용할 경우 부담금을 부과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김수박 시사만화가 "당시에 법안 개정을 놓고 낙동강 상류 지역인 대구·경북과 하류인 부산·경남 간의 대립도 격렬했고 해당 지역 주민들과도 논쟁이 많았다고 합니다. 식수와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지만 해당 지역 주민들에겐 생업과도 연관이 되는 문제이거든요? 만약 저라도 '내일부터 물 사용료를 내라'거나 농사를 짓는데 '비료 쓰지 말라'거나 이런 압박이 들어오면 불편할 거 같아요"

실제로 이런 갈등 탓에 원안에 비해 다소 완화된 법안이 통과돼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범국민적으로 환경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서 법안이 시행된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수질과 관련된 사업들은 대부분 이 사건 이후로 추진됐는데요, 하수처리장 건설과 하수관로 정비, 오염 하천 정화 등 기초적인 환경 사업이 추진되기 시작했고, 상수원 보호구역의 토지 매입, 유역통합관리시스템 등 선진 물관리 제도와 기술이 도입되기 시작했습니다.

* '시민의 품격', 대구MBC 매주 목요일 밤 9시 방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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