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톡] 폭탄돌리기식 '문자' 공방, 尹 대통령-김건희-한동훈 누가 더 손해?

입력
기사원문
황해동 기자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대전일보 DB
영부인 김건희 여사의 문자메시지가 정치권을 넘어, 온 나라를 뒤덮고 있다.

김 여사가 총선 정국이던 올 1월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명품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겠다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최근 언론을 통해 공개됐는데, 한 전 위원장이 이에 답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논란의 핵심은 김 여사가 문자를 통해 사과의 뜻을 내보였는데 지속적으로 '무시'하면서 사과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주장(친윤)과 김 여사가 사실상 사과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며 사적 소통이 부적절하다는 주장(친한)으로 모아진다. 한 전 위원장의 정무적 판단이 총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옳았는지에 대한 시각차다. 문자를 보낸 1월은 야권을 중심으로 '김건희 리스크'가 꾸준히 거론되고 여권에서도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나오던 시점이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후보 간의 갈등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감지된다. 총선 참패 후에도 당 대표에 도전장을 내민 한 후보를 솎아내기 위한 전략적 방책일 수 있다는 것. 이 대목에서 둘 사이의 문자를 누가 어떤 경로를 통해 공개했는가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다. 김 여사가 공개했다면 명백한 '당무개입'으로 볼 수 있다. 만약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승리했다면 이러한 난장이 빚어졌을까라는 의문도 남는다.

문자메시지로 인해 촉발된 이른바 '읽씹'(읽고 답장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비속어) 논란은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을 초유의 분열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특히 당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시점에서 불거진 논란으로 '하필이면…'이라는 의구심까지 덧대어지는 상황이다. 시점에 대한 갑론을박은 '친윤'(친 윤석열)과 '친한'(친 한동훈) 사이의 계파적 갈등으로 이어지면서 전당대회가 진흙탕이다. 국민의힘 내부 일각에서는 '자해적 수준'이라는 자조적 비판까지 일고 있다.

김재섭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8일 7·23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한 한 후보의 '김건희 여사 문자 무시' 논란에 대해 "대통령실의 전당대회 개입"이라며 "최종적인 책임은 대통령실에 있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문자 논란의 본질은 '당무개입'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당 차원에서 적절히 대응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연일 여당과 김 여사를 향한 가시 돋친 비난을 쏟아내는 데 여념이 없다.

대전일보 DB
보낸 이가 영부인이고, 받은 이가 총선을 진두지휘하고 있던 집권 여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이고, 시점이 총선정국이었다는 점 등에서 결코 허투루 넘겨서는 안 되는 정치적 함의를 밝혀야 한다는 점에는 수긍이 된다.

하지만 정치권은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들 사이에서 격론이 벌어지고 있는 문자의 진의와 '명품백 수수' 논란에 대한 김 여사의 사과 여부를 지난 총선의 유·불리 포인트로만 따지고 있다.

실제 한동훈·원희룡·나경원·윤상현 4명의 후보 모두 9일 열린 첫 TV토론회에서 '김건희 여사가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 사과했다면 총선 결과가 달라졌겠느냐'는 질문에 모두 '그렇다'라고 답했다.

이들에게 국민들의 허탈감을 돌아볼 여유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점에서는 분노감을 지우기가 쉽지 않다. 온 신경이 김 여사의 당무개입 여부와 윤석열 대통령-김건희 여사-한동훈 후보 3명의 얽힌 인연, 여당 대표를 둘러싼 계파 간 갈등 등에 모아져 있다.

문자 공방의 진의를 밝혀야 할 당사자는 김 여사 또는 대통령실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문자에 대해서는 함구로 일관한다. 김 여사의 개인적 의견임을 강조할 뿐 "대통령실은 여당 전대에 일체의 개입과 간여를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대통령실을 선거에 끌어들이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여달라"고 했다. 자신들은 이번 일과 무관하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 말은 객관적 사실은 물론 상식에도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한겨레신문은 '김영희 칼럼' 코너를 통해 김 여사 문자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을 조선시대 예송논쟁에 빗댔다. 예송논쟁은 효종의 계모인 자의대비(조 대비)가 상복을 얼마동안 입어야 하느냐를 두고 당시 붕당정치의 주역인 서인과 남인 사이에서 벌어진 논쟁이다. 주자학의 예(禮)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논쟁의 표면적 이유였지만, 결국 정치적인 귀결로 이어지면서 조선시대를 혼란으로 빠트렸다.

칼럼은 보수정당 내부의 분열 상황을 '그들만의 권력 다툼'이라고 진단하고, 갈등이 반복·격화되면 예송논쟁처럼 정국을 집어삼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과제가 산적한 우리 사회가 영부인 논란에 3년을 보낼 순 없다. 문자가 진심이라면 김 여사 스스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일갈했다.

정치권의 문자 논란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정치권을 향해 한심하다는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국민의힘 지지층도 전당대회가 문자 논란으로 뒤덮여 심각한 분열 양상에 이른 모습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 전모를 밝혀내야 할 대통령실을 향해서는 "정치의 본질을 흐리고 있는 장본인"이라고 질타한다. 이번 사태가 가뜩이나 정치혐오 습속이 강한 국민들의 반정치적 성향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대전일보 DB
다음은 김 여사가 올 1월 15일부터 같은 달 25일 사이에 한 전 위원장에게 보낸 다섯 개 문자의 원본.(일부 오탈자 수정. 출처 TV조선)

2024년 1월 15일=요새 너무도 고생 많으십니다. 대통령과 제 특검 문제로 불편하셨던 것 같은데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정치적으로 활용되고 있어 기분이 언짢으셔서 그런 것이니 너그럽게 이해부탁드립니다 ㅠㅠㅠ 다 제가 부족하고 끝없이 모자라 그런 것이니 한 번만 양해해 주세요. 괜히 작은 것으로 오해가 되어 큰 일 하시는 데 있어 조금이라도 불편할 만한 사안으로 이어질까 너무 조바심이 납니다. 제가 백배 사과드리겠습니다. 한번만 브이랑 통화하시거나 만나시는 건 어떠실지요. 내심 전화를 기다리시는것 같은데 꼭좀 양해부탁드려요.

2024년 1월 15일=제가 죄송합니다. 모든 게 제 탓입니다. 제가 이런 자리에 어울리지도 자격도 안 되는 사람이라 이런 사달이 나는 것 같습니다.죄송합니다.

2024년 1월 19일=제 불찰로 자꾸만 일이 커져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제가 사과를 해서 해결이 된다면 천 번 만 번 사과를 하고 싶습니다. 단 그 뒤를 이어 진정성 논란에 책임론까지 불붙듯 이슈가 커질 가능성 때문에 쉽게 결정을 못하는 것 뿐입니다. 그럼에도 비대위 차원에서 사과를 하는 것이 맞다고 결정 내려주시면 그 뜻에 따르겠습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책임이 저에게 있다고 충분히 죄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대선 정국에서 허위기재 논란으로 사과 기자회견을 했을 때 오히려 지지율이 10프로 빠졌고 지금껏 제가 서울대 석사가 아닌 단순 최고위 과정을 나온거로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사과가 반드시 사과로 이어질수 없는 것들이 정치권에선 있는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모든걸 위원장님 의견을 따르겠습니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2024년 1월 23일=요 며칠 제가 댓글팀을 활용하여 위원장님과 주변에 대한 비방을 시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너무도 놀랍고 참담했습니다. 함께 지금껏 생사를 가르는 여정을 겪어온 동지였는데 아주 조금 결이 안 맞는다 하여 상대를 공격할 수 있다는 의심을 드린 것조차 부끄럽습니다. 제가 모든걸 걸고 말씀드릴 수 있는건 결코 그런 일은 없었고 앞으로도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김경률 회계사님의 극단적인 워딩에 너무도 가슴이 아팠지만 위원장님의 다양한 의견이란 말씀에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전에 말씀드렸듯이 제가 너무도 잘못을 한 사건입니다. 저로 인해 여태껏 고통의 길을 걸어오신 분들의 노고를 해치지 않기만 바랄뿐입니다. 위원장님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과' 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시면 제가 단호히 결심하겠습니다.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여러가지로 사과드립니다.

2024년 1월 25일=대통령께서 지난 일에 큰 소리로 역정을 내셔서 맘 상하셨을거라 생각합니다. 큰 맘먹고 비대위까지 맡아주셨는데 서운한 말씀 들으시니 얼마나 화가 나셨을지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다 저의 잘못으로 기인한 것이라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조만간 두 분이서 식사라도 하시면서 오해를 푸셨으면 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정치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 현장르포' 뉴스人
  • 줌인(Zoom in)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
댓글

대전일보 댓글 정책에 따라 대전일보에서 제공하는 정치섹션 기사의 본문 하단에는 댓글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