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서점은 지역사회 역사·문화 담긴 지식 전달의 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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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6.04. 오전 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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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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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문고 이동선 대표, 지역서점 살리기 힘쏟아
지역 문화예술계 등 각계 지혜 모아 해법 마련을
지역서점 살리기 나선 계룡문고 이동선 대표
계룡문고 이동선 대표는 지역서점이 교육과 문화의 공간이고 독서복지의 현장이라고 말한다. 사진=김재근 선임기자
"현재 대전시 중구 선화동에서 대흥동, 산내에 이르기까지 서점이 몇 개나 있습니까. 원도심 동구와 중구는 거의 서점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살아남은 서점도 생존을 위해 문구점이나 아이스크림 가게를 겸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대전의 계룡문고 이동선 대표는 요즘 지역서점의 명맥을 잇기 위해 별의별 노력을 다하고 있다. 시민주주 운동을 벌이다가 여의치 않자 후원회원을 모집하고, 지역사회와 함께 대안을 찾기 위해 힘쓰고 있다.

디지털 시대 오프라인 서점의 운명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다. 이대로 10여년 흐르면 대전에서 동네 서점이 멸종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온라인 서점이 확산되면서 대기업 프랜차이즈 서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룡문고는 각종 도서 15만여 권을 구비한 중부권 최대 서점이다.
□ 온라인서점, 컴퓨터게임 확산… 지역서점 급감

"동네서점은 온라인서점과 달리 누구나 와서 직접 책을 읽어보고 고를 수 있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여러 가지 책을 보며 독서하는 습관을 배우고 꿈을 키우는 곳입니다. 어른들도 자기계발이나 취미, 전문서적 등을 대할 수 있는 정보와 지식 전달의 창구이고 휴식공간입니다."

지역서점은 고객이 현장에서 책을 읽고 쉴수도 있는 독서와 휴식공간 역할도 한다. 사진=김재근 선임기자
이 대표가 운영하는 계룡문고는 중부권 최대 지역서점으로 역사가 30년이 돼간다. 1986년 서점유통에 뛰어들어 은행동 유락백화점에 처음 서점을 열었고, 2007년 선화동 226번지 건물 지하 1층으로 이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전의 유명서점이었던 문경서적이 2003년, 56년 역사의 대훈서적이 2009년, 2대 40여년 책을 팔아온 동국서점도 문을 닫았다. 2009년 300개였던 대전의 서점은 2013년 167곳, 2023년에는 94곳으로 줄어들었다.

"인터넷서점과 홈쇼핑에서 책값을 30~40% 할인하면서 오프라인 서점들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1997-2001년 IMF 외환위기 때 또 한번 꺾였고, 컴퓨터와 핸드폰이 널리 보급되면서 결정타를 맞았습니다. 초중고생은 물론 어른들조차 게임에 빠지고,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보내는 시대가 됐잖아요."

그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도 책의 역할과 기능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그래서도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한권의 책마다 잘 정제된 정보와 지식을 담고 있으며, 인간으로 하여금 많은 사고와 생각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좋은 글들이 갖는 정서적 감동과 안정을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오랜 세월 운영해온 계룡문고가 어려움에 처하자 온갖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최근 그는 제2차 후원회원 모집에 나섰다. 5월 8일부터 9월 30일까지 후원금을 받아 전산시스템 업그레이드, 공유책방 설치, 새로운 브랜딩 작업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후원회원에게는 계룡문고 특별회원으로 책 구매시 10% 적립, 각종 문화행사 참여 우선권 제공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이에 앞서 계룡문고는 1차 후원회원 모집을 통해, 6500만원의 재원을 마련한 바 있다. 이 후원금으로 밀린 임대료 일부를 냈지만 매출 감소에 따른 고질적인 경영난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동선 대표는 독서하는 재미를 가르치기 위해 학교를 찾아 책 읽어주기 봉사활동을 해왔다. 사진=계룡문고
□ 후원금으로 임대료 일부 갚아, 앞길 더 험난

이 대표는 당초 시민들이 주주로 참여하는 시민주주 운동을 추진했으나 복잡한 법적 절차 때문에 중단했다. 금감원에서 50인 이상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주주를 모집하려면 사전에 신고하고, 적격심사를 거쳐야 한다고 해서 그만뒀다.

그가 계룡문고 살리기에 전력하는 것은 서점이 그의 인생이고, 지역사회 서점이 갖고 있는 역할과 기능을 누군가는 이어가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책을 사지 못하는 학생이 늘 서점에 와서 책을 읽고 나중에 명문대에 합격한 것을 봤습니다. 대전시내 어느 중학교는 전교생이 서점을 단체로 견학한 뒤 독서하는 습관이 길러져 학력이 최고 수준으로 급성장한 일도 있었고요."

계룡문고가 간단한 행사와 북콘서트 등을 위해서점 안에 설치한 공간.
그는 서점은 단순하게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고 본다. 지역사회 교육문화 공간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대표는 이런 믿음 때문에 '책 읽어주는 서점'을 내세우며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동화작가와 시인, 소설가를 초청하여 북 토크 콘서트를 열고, 학부모와 교사를 위한 독서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대전과 세종, 충남의 유치원과 초중고교, 마을회관, 보건소 등을 찾아 책을 읽어주는 봉사활동도 벌였다. 지역의 학생들이 서점을 찾아 독서하는 법을 배우고 책도 구경하는 견학 프로그램도 펼쳐왔다. 서점 안에 진로 교육에 필요한 책을 모아놓은 공간도 운영했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2022년 9월 독서문화상 대통령상을 받았다.

계룡문고는 수시로 유명 아동문학가와 시인, 작가 등을 초청, 북콘서트를 연다. 사진=계룡문고
□ 지역사회·지자체 지혜 모아 대안 마련을

지역서점 살리기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나섰다. 각계 인사와 문화예술계는 물론 단골고객과 일반시민이 후원회원으로 가입했다. 최근에는 논술지도에 종사자들이 "서점을 꼭 지켜달라."며 1000만원을 모아 전달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한다. 대전의 각계 인사 20여 명이 '책 읽는 대전 만들기 시민모임(책대모)'을 만들어 힘을 보탰다.

"서점은 정보와 지성이 흐르는 교육과 문화의 공간입니다. 시민 누구나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자연스럽게 보편적 문화복지가 펼쳐지는 공간입니다."

대전 시민들은 계룡문고가 어떤 식으로든지 생존해야 한다는데 공감하고 있다.

김정미씨(45, 서구 둔산동)는 "중고등학생 때 성심당에서 빵을 사고, 계룡문고 들러 책을 사곤했다"며 "대전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공간을 꼭 보전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계룡문고가 오는 9월 30일까지 후원회원을 모집한다.
전문가들은 계룡문고를 살리기 위해 대전시와 중구청, 지역사회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과거 소제동 철도 관사촌과 대흥동 뾰족집 등이 훼손, 철거된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세계적인 서점과 도서관을 거론한다. 800년 된 교회를 개조한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의 도미니카넌 서점,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나선형 계단으로 유명한 포루투갈 포르트의 렐루서점 등은 서점을 넘어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일본 사가현 다케오시립도서관과 가나자와시의 우미미라이도서관, 이시가와현립도서관 등은 아름다운 건축미로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대전 원도심 살리기의 방향성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재개발과 재건축을 통한 아파트 건축, 대형 토목사업과 건축물 조성 등에 집중되면서 대전의 정체성과 문화를 간직한 자원을 홀대,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대로 방치하면 대전 원도심은 제대로 된 서점 하나 없는 삭막한 도시가 될 수도 있다. 무지 혹은 무관심이 대전의 역사와 문화, 향기를 담은 소중한 자산이 사라지도록 방조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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