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와 3개 시민단체(세금도둑잡아라, 정보공개센터, 함께하는시민행동), 그리고 5개 독립언론·공영방송(경남도민일보, 뉴스민, 뉴스하다, 부산MBC, 충청리뷰)이 ‘검찰예산검증 공동취재단’(공동취재단)을 꾸려 사상 처음으로 전국 67개 검찰청의 특수활동비 예산 검증에 들어갔습니다. 검찰의 특수활동비 부정 사용과 오남용에 관한 공동취재단의 취재 결과를 공개합니다. - 편집자 주
뉴스타파가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의 5년 8개월 치 특수활동비 기록 약 700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감사원 지침을 준수하는 구체적 특활비 사용 내역이 기재된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 혈세로 마련된 특활비는 기밀을 요하는 직접적인 정보·수사 활동에만 쓰되 반드시 구체적인 내역을 남겨야 하지만, 검찰은 이를 철저히 무시한 것이다.
또 고양지청의 특활비 사용 내역에서 어떤 사건이나 목적에 썼는지조차 알 수 없는 부실증빙 사례뿐만 아니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조차 부인했던 ‘연말 몰아쓰기’ 의혹의 구체적 정황까지 확인됐다. 이 같은 특활비 오남용 및 부실증빙 사례는 고양지청뿐만 아니라 전국 모든 지방검찰청에서도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을 개연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스타파가 법원의 확정판결에 따라 확보한 고양지청의 특수활동비 기록은 2017년 9월부터 2023년 4월까지, 68개월간 869건이다. 고양지청은 특정 패턴이 찍히는 도구를 이용해 특활비 집행내용 등을 가림 처리 했지만, 뉴스타파는 이 가운데 697건(부분 판독 64건 제외) 내용을 판독했다. 집행내용을 해독한 건수는 80.2%에 달하며, 지출 금액으로는 2억 5,800만 원이 넘는다.
검찰은 여느 정부 기관과 마찬가지로 감사원 계산증명지침을 기준으로 삼아 현금으로 특수활동비를 사용할 경우,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증빙 기록인 집행내용확인서 등을 반드시 남겨야 할 의무가 있다. 지급일자, 지급금액, 지급상대방뿐만 아니라 지급사유까지 구체적으로 기록해야 한다. 만약 지급사유를 구체적으로 기재함으로써 수사 및 정보수집활동에 심각한 지장이 발생할 경우 집행내용 확인서를 생략할 수 있지만, 기관장이 이를 확인하는 별도의 절차를 밟도록 하고 있다. 즉, 철저한 기밀 유지가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특활비를 사용한 이는 반드시 구체적인 지급사유까지 남겨야 한다.
말단 수사관부터 지청장까지, 일상적인 부실 증빙
뉴스타파가 판독해 낸 697건의 고양지청 특활비 기록 가운데 집행내용확인서가 생략된 경우는 단 2건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이 2건을 제외한 나머지 695건의 특활비 기록에는 어떤 수사나 목적으로 특활비를 어떻게 썼는지 구체적인 내용이 기록돼 있어야 한다. 그러나 확인 결과, 어떤 수사나 정보수집 활동에서 어떤 이유로 특활비를 쓸 수밖에 없었는지 모두 기재된 기록은 단 한 장도 발견되지 않았다.
해독한 특활비 695건(집행내용확인서 생략 2건 제외)의 지급 사유 전부가 ‘강력범죄 관련 수사활동 경비지원’ ‘고액벌금 미납자 집행활동 지원’ ‘공공수사사범 정보교류 활동 지원’ ‘2021형제*****호 수사활동 지원’ 등 추상적이고 두루뭉술하게 기록돼 있었다. 특활비 집행 부실 증빙이 일상화된 것으로, 구체적으로 남겨야 한다는 감사원 예산증명지침을 고양지청이 위반한 것이다.
확인된 부실증빙의 가장 심각한 경우는 기밀 수사 과정에서 특활비를 어떻게 썼는지는 물론, 어떤 수사에 썼다는 가장 기본적인 내용조차 확인할 수 없는 사례들이다. 예를 들어 고양지청은 2017년 12월 6일 각 100만 원씩 300만 원의 특활비를 3명에게 지급하고 집행내용확인서를 남겼다.
그러나 지급 사유란에는 ‘수사업무 지원’, 단 여섯 글자만 적혀 있었다. 이 같이 ‘수사활동 지원’, ‘공판활동 지원’ 등 극히 추상적이고 단순한 내용만으로 기재된 집행내용확인서는 695건 가운데 236건으로 33.9%에 달했다.
2021년 12월 14일 고양지청은 200만 원의 특활비를 누군가에게 지급했는데 판독 결과, 수령자는 다름아닌 당시 고양지청장이었던 박상진 검사였다. 박상진 전 지청장이 남긴 집행내용확인서상의 지급 사유는 ‘환경사범 관련 정보활동 및 수사활동 지원’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환경 범죄에 대한 정보활동이나 수사 활동을 했는지, 본인이 직접 기밀 활동을 했는지 등은 본인 말고는 전혀 확인할 수 없는 수준으로 지출기록을 작성했다.
지난해 7월, 고양지청장을 끝으로 변호사 개업을 한 박상진 전 지청장은 뉴스타파에 “지청장은 직접 수사하지 않고 수사 지휘만 한다”고 답했다가 취재진이 2021년 12월 14일 자 특활비 수령 사실을 꺼내자, “수사 지휘 또한 수사에 포함이 된다”며 말을 바꿨다. 구체적인 특활비 용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기자: 집행내용확인서에 환경사범 관련 정보활동 및 수사활동을 지원했다고 돼 있는데, 기관장인 지청장이 직접 수사를 하시나요?
■박상진 전 지청장: 지청장은 직접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수사 지휘를 합니다.
□기자: 기재부 예산 지침이나 감사원 지침에 따르면 특활비는 기밀 수사에 직접 소요되는 비용만 써야 하는데 직접 수사를 하지 않는 지청장님이 2021년 12월 특활비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박상진 전 지청장: 검찰 수사는 수사 지휘부터 직접적으로 조사를 하고 현장에서 뛰는 것까지 전체를 수사라고 합니다. 그 때 어떤 명목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납니다만, (수사 지휘를 포함해) 전체적인 걸 다 수사로 여기고, 그렇게들 집행을 하고 있습니다.
□기자: 지침에 따르면 특활비 지급 사유는 구체적으로 기재해야 하지만 지청장님께서 받아가신 부분은 두루뭉술하게 표현이 돼 있습니다.
■박상진 전 지청장: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받아 갔다고 해도 결국 다 일선에 수사비로 나눠줬거나 지원비로 사용이 됐을 것입니다."
- 박상진 전 고양지청장 전화 답변
앞서 뉴스타파는 2017년 12월 26일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이 일선 검찰청에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특수활동비 외에 4억 1천만 원의 특활비를 추가로 지급한 사실을 보도했다. 쓰고 남은 특활비를 국고로 반환하지 않고 연말에 몰아 썼다는 이른바 ‘13월의 돈 잔치’를 벌인 ‘연말 몰아쓰기’ 의혹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국회에 출석해 “당시 기밀 수사가 많았기 때문에 특활비가 지급된 것”이라며 의혹을 부인했다.
일선 검찰청의 수사 사건이 늘어났기 때문에 특활비 지급이 늘었을 뿐 검찰총장이 남은 특활비를 소진하기 위해 ‘연말 몰아쓰기’를 한 게 아니라는 한동훈 장관의 주장은 사실일까.
대검에서 전국 검찰청에 추가 지급한 특수활동비의 흔적은 고양지청의 특활비 기록에서도 뚜렷이 드러났다. 당시 문무일 총장의 대검찰청에서 특활비가 입금된 2017년 12월 26일, 고양지청은 모두 6명에게 800만 원의 특활비를 지급한다. 이틀 후인 12월 28일에도 한 명이 300만 원의 특활비를 받아, 사흘 만에 1,100만 원의 세금이 특활비로 지출됐다.
한동훈 장관의 말이 사실이라면 고양지청의 2017년 연말 특활비 기록에는 어떤 사건을 수사하던 중에 어떤 이유로 특활비를 쓸 수밖에 없었는지 기재돼 있어야 한다. 그러나 2017년 12월 26일부터 28일까지 7건, 총 1,100만 원의 특활비가 지급된 고양지청의 지출 기록에는 ‘검찰총장 수사지휘 지원’ ‘검찰총장 수사활동 업무 지원’ ‘검찰총장 국정수행 업무 지원’ 등의 문구만 확인됐다.
고양지청의 수사 요구에 의해 특활비가 지급된 것이 아니라, 검찰총장이 나눠준 특활비를 언제 얼마나 썼다는 기록만 남겨져 있었던 것이다. 한동훈 장관의 주장과 달리, 연말 몰아쓰기 의혹이 사실이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시민단체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하승수 변호사는 “고양지청이 필요해서 검찰총장에게 요청해 특활비를 받은 게 아니라, 검찰총장이 특활비가 남아서 돈을 나눠 줬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하 변호사는 “특수활동비 용도에 전혀 맞지 않는 일종의 부정 사용”이라며 “한동훈 장관이 사실상 거짓말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정황 증거”라고 지적했다.
경찰이 수사한 살인 사건에 검찰이 쓴 특활비
뉴스타파가 해독한 고양지청의 특활비 증빙 기록 695건(집행내용확인서 생략 2건 제외) 가운데 459건은 어떤 수사나 목적으로 특활비를 썼는지는 확인이 가능했다. 그러나 사건이나 정보 수집활동의 명칭만 기재됐을 뿐 어떤 이유로 특활비를 써야만 했는지는 여전히 확인할 수 없는 ‘반쪽’ 증빙에 그쳤다. 경찰이 주요 수사를 담당했던 사건에서도 고양지청이 뚜렷한 사유를 밝히지 않은 채 특활비를 사용한 내역이 대표적이다.
지난 2019년 8월 고양지청의 관할인 경기 고양시 한강 마곡 철교 부근에서 머리와 팔다리가 없는 ‘몸통 시신’이 발견됐다. 나머지 시신을 수색하고 지문을 확보해 용의자를 추적,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은 경기 고양경찰서의 몫이었다.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고양지청은 2019년 9월 16일 ‘한강 훼손 시신 사건 수사활동 지원’ 명목으로 100만 원의 특활비를 지급했다. 그러나 고양지청은 이 사건의 어떤 기밀 수사나 정보수집 활동에 특활비를 썼는지는 구체적으로 기재하지 않았다.
올해 1월에는 관할 일산 동부경찰서로부터 택시운전사와 동거 여성을 살인한 혐의를 받는 ‘이기영’ 사건을 넘겨받았다. 경찰은 사건 현장을 조사해 범인의 동선을 확보하고 추가 CCTV 영상분석을 통해 용의자 이 씨를 체포했다. 그런데 고양지청은 1월 20일 ‘이기영 연쇄살인 사건 수사 활동 지원’ 명목으로 300만 원의 특활비를 지출했다.
‘몸통 시신’, ‘이기영 사건’ 모두 사건 발생부터 범인 검거까지 경찰이 주요 수사 과정을 도맡은 것으로 확인되지만, 해당 사건에서 검찰이 어떤 기밀 수사 활동을 벌였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특활비 집행 사유에는 각각 ‘한강 훼손 시신 사건 수사활동 지원’, ‘이기영 연쇄살인 사건 수사 활동 지원’으로만 적혀 있을 뿐이다. 기밀 수사에 써야 할 특활비로 어떤 ‘지원’을 했는지는 적지 않았다.
그 밖에도 고양지청의 특활비 증빙 기록에서는 형사 사건 고유 식별 정보인 이른바 ‘형제 번호’가 기재된 사례도 433건이나 확인됐지만, 마찬가지로 해당 형사 사건에서 왜 특수활동비를 썼어야만 했는지 구체적인 사유는 남아있지 않았다.
오유진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선임간사는 “고양지청 사례는 대부분의 사람들로 하여금 ‘왜 이걸 특활비로 썼을까’라는 의심이 들게 할만큼 검찰의 치부에 해당한다”며 “시민들과 국회의 감시조차 거부한 채 오로지 수사 기밀이라는 단어 하나로 자신들을 방어하는 검찰의 모습을 보면, 연간 80억에 달하는 특활비가 어떻게 쓰이고 있을지 크게 우려된다”고 말했다.
결국, 뉴스타파가 판독한 고양지청 695건(집행내용확인서 생략 2건 제외)의 특활비 기록 내용을 통해 확인한 것은 검찰이 주장했던 ‘외부에 알려져선 안 되는 수사 기밀’이 아니라 정부 기관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특활비 예산 지침 위반의 증거’였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한 해 검찰이 쓰는 특활비는 2023년 기준, 약 80억 원이다. 곧 국회에서 내년도 검찰 특활비 예산안을 심의 의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