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캐스트, 극한의 날씨와 허리케인·태풍 등 정밀하게 예측해
시사저널은 새해부터 '김형자의 세상은 지금'을 새롭게 연재합니다. 새 연재에서는 AI 등 기술혁명, 기후위기와 같은 환경 변화 대응 등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지혜를 공유하게 됩니다. 필자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는 청소년 과학잡지 'Newton' 편집장을 지냈고, 《KBS과학카페》 《지구의 마지막 1분》 등 숱한 과학 전문서적을 출간했으며, 서울대 과학영재교육원 등과 여러 언론매체에서 활발한 강연 및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다사다난했던 2024년이 저물고 을사년 새해를 맞는다. 해마다 새해 첫날이면 전국의 일출 명소에는 신년 소원을 빌려는 수많은 인파로 북적인다. 영하의 추위를 뚫고 이른 아침부터 산과 바다를 찾은 사람들은 떠오르는 해를 보며 올 한 해도 순탄하기를 기원한다. 이때 운 좋게도 날씨가 받쳐줘 선명하게 드러난 일출의 장관을 볼 수 있다면 그야말로 행운이 아닐까. 기상청은 1월1일 전국적으로 맑은 날씨에 강한 바람이 불지 않아 해돋이를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 될 것 같다고 예보하고 있다.
잦은 기상 변화로 완벽한 날씨 예측 어려워
평소에도 주말이나 연휴가 다가오면 사람들은 일기예보를 참고해 여행 계획을 짠다. 그런데 갑자기 폭우나 폭설이 쏟아져 예보가 빗나가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어떤 사람들은 "피곤한데 잘됐다, 며칠 푹 쉬자"며 여행 가기를 단념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들은 "오늘 또 일기예보가 틀리네"라고 한탄하며 그대로 진행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기예보의 정확성은 이렇게 우리의 일상생활과 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우산을 챙겨 나가야 할지, 세탁기를 돌려야 할지,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할지 등의 판단 기준이 되고, 농업·항공·어업 종사자 등 기후변화에 큰 영향을 받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생사의 문제와 직결된다. 정부나 지자체는 재난 경고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이 때문에 세계의 기상청은 예보 적중률을 높이기 위해 365일 하늘과 땅, 바다, 우주에서 인공위성, 기상관측소, 부표를 통해 온도·습도·풍속·강수량 등 정보를 수집한다. 이렇게 수집한 기상 자료를 슈퍼컴퓨터로 전송하면, 슈퍼컴퓨터가 지구를 작은 크기의 위도와 경도로 세분화하고 격자화한 뒤 복잡한 방정식을 이용해 특정 격자의 기상 상태를 수없이 계산한 다음 시간 경과에 따른 일기예보를 생산한다.
슈퍼컴퓨터가 현재 날씨 자료를 통해 미래 대기 상태를 시뮬레이션해 예측하면 기상예보관들은 이 정보를 분석해 특정 지역에 대한 날씨를 전망한다. 일기예보는 엄청난 계산 속도의 슈퍼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수치 예보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지구의 날씨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므로 100%의 완벽한 날씨를 예측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다. 설상가상 지구온난화로 인한 극심한 기상 현상이 빈번해지면서 지구 기울기, 흔들림, 바람, 비, 구름, 기온과 기압 등의 변수가 워낙 많아져 최고 수준의 슈퍼컴퓨터 일기예보 시스템도 빗나가는 예측을 할 때가 많다. 며칠 후의 날씨 예보조차 불확실성이 높다. 이러한 사정은 기상 선진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슈퍼컴퓨터의 성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충분한 양의 데이터가 입력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네트워크로 연결돼 충분한 양의 데이터를 입력받을 수 있게 된 슈퍼컴퓨터라도 그 데이터가 정확하거나 자세하지 않다면 유용한 분석을 내놓을 수 없다. 기상청이 지금도 어려워하는 일기예보가 1㎢ 단위로 1시간마다 기온과 강수량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일이다.
기후변화로 극심한 기상 현상이 더 많아진 지금, 지구촌은 그 어느 때보다 좀 더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일기예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과학자들과 기상기관은 인공지능(AI) 모델을 활용한 일기예보 예측에 대한 관심이 높다. 슈퍼컴퓨터에 기반한 기후 예측 모델이 수학적 분석에만 의존해 답을 구한다면, AI 모델은 기후의 원인과 실제 지구 환경 사이의 관련성, 지구의 동작 원리 등을 다각도에서 효율적으로 학습해 보다 현실적인 결과물을 내놓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AI 모델은 과연 기존 일기예보 모델에 비해 신뢰할 만하다고 할 수 있을까. AI 모델은 슈퍼컴퓨터처럼 수많은 계산을 하지 않고도 이전 데이터를 기반으로 날씨 패턴을 찾아내 높은 정확도로 미래 날씨를 예측한다. 최근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해 그 성능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공개한 '젠캐스트(GenCast)'는 날씨 예측의 정확도가 높기로 이름난 대표적인 AI 일기예보 모델이다.
정확한 일기 예측은 위험도 줄이는 출발점
젠캐스트는 과거와 현재의 기상 정보를 토대로 미래의 날씨를 예측하는 '확률적 예측'을 하는 '앙상블(Ensemble) 예보' 시스템이다. 앙상블 예보는 단일 수치예보가 아닌, 초기조건·물리과정·경계조건 등이 다른 여러 개의 예측 모델을 이용해 얻은 다양한 날씨 시나리오를 종합(앙상블)한 뒤 평균을 내서 확률적으로 날씨를 예측하는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가장 최근의 날씨 상태를 입력하면, 50개 이상의 날씨 궤적을 계산한 뒤 이를 종합해 현실적인 예측치를 내놓는다. 기존의 단일 수치예보가 결정론적인 예측만 하는 데 반해, 앙상블 예보는 확률밀도함수를 이용한 확률적 예측이 가능해 중기 예보에 활용할 수 있다.
그럼 젠캐스트의 능력은 얼마나 뛰어날까. 딥마인드는 젠캐스트의 성능 평가를 위해 현재 최고의 운영 시스템으로 알려진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의 앙상블 기상관측모델(ENS)과의 비교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 1320개 항목 중 1283개(97.2%)에서 젠캐스트가 더 높은 정확도를 보였다. 예측 시간이 36시간을 초과하는 경우엔 99.6%라는 월등한 예측치를 내놨다.
이렇듯 뛰어난 성능을 갖기 위해 젠캐스트는 어떤 훈련을 받았을까. 딥마인드는 ECMWF에 저장된 40년간(1979~2018년)의 날씨 분석 데이터를 젠캐스트의 학습에 이용했다. 이 데이터에는 전 세계 다양한 고도에서의 온도·풍속·기압 등의 기상 변수가 포함되어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젠캐스트는 전 지구를 0.25도 간격으로 나누어 100만 개 이상의 격자를 만들고, 연직으로는 고도 80km까지 37개 층으로 나누어 세밀한 예측을 진행했다.
언뜻 보면 단순하게 생각될 만한 방식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기존 슈퍼컴퓨터에서 계산했던 일기예보보다 속도가 빠르면서 정확하다. 40년간의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한 젠캐스트는 15일간의 세계 일기예보를 8분 만에 높은 정확도로 생성했다.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ECMWF의 ENS에서 0.2도 또는 0.1도 해상도의 15일간 예보를 생성하려면 수만 개의 프로세서를 갖춘 슈퍼컴퓨터에서 몇 시간씩 걸린다.
젠캐스트는 특히 심각한 위협이 되는 극한의 날씨, 허리케인·태풍 같은 열대성 저기압 경로, 바람 세기 등을 정밀하게 예측해 냈다. 폭풍의 경로 등 위험한 기상을 정확히 예측한다면 재난 대비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젠캐스트의 뛰어난 활약으로 새해엔 재해가 줄어들고 경제는 다시 살아나는 희망찬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