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부인》에 정말 기미가요가 나올까?...'KBS 친일 논란'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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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성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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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치니 오페라에 기미가요 삽입된 이유…"일본의 서구화된 현대상에 대한 거부감 투영된 것"

KBS가 광복절에 일본의 국가 '기미가요(君が代)'가 포함된 오페라 《나비부인》을 방영한 사실에 대해 27일 시청자 청원 답변을 내놨다. "일제를 찬양하거나 미화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KBS는 "기미가요 선율이 일부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사실은 뭘까.

KBS 1TV가 15일 오전 0시 방영한 'KBS 중계석'의 한 장면. 지난 6월29일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른 오페라 '나비부인'의 녹화본이다. ⓒ KBS 캡처


《나비부인》은 일본에 살았던 미국인 선교사 존 루서 롱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나가사키에 주둔 중이던 미 해군 장교 핑커톤이 게이샤 초초상과 결혼식을 올리지만, 처음부터 깊은 관계를 맺을 생각이 없던 핑커톤이 초초상을 버리고 아들까지 뺏어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이탈리아 음악가 푸치니의 3대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기미가요는 《나비부인》 1막에 등장하는 초초상과 핑커톤의 결혼식 장면에서 흘러나온다. 다만 극중에서 배우들이 기미가요를 부르거나, 기미가요 가사를 읊는 대목은 없다. 원작의 원어(이탈리아어) 대본에도 관련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기미가요 노래는 1분30초 정도로 짧은 편이다. 가사는 다음 한 줄이 전부다. "임의 시대는 천 대에 팔천 대에 조약돌이 바위가 되어서 이끼가 낄 때까지."

KBS 방영분에도, 원곡에도 기미가요 가사 없어

대신 기미가요의 일부 선율이 배경음악에 녹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BS는 "(기미가요 선율은) 주인공 결혼식 장면에서 남자배우의 독백 대사에 반주로 9초 동안 사용됐고, 이후 6초 동안 두 마디 선율이 배경 음악으로 변주돼 나온다"고 설명했다. 공연계의 법률 관계를 전문적으로 검토하는 한 미국 변호사는 시사저널에 "기미가요 자체가 워낙 짧고 음조가 밋밋한데다, 변형을 거친 뒤에 나비부인에 삽입돼 전문가가 아닌 이상 구분해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나비부인 1막 중 기미가요가 흘러나오는 결혼식 장면의 원어(이탈리아어) 대본과 한국어 번역본. 기미가요 가사는 포함돼 있지 않다. ⓒ 노블아트오페라단 제공


'임금의 치세(治世)'란 뜻의 기미가요는 19세기 후반 메이지 시대 때 당대 시조에 선율을 붙인 게 시초로 알려져 있다. 이후 국가(國歌)의 필요성을 느낀 일본 정치인들이 1869년 일본 군악대장이던 영국인 존 윌리엄 펜튼에게 곡조를 다듬어 달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결과물에 대해 "가사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부정적 인식을 보였다.

이에 펜튼의 뒤를 이은 독일 출신 군악대장 프란츠 에케르트가 1880년 가가쿠(雅樂∙일본 전통 공연예술) 양식을 차용해 편곡을 했다. 그러나 국가로서 일본 대중의 신뢰를 얻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일본 외교관들은 기미가요를 비공식 국가로 대외에 알렸다. 《나비부인》 작곡가 푸치니가 기미가요를 알게 된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한다. 기미가요가 공식 국가로 법제화된 건 100년 넘게 지난 1999년이다.

"나비부인의 기미가요, 美日 문화차이 보여주는 장치"

이와 관련,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음악사 교수 하라 쿠니오는 2003년 논문을 통해 "푸치니가 기미가요를 나비부인의 결혼 장면에 삽입한 배경에는 일본풍 분위기를 전달하려는 것과 동시에 미국과 일본의 문화적 차이를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다"고 해석했다. 《나비부인》에는 기미가요와 함께 미국 국가인 '별이 빛나는 깃발(The Star-Spangled Banner)'도 흘러나온다.

2017년 4월30일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 나비부인의 결말 부분. 핑커톤에게 버림 받은 초초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 유튜브 캡처


쿠니오 교수는 "별이 깃나는 깃발이 핑커톤의 소개 음악으로 사용되는데 반해 기미가요는 초초상의 중창과 별개로 사용됐다"며 "이를 감안하면 초초상이 일본의 서구화된 현대상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즉 초창기에 기미가요에 대해 보였던 일본 대중의 거부감이 투영됐다는 분석이다.

그 밖에 《나비부인》에 삽입된 기미가요가 서구 우월주의를 보여준다는 시각도 있다. 기미가요의 작곡∙편곡자가 유럽 사람인데다, 나비부인의 스토리 자체가 정조를 지킨 일본 여성을 매몰차게 대하는 미국 남성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작품성과 별개로 동양에 대한 서양의 왜곡된 가치관인 오리엔탈리즘이 드러났다는 비판도 있다.

신선섭 대한민국오페라단연합회 이사장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푸치니는 일본을 가보지도 않고 나비부인을 썼고, 중국을 가보지도 않고 투란도트를 썼다"며 "기미가요의 짧은 선율이 나비부인에 나온다는 이유로 오페라를 친일과 연결시키는 건 과도한 억측"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오히려 이번 기회에 나비부인의 작품성이 대중적으로 알려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익명의 공연업계 전문가는 "나비부인이 친일주의 작품이라는 주장은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뮤지컬 '미스 사이공'도 공산주의를 미화했다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며 "한때 김영미, 홍혜경 등 한국의 유명 소프라노들도 기모노 복장에 게이샤 분장을 하고 초초상을 연기한 바 있다"고 했다. 이번에 KBS가 방영한 《나비부인》은 지난 6월29일 예술의전당에서 녹화된 것으로, 모두 한국 배우가 연기했다.

2010년 3월18일 오전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오페라 '나비부인' 기자간담회에서 '초초상'역을 맡은 소프라노 김영미씨가 공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인도 연기한 나비부인…"왜색 짙은 작품 광복절과 맞지 않다" 지적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가에서 기미가요를 사용해 제재를 받은 전례를 고려하면, KBS 측의 세심함이 부족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난 2014년 일본인 출연자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기미가요를 배경 음악으로 사용해 논란을 일으킨 JTBC 《비정상회담》에 대해 '경고'를 의결한 바 있다. 또 2015년에는 해병대 훈련에 투입된 출연자들을 소개하면서 배경 음악으로 일본 군가 '군함 행진곡'을 방송한 MBC 《진짜 사나이》도 '경고' 조치를 받았다.

한편 기미가요와 별도로 《나비부인》에 기모노를 입은 배우들이 대거 나온다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내용을 떠나 시각적으로 왜색이 짙은 작품을 왜 하필 광복절에 틀었냐는 것이다. 네티즌들 사이에선 "이렇게 비판하기 애매한 작품을 던져 놓고 아무 문제없이 지나가면 다음에 더 센 걸 던질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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