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조 파업, 길을 잃다 [권상집의 논전(論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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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인상'만 내세우며 대중이 외면한 55년 만의 첫 파업
"노조도 세상 변화와 시대 흐름 읽어야"


삼성전자 노동조합의 파업은 많은 언론의 관심과 조명을 받았다. 1969년 창사 이래 첫 파업이라는 상징적인 측면 때문이다. 무노조 경영 기조를 유지했던 삼성전자에서 노조의 목소리가 집단행동을 통해 본격 표출된 첫 사례다. 앞서 2020년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은 사회적인 요구에 발맞춰 무노조 경영 폐지를 약속하며 시민사회와 소통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삼성전자에서 노조가 목소리를 내기까지는 수많은 노동자의 헌신이 한몫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간 다수의 방송과 언론에서도 지속적으로 삼성의 노조 필요성을 다뤘고, 초일류 기업에 걸맞게 근로자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창사 55년 만에 이루어진 이번 첫 파업의 흔적 뒤에는 상생협력과 직원에 대한 존중, 건전한 노사 문화를 외쳐온 이름 모를 삼성 임직원들의 숭고한 노력이 숨어있다.

7월8일 경기도 화성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앞에서 열린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대중 그리고 여론이 외면한 이유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총파업 실시 후 무기한 파업에 돌입하며 사측의 무성의한 협상 태도를 비판했다. 하지만 다수의 언론과 여론은 전삼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전삼노 집행부는 파업의 근본 이유로 노동 존중을 언급했다. 노동 존중은 모든 임직원이 보장받아야 하고 또 필요한 과제다. 그러나 노조 요구 사항은 성과급 등 임금 인상뿐이다.

대중과 언론의 외면과 질타를 받았던 결정적인 시점은 전삼노 홈페이지에 현대차 임직원의 임금협약 결과를 공지한 이후부터다. 노동 존중을 언급했지만 홈페이지에 게시된 사항을 본 이들이라면 현대차 임직원보다 삼성전자 임직원이 적게 보상받는 점이 불만이라는 점을 추론할 수 있다. 일각에선 업종과 역사가 다른 두 기업을 비교하는 게 타당하지 않다고 비판하지만 비교 자체는 문제 될 건 없다.

문제는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현대차와 부진한 실적을 거둔 삼성전자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며 유사한 수준의 보상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사상 최대인 15조원의 영업이익을 거둔 반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7조원에도 못 미쳤다. 보상은 기업의 실적과 연동해 지급되는 게 상식이다. 성과가 부족한데도 무리한 보상을 요구하는 노조의 주장을 언론이 비판하는 이유다.

언론만 이번 파업을 비판하는 것도 아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선 삼성전자 노조의 배부른 보상 요구를 비난하는 타 기업 임직원들의 글이 넘쳐났다. 대학생들이 즐겨 찾는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의 반응도 비슷하다. 계속되는 취업난 속에 중견·중소기업의 어려움은 생각하지 않고 많은 보상만 요구하는 노조 주장에 '헬직원' '꼰대 노조'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삼성전자 임직원의 지난해 1인당 평균 연봉은 1억2000만원이다. SK이노베이션(1억5200만원), 현대모비스(1억2300만원)보단 적지만 현대차(1억1700만원)보다 높고 동종 업계 경쟁사인 LG전자(1억600만원)보다도 많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삼성전자 임직원의 평균 연봉이 현대차에 뒤처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노조의 주장엔 명분이 담겨야 한다.

올해 6월 통계청 분석에 따르면, 구직 노력도 하지 않고 집에서 쉬는 청년층이 40만 명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일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다 포기한 구직 단념 청년층도 증가 추세다. 중소기업의 평균 연봉이 여전히 대기업 평균 연봉 대비 50% 미만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은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삼성전자 노조가 공공의 적이 된 것처럼 비난받는 이유다.

물론, 삼성전자 노조가 중견·중소기업 임직원의 처우를 생각하고 취업난에 빠진 청년층 입장을 항상 고려하면서 주장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고 목소리를 내려면 합리적인 명분이 있어야 한다. 예컨대, 경영진의 폭언과 무례에 대한 항의, 임금 격차에 따른 불평등 완화 등의 이유로 파업에 돌입했다면 많은 이가 노조를 지지하고 그들의 주장에 힘을 보탰을 것이다.

7월8일 열린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무리한 요구, 정당성 확보 어려워"

올해 6월 한국산업노동학회의 '산업노동연구' 학술지에 '노동조합은 임금 불평등을 심화시키는가? 대기업과 노동조합의 임금 효과 궤적과 함의'에 관한 논문이 게재됐다. 2003년부터 2022년까지 20년의 데이터를 분석한 논문에는 "노조가 임금의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반면, 대기업 노조가 임금 불평등 이슈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연구 결과로 확인됐다.

올해 5월 대한리더십학회의 '리더십연구' 학술지에 게재된 '산업재해 예방과 노동조합의 리더십 역할'이란 논문에선 "노조가 경영진과 적극 협력하면서 근로자의 협력과 참여를 대표할 수 있는 모범적 리더십을 함양해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고 주도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두 논문의 교훈은 명확하다. 노조가 경영진과 협력해 모범적 리더십을 함양하면서 불평등 이슈를 풀어야 한다.

참고로, 현대차 노조는 2년 연속 '64세 정년 연장'을 사측에 요구했다. 여기에 우호적인 여론 역시 높지 않았다. 젊은 직원들은 정년 연장보다 4.5일제 도입 등 현실적인 이슈에 집중했다. 과거처럼 회사 실적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리한 보상과 정년 연장만을 요구한다면 사회적 차원에서도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노조도 세상의 변화와 시대 흐름을 읽어야 한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비즈니스 영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기업이다. 삼성전자는 이번 2분기 연결 기준 매출액 74조원, 영업이익 10조4000억원의 실적을 올렸다. 깜짝 실적이라는 언론의 호평이 이어졌고 주가 역시 급상승했다. 임직원의 헌신 덕분이다. 삼성전자 노조를 향한 국민적 기대와 눈높이 역시 높을 수밖에 없다. 땀 흘린 구성원들의 헌신이 퇴색되지 않도록 노조가 다시 올바른 길로 들어서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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