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중 '음주단속' 논란에 대한 형사법 전문 검사의 '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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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성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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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음주단속, 과속 측정의 허상》펴낸 안성수 서울고검 검사
"국민들의 공분 이해하지만 그래도 음주운전 적용은 부당"


유명인의 음주운전 사건이 터질 때마다 언론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위드마크 공식'이다. 1932년 스웨덴 생리학자 에릭 P 위드마크가 개발한 이 공식은 음주운전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를 역추산하기 위해 국내에 도입됐다. 가수 김호중씨의 음주운전 사건 수사 과정에서도 어김없이 위드마크 공식이 쓰였다.

하지만 그 실효성은 여전히 논란거리다. 김씨의 경우 경찰은 위드마크 결과를 근거로 그에게 음주운전 혐의를 적용했다. 반면 검찰은 "알코올 농도를 특정하기 어렵다"며 음주운전 혐의를 배제하고 위험운전치상·도주치상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이 같은 검찰의 판단을 두고 국민적 공분이 일었다. 경찰마저 "아쉽다"는 입장을 밝혔다.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카페에서 안성수 서울고등검찰청 검사가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불확실한 단속으로 장발장 만들면 안 돼"

형사법 전문가로 통하는 안성수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인하대 형사법 박사)의 말은 달랐다. "검찰의 결정은 합당했다고 봅니다. 위드마크 공식으로 음주운전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를 측정하는 건 굉장히 힘듭니다." 김씨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팽배한 와중에 '소신 발언'으로 비칠 수 있는 말이었다.

안성수 검사는 "현직 검사라서 검찰의 편을 드는 건 결코 아니다"라며 "법의 본질과 과학적 근거를 따졌을 때 위드마크 공식이 한계가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악플이 달릴 수도 있다'는 말에 안 검사는 옅은 웃음을 지었다. 그는 "음주운전을 강하게 처벌할 수 있다면 검사로서 오히려 유리하겠지만, 그렇다고 억울한 장발장을 만들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안 검사는 지난 수년간 위드마크 공식을 비롯해 음주단속의 정확도에 대해 천착해 왔다. 그 연구 내용을 지난 1월 펴낸 책 《음주단속, 과속 측정의 허상》에서 풀어냈다. 그는 100건이 넘는 논문과 해외 사례 등을 수집해 '음주단속이 생사람을 잡을 수도 있다'는 명제를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법학이라기보단 생물학 서적에 가깝다. 구체적 설명을 위해 주석을 본문보다 더 많이 할애한 페이지도 상당수다. 2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앞 카페에서 만난 안 검사는 "불확실한 음주단속으로 생계를 뺏거나 개인의 자유를 함부로 구속해선 안 된다"고 했다.

'숙취운전' 단속이 그 예다. 안 검사는 "전날 밤에 술을 마셨지만 아침에 아무 이상이 없어 차로 출근하다 사고를 당했는데, 음주 측정 결과 '가해자'가 됐다면 어떨까"라고 반문했다. 이어 "인지능력이 멀쩡한데 10여 시간 전에 술을 입에 댔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하는 건 올바른 사법체계라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책의 서문에 이렇게 밝혔다. '막연한 법을 도구 삼아 사람을 착취해서는 안 된다. 법의 끝은 관용이다.'

다만 "김호중씨에게도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안 검사는 "김씨는 음주운전 혐의를 적용하지 않더라도 사고 현장에서 도망가고 사건을 은폐했다는 시도만으로 중형을 피할 수 없다"며 "너무 바보 같은 행동을 했다"고 질타했다. 게다가 김씨는 사고 이후 술을 더 마시는 일명 '술타기' 수법으로 음주운전을 피하려 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안 검사는 "술타기 수법은 피의자에게 전혀 실익이 없다. 어차피 추가 음주 여부와 상관 없이 알코올 농도를 역추산하기는 힘든데, 사고를 내고 술을 더 마셨다는 사실이 오히려 가중 처벌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회에선 술타기 수법을 막기 위해 소위 '김호중 방지법'을 만들어 냈다. 민형배·신영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6월 10일과 18일에 발의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두 건 모두 음주 측정을 곤란하게 할 목적으로 추가 음주하는 걸 금지한다는 내용을 공통으로 담고 있다.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인 나경원 의원도 24일 페이스북을 통해 "대표가 되면 즉각 야당과 협의해 '김호중 방지법'을 신속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안 검사는 "검찰의 일원으로서 입법부의 활동을 개인적으로 평가하는 건 옳지 않다"며 즉답을 거부했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행동을 법으로 제약하기 시작하면 결국에는 강제적 구속을 하는 것과 다름없어요. 사회적 지위를 떠나 누구나 언젠가는 법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너무 엄벌주의로 가면 사회의 역동성과 개인의 활동 반경이 줄어들 겁니다. 운전상 과실까지 무기징역에 처한다면 운전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도 '그럴 바엔 집에서 쉬지'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이런 점에서 과실범과 고의범을 잘 구분해서 봐야 하는데, 이를 위해 법의 양을 늘리기보다는 명확한 법을 만들어 질을 높이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1월 안성수 검사가 펴낸 《음주단속, 과속 측정의 허상》 ⓒ 박영사


'메저랜드' 위해 법과 현실 괴리부터 줄여야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안 검사는 "음주운전의 법적 기준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도로교통법 제148조의2(벌칙)는 '혈중 알코올 농도 0.03%'를 음주운전 기준치로 보고 있다. 여기서 혈중 알코올 농도란 말 그대로 혈액 속의 알코올 비중을 뜻한다. 그런데 실제 음주단속을 할 때는 호흡 측정기를 이용한다. 즉 '호흡 알코올 농도'를 재는 것인데, 그 수치는 혈중 알코올 농도와 다를 뿐만 아니라 도로교통법을 과대 해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안 검사는 "지금처럼 호흡 측정치로 음주단속을 한다면 현행 법조항은 실무와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호흡 알코올 농도를 기준으로 삼을 경우 술을 삼키지 않고 뱉거나 알코올성 구강청결제를 사용해도 음주단속에 걸린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에 대해 안 검사는 "사건마다 구체적 사정을 감안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또 알코올 농도 0.03%라는 기준치의 객관적 근거와 음주 측정기의 정보도 공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미국 워싱턴주는 음주 측정기의 정확도를 온라인으로 제공한다.

안 검사 책의 부제는 '머나먼 메저랜드(measurand)'다. 이는 측정하고자 하는 '목적 측정량'을 뜻한다. 책에 따르면 혈중 알코올 농도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메저드(measured·실제 측정량)'인 호흡 알코올 농도에 의존하는 게 현실이다. 안 검사는 "법이 메저랜드를 도외시하면서 시민들을 옭아매는 도구로 작용해선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인터뷰 말미에 그가 덧붙인 말도 이러한 생각과 궤를 같이 한다. "김호중씨 사건이 음주운전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로 작용하는 건 좋지만, 사법기관이 처벌에 눈이 멀어 이성과 자비심을 잃는 건 경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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