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EU 질서' 무너지나…프랑스 총선 1차전에서 극우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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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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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주의의 종말"…7월7일 2차 투표 앞두고 反극우 단일화 바람

온 유럽이 프랑스를 주목하고 있다. 프랑스발(發) 돌풍의 주인공은 극우정당 국민연합(RN). 무대는 프랑스 조기 총선이다. 6월30일(현지시간) 치러진 프랑스 조기 총선 1차 투표 결과 RN이 1위를 차지했다. 1958년 제5공화국 성립 이후 반(反)이민주의를 내세운 극우정당이 프랑스 총선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극우정당이 프랑스 의회 다수당이 되는 이례적 상황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전망에 조기 총선을 결정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한층 거세지는 모습이다. 현지 언론은 "마크롱주의의 종말"이라고 평가했다.

유럽연합(EU) 내 다른 국가들이 프랑스 총선의 후폭풍을 예의주시하는 이유는 최근 극우 확산이라는 동병상련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RN이 프랑스 정치의 전면에 등장하면 프랑스만이 아니라 유럽의 정치와 외교는 물론 경제와 문화 전반까지 뒤흔들 수 있다. RN은 '자국 우선주의'를 제1 기치로 내세우고 있다. '통합'이라는 기조를 표방해온 EU 중심의 30여 년 질서와 부딪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과 맞물리게 되면 프랑스는 물론 유럽이 직면할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은 물론 산업과 환경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유럽도 통합 대신 자국 우선주의라는 흐름 속에 내부 균열이 가속화할 여지가 커질 수 있다.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연합(RN)의 총선 선전을 이끌고 있는 마린 르펜 의원 ⓒAP 연합


"이민·물가난이 1차전 승부 갈라"

사태의 전말은 이렇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6월6일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정당인 RN이 30% 이상의 득표율로 자신이 이끄는 여당에 압승하자 즉각 의회를 해산했다. 조기 총선으로 국민의 신임을 묻겠다는 '정치적 승부수'였다. 하지만 6월30일 치러진 1차 총선은 오히려 마크롱 대통령의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 7월1일 발표된 투표 결과는 RN이 33.1%, 좌파 연합인 신민중전선(NFP)이 28%를 각각 득표한 반면, 의회 해산 및 조기 총선 실시를 결정한 마크롱 대통령의 중도 연합 앙상블은 3위(20%)에 그쳤다. 

유럽이 지금 숨죽여 지켜보는 날은 2차 투표가 열리는 7월7일이다. 결선투표에서도 1위를 지킨다면 RN은 창당 52년 만에 총리를 배출해 권력의 중심에 입성하게 된다.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는 1차 투표 최종 득표율을 기준으로 RN이 240~270석, NFP는 180~200석, 범여권은 60~90석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2022년 총선에서 이들은 각각 89석, 131석, 245석을 얻었다. 2년 사이에 극우 세력이 최대 3배까지 세를 키운 것이다.

이에 범여권 중도 연합과 좌파 연합은 대거 후보 단일화를 단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결선투표에서 당선자가 결정될 501개 지역구 중 RN과 다른 당의 양자대결이 이뤄지는 지역구가 404곳으로 늘어났다. 결선투표를 일주일도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선거판이 재편되면서 RN이 1차 투표의 승리 흐름을 이어가 예상대로 과반 의석 차지에 성공할지, 범여권의 단일화 전략이 막판 뒤집기의 승부수가 될지 주목되고 있다. 

양측은 지지층은 물론 스윙보터를 겨냥한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RN의 실질적 지도자인 마린 르펜 의원은 1차 투표 이후 기자회견에서 "유권자들이 마크롱 7년의 경멸적이고 부패한 권력을 끝내려는 열망을 투표로 명확히 보여줬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아직 승리가 아니며 폭력적인 극좌정당의 손에 프랑스가 넘어가는 걸 막아 달라" "마크롱이 조르당 바르델라(RN 대표)를 총리로 임명할 수 있게 (RN의) 절대 과반수(577석 중 289석)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반면 마크롱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2차 투표에서 RN에 맞서 민주적·공화적 결집이 필요한 때가 왔다"고 단일화는 물론 지지층의 결집을 호소했다. 프랑스는 대통령이 다수당 또는 다수 연정의 지지를 받는 인물을 총리로 임명한다. 

RN의 선전에는 세 가지 요인이 꼽힌다. '매력적이고 젊은 지도자'를 전면에 내세우고, '이민과 국경 통제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꼽은 공약을 제시하고, '감세 정책, 유럽연합에 대한 예산지원 삭감, 정년 연장 환원' 등을 통해 기존 지지층은 물론 여성과 청년층의 표심을 모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기 총선을 결정해 위기를 맞고 있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EPA 연합


극우의 국정 전면화, 유럽 전반 균열 가능성

RN의 경우 실질적 리더는 마린 르펜 원내대표인데, 그는 프랑스 극우정당의 시작이라고 평가받는 국민전선(FN)을 창당한 장마리 르펜의 딸이다. FN은 민족주의, 반이민, 반공주의, 반EU 정책을 내세우는 동시에 인종차별이나 반유대주의 성향 등을 대놓고 드러냈다. 이런 극우적 성향 때문에 주류 정당은 물론 상당수 시민들에게 비주류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마린 르펜이 당대표에 오르면서 이미지 쇄신이 시작됐다. 당명을 RN으로 바꾸고 부친을 비롯한 급진적 인사들을 정리했으며, 반유대주의적·동성애 혐오 발언 등은 통제했다. 

RN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2022년 20대 조르당 바르델라를 당수로 세워 청년층을 공략했다.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바르델라는 RN이 인종 차별적 정당이라는 선입견을 지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바르델라는 "이주민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프랑스에 동화되지 않으려는 이주민이 문제"라는 입장을 거듭 밝혀 왔다.

RN이 이번 총선에서 최우선 공약으로 제시한 이민과 국경 통제 문제도 민심을 파고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외국인 무슬림 범죄자 추방을 쉽게 하고, 불법이민자 국가의료 지원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여기에 기본 생필품 부가가치세 폐지, 에너지 부가가치세 인하 등과 같은 민생 공약도 여성·청년층 등 지지층을 확대하는 토대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르피가로는 이번 선거의 승패를 가른 요인이 '물가'와 '이민'이었다고 짚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많은 유권자는 엘리트주의적인 마크롱을 거부하고, 전통적인 반이민 입장에 더해 생활비와 임금 문제를 강조하는 RN을 선호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프랑스에서는 극우 득세를 막기 위해 조기 총선 카드를 던졌던 마크롱의 승부수가 오히려 극우정당을 더 빨리 권력의 중심에 진입시키는 부메랑이 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해 연금 개혁과 이민법 개정 추진으로 민심이 바닥을 쳤고, 최근 고물가 상황에 마크롱 정책을 향한 분노가 높은 상황에서 독단적인 조기 총선 결정으로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는 설명이다.

만약 RN이 총선에서 완승한다면 프랑스뿐 아니라 EU 중심의 유럽 질서에도 큰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 반EU와 반이민을 내세운 RN이 제1당으로서 프랑스 국정 운영의 전면에 나서면 유럽의 균열이 한층 더 가속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RN은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과 이민, 유럽 통합 문제에서 EU 정책에 제동을 걸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프랑스 대통령은 외교와 군사 정책에 대해 광범위한 통제권을 행사해 왔으나 RN이 절대 다수를 얻으면 대통령 권력 제한을 시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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