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구멍 뚫은 여성 연구원들 인터뷰
최연소 연구원, 러시아 석사 워킹맘
직원 45% 이상이 2030세대 청년들
"한국판 뉴 스페이스 큰 그림 그려야"
우주항공청이 3일 출범 100일을 맞았다. 한국을 우주 강국으로 이끌 컨트롤 타워라며 개청 전부터 쏠렸던 관심과 기대에 비하면 너무 조용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 시점에서 우주항공청 성과를 평가하기는 이르다고 입을 모은다.
그간 우주항공청은 사람 모으는 데 힘을 쏟았다. 지난달 마감된 하반기 공개채용 접수 결과 경쟁률은 평균 9대 1이다. 앞서 상반기 공채 땐 실무를 맡을 5~7급 경쟁률이 모두 10대 1을 훌쩍 넘겼다. 젊은 인재들이 공채에 많이 몰린 점은 고무적이다.
한국일보는 지난달 22일 경남 사천시 우주항공청 임시청사에서 바늘구멍을 뚫고 입사한 MZ세대 두 여성 직원을 만났다. 5월 개청 때부터 합류한 이들은 "발사체가 기립, 점화, 시동 등 여러 단계를 거쳐 우주로 출발하는 것처럼 우주항공청도 차근차근 우주 공간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상사공백 걱정, 카페에 환호... 우주청 청년들 일상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넘어온 업무 자료를 토대로 민간 발사 관련 제도를 어떻게 만들지 고민 중이에요. 국내에 없던 제도라 공부를 많이 해야 해서, 퇴근 후에도 노트북 보는 날이 적지 않죠."
이송인(25) 우주위험대응과 연구원은 상반기 기준 우주항공청에 근무하는 직원 총 153명 중 가장 어리다. 지난해 충북대 천문우주학과를 졸업하고 이곳에서 첫 사원증을 목에 걸었다. 학창시절부터 동경했던 우주에 대한 꿈을 첫 직장에서 이룰 수 있게 됐지만, 일은 만만치 않다. 신생 기관인 만큼 흩어져 있던 업무를 모으고 꼼꼼히 익혀야 해서다. 과에는 여전히 빈 자리가 있다. 우주위험대응과 정원이 7명인데 3명이 일한다. 이 연구원은 "과장님도 안 계셔서 다른 과 과장님에게 보고하고 있다"면서도 "머지않아 우주항공청이 안정돼 본궤도에 오를 것"이라고 확신했다.
'상사 공백'은 다른 부서 사정도 마찬가지다. 민다흰(35) 임무지원단 연구원은 "부서 내 연구원이 둘 뿐이었던 초반엔 동료 직원 근태 서류에 직접 결재도 했고, 고위급 회의에도 들어갔었다"고 회상했다. 우주 관련 분야에서 경험과 지식을 쌓은 전문가를 찾다 보니 실무를 지휘할 사령탑 인선이 전체적으로 지체되는 측면이 있다.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2일 기준 과장급 이상 자리 36개 중 12자리(과장급 9명, 국장급 3명)가 아직 공석이다.
민 연구원은 국내에 드문 '러시아 우주 석사'다. 모스크바 국립항공대에서 우주항공 분야 학·석사 학위를 받고 관련 업계에서 일해온 그는 결혼과 출산으로 5년 간 멈췄던 커리어에 재시동을 걸었다. "아기가 태어나 어려운 시기를 넘겼음을 축하하고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뜻에서 백일잔치를 한다. 우주항공청 100일에도 마찬가지 의미를 부여하면 좋겠다"고 했다.
우주항공청이 사천시에 문을 열기까지 난관이 많았던 이유로 정주여건이 꼽혔다. 수도권에서 멀고 생활 인프라가 충분치 않아 젊은 인재들이 꺼릴 거란 예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달랐다. 우주강국의 꿈을 향한 청년들의 패기는 15대 1 안팎의 공개채용 경쟁률로 확인됐다. 현재 근무 중인 직원의 45.6%가 20, 30대다. 전체 공무원의 2030 비중(34.5%)보다 10%포인트 가량 높다.
또래와 일하는 젊은 분위기는 신생 미래기술 총괄 기관에 훌륭한 동력이 될 수 있다. 열정과 긍정 마인드로는 파리올림픽을 제패한 MZ세대 국가대표들 못지않다. "다양한 사람들이 우주개발 도전이라는 같은 염원으로 뭉쳐 있어 시너지가 난다"고 민 연구원은 말했다. 마침 지난 6월 중순 청사 1층에 카페가 생긴 덕에 문화공간도 갖춰졌다. 민 연구원은 "점심 먹고 커피 한잔 하려면 멀리 해안도로에 있는 커피트럭까지 걸어가야 했기에 모두가 청사 내 카페를 기다렸다"며 웃었다.
"우주 컨트롤 타워로서 리더십 보일 필요"
전문가들은 현 시점에서 우주항공청에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는 데 동의하면서도 안주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김승조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명예교수는 "외국에서도 인력을 모아와야 했을 테니 빨리 조직을 추스르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속도에 매몰되기보다 무리하게 계획되는 사업은 없는지, 기존에 하던 일은 잘 진행되는지 등을 살펴야 한다"고 했다. 한 수도권 대학 항공우주학과 교수는 "고위급이 임기제 공무원이라 기존 일을 정리하고 우주항공청을 선택하기 쉽지 않다. 파견 등 인력 충원에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에선 정부의 관심이 떨어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내년 예산안에서 우주항공청만의 특색 있는 사업들이 눈에 띄지 않은 점이 이 같은 우려를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천문학자는 "대통령실이나 기획재정부 등이 긴밀히 협력해 우주항공청이 신규 사업을 할만한 여건을 마련해줬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우주항공청에 대한 국민 기대가 큰 만큼 개청 100일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역할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이금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노조지부장은 "뉴 스페이스(민간 주도 우주개발) 시대에 우리의 목표는 뭔지, 어떻게 우주시장 10% 점유율을 달성할 것인지, 대형 미션을 위해 국민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등 전반적인 그림을 그려내야 한다"며 "외교와 국방 등 우주 공간을 공유하는 다른 부처와의 협의체를 (지금의 국가우주위원회보다) 더 크고 촘촘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또 다른 우주 전문가는 "컨트롤 타워로서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중요한 임무가 뭔지 판단해 구성원들을 설득하고 역량을 결집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