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두두두~ 돌 구르는 소리에 잠 설쳐"… 또 불안에 떠는 경북 예천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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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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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극한호우 주민 2명 실종된 벌방리 가보니
호우주의보에 산사태 경보로 주민 급하게 대피
복구 작업 더뎌 1년 전 피해 여전, 주민들 근심
10일 찾은 경북 예천군 벌방리 마을 초입에 지난해 산사태로 내려온 바위 등이 방치돼 있다. 예천=서현정 기자


"어제 새벽에 비가 오는데 큰 돌이 내려오는 소리가 두두두 나니까 집이 울리는 거야. 걱정돼서 잠을 못 자고 몇 번을 집 밖에 나왔어."
주민 권호량(74)씨


10일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마을 초입에서 만난 권호량씨는 집 근처에 쌓인 돌덩이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예천에서는 지난해 여름 호우에 따른 산사태로 15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됐다. 이 가운데 아직도 못 찾은 2명의 실종자가 나온 마을이 벌방리다. 1년이 지난 올여름에도 주민들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다. 경북 지역에는 지난 밤사이 시간당 100mm가 넘는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예천에도 6일 자정부터 이날 오전 6시까지 누적 강우량 244.4mm의 비가 내려 주민들에게 대피명령이 떨어졌다.

작년에 수해로 집을 잃은 윤수아(86)씨는 8일 호우주의보에 이어 전날 산사태 경보가 내려지자 마을회관으로 대피했다. 그는 "어제 비가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려 정신이 없었다"며 "들이붓는 것처럼 쏟아지길래 무슨 일이 나지 않을까 겁났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유모(88)씨도 "며칠간 겁먹은 채 마음고생을 했다"고 호소했다. 아직 1년 전 수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주민도 적잖다. 권씨는 "최근 들어 비가 많이 내리면서 작년 생각이 떠올라 잠을 못 자다 결국 폐렴에 걸렸다"며 "가슴이 답답해 며칠간 병원에 입원을 했다"고 털어놨다.

1년 전 산사태로 무너진 집이 철거되지 못한 채 마치 폐허처럼 방치된 모습. 예천=서현정 기자


마을 곳곳엔 지난해 호우 피해의 흔적이 여전했다. 밀려오는 흙에 무너지고 깨져 폐허가 된 집 외곽에는 '추락주의' '접근금지'라는 띠가 둘러쳐졌고 말라붙은 흙과 나뭇가지들이 걸려있었다. 지난해 산사태로 굴러내려온 커다란 바위가 주민들의 집 옆에 놓인 모습을 보니 아찔했다. 주민들은 늦어지는 복구 작업에 우려를 나타냈다. 권씨는 "도로나 집이 복구되려면 한참 멀었다"며 "집 앞에 있는 수로 공사는 한 달 전에야 시작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벌방리에 5년간 살았다는 김모씨는 "한 번 무너졌던 곳인데, 올해도 피해가 안 나리란 보장이 있느냐"고 불안해했다.

1년 전 수해 피해를 입은 창고. 산사태 발생 약 1년이 지났지만 무너진 모습이 그대로다. 예천=서현정 기자


작년에 집을 잃은 주민 가운데 12명(10가구)은 26㎡(약 8평)짜리 임시주택에 살고 있다. 이곳에 살 수 있는 기간은 2년. 내년이면 파손된 집을 싹 고치든 아예 새로 짓든 해야 하지만 녹록지 않다. 임시주택에 사는 유씨는 "비 때문에 40년 넘게 산 집이 떠내려가고, 달랑 내 몸 하나 나왔다"며 "앞으로 보조금이 얼마나 나올지, 땅을 사서 집을 지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임시주택에서 1년간 살다가 새로 집을 지어 나온 김종태씨는 "집을 짓는 데 2억7,000만 원 정도 들었는데 지원금은 3,000만 원 정도 받았다"며 "아들과 내 돈을 다 갖다 썼다"고 고개를 떨궜다.

예천군 벌방리 마을에 설치된 임시조립주택. 현재 10가구가 살고 있다. 예천=서현정 기자


일단 예천군은 올해 산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사방댐을 세우고, 수로를 1m에서 5m로 넓히는 공사에 집중하고 있다. 사방댐은 이달 말이면 완공되지만 수로 확장 공사는 얼마 전에야 첫 삽을 떴다. 군 관계자는 "사방댐과 수로의 작업로가 같아 중장비가 드나드는 데 한계가 있어 시간이 지체됐다"고 해명했다. 이어 "철거된 집이나 이주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해서는 감정평가, 토지보상 등 절차가 이뤄지고 있다"며 "빠르게 복구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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